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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진이 1년 공들였다는 'B급 만물상' 삐에로쑈핑 가보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8일 문을 여는 스타필드 코엑스의 '삐에로쑈핑' 1호점 입구. 화려한 색상의 간판으로 눈길을 끈다. [사진 이마트]

28일 문을 여는 스타필드 코엑스의 '삐에로쑈핑' 1호점 입구. 화려한 색상의 간판으로 눈길을 끈다. [사진 이마트]

27일 오전 서울 강남에 위치한 스타필드 코엑스몰. 알록달록 화려한 색의 간판에 이끌려 매장을 들어섰지만 무엇을 파는 가게인지 좀처럼 알아채기 어려웠다. 과자 바로 옆에 신발이, 그 옆엔 티셔츠가, 티셔츠 앞엔 명품 가방이 앉아있는 식이다. 무엇을 어디서부터 봐야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직원들이 입고 있는 유니폼 뒤에 써진 글씨가 눈에 띄었다. “저도 그게 어딨는지 모릅니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의 야심작인 ‘삐에로쑈핑’ 1호점이 오픈을 하루 앞두고 이날 모습을 공개했다. 이곳은 지하1ㆍ2층을 합해 2513㎡(760평) 크기에 4만개 넘는 상품을 파는데 신선식품부터 화장품과 가전제품, 주방용품과 명품에 이르기까지 없는 종류가 없다. 정 부회장이 지난 3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1년 동안 모든 걸 쏟아부어 준비했다”고 할 만큼 공을 들인 곳이다.

삐에로쇼핑 직원들의 유니폼. 4만여개 이상의 물건이 빼곡히 들어선 상황을 재미있게 표현하고자했다. [사진 이마트]

삐에로쇼핑 직원들의 유니폼. 4만여개 이상의 물건이 빼곡히 들어선 상황을 재미있게 표현하고자했다. [사진 이마트]

삐에로쑈핑의 닮은 꼴은 일본의 쇼핑점 ‘돈키호테’다. 지난해 매출만 8조4200억원이 넘는 돈키호테는 20년 넘는 장기 불황 속에서도 28년 연속 매출과 이익이 늘고 있는 곳이다. 정 부회장은 지난해 9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시장조사 중'이라는 설명과 함께 이곳을 방문한 모습을 공개하기도 했다.

실제 매장 곳곳은 돈키호테를 연상시킨다. 우선 정리정돈된 진열과는 거리가 멀다. 주방용품을 좀 구경할까 싶어 몇걸음 옮기면 갑자기 화장솜 매대가 등장하고 몇 걸음 가면 다이슨 청소기가 나타난다. 마치 골목길처럼 친구와 나란히 통로를 들어가기엔 좁고, 걸음을 옮길 때마다 다른 손님과 갑자기 마주치기 일쑤다.

이곳의 매대사이 간격은 0.9m에 불과하다. 천장에도 각종 상품을 빼곡하게 진열해놨다.

이곳의 매대사이 간격은 0.9m에 불과하다. 천장에도 각종 상품을 빼곡하게 진열해놨다.

이곳에서 물건이 배치된 통로와 통로사이 간격은 90cm으로 대형마트의 2.5m의 3분의 1 수준이다. 2513㎡(760평) 매장에 4만여가지 상품을 진열하기 위해서다. 보통 대형마트가 1만㎡(3000여평)에 5만~8만가지 상품을 판다는 점을 감안하면 매장 전체가 물건으로 꽉 채워진 미로인 셈이다. 무심코 천장을 올려봐도 가격표를 단 물건이 공중에 매달려 있을 정도다.

이런 압축진열 방식을 통해 노리는 효과는 ‘즐거움’이다. 깔끔하고 편리한 기존의 익숙한 매장 구성 대신 상품을 복잡하게 배치해 소비자가 매장을 구석구석 오래 탐험하면서 예상치 못한 발견을 하는 방식을 추구한다. 이 같은 ‘보물찾기’ 방식은 실제 돈키호테의 핵심 전략이기도 하다. 돈키호테 매장 한 곳에서 파는 물건 수는 5만개에 이른다.

즐거움에 이은 삐에로쑈핑의 또 다른 핵심 전략은 저렴한 가격이다. 유통기한이 임박하거나 부도난 회사의 제품을 사들여 고객에게 특가에 제공하는 ‘급소가격’ 을 비롯해 카테고리에서 인기가 있거나 가격 경쟁력이 우수한 제품에는 ‘갑오브갑’, 삐에로쑈핑에서 단독으로 만든 상품에는 ‘광대가격’ 이란 이름을 붙여 판매한다. 명품도 판매하는데 매장 관계자는 “면세점 수준의 가격 경험을 제공하는게 목표인데, 우선 백화점보다는 확실히 싸다”고 설명했다.

유통기한이 임박한 제품이나 부도 사업체의 제품을 특가에 제공하기도 한다.

유통기한이 임박한 제품이나 부도 사업체의 제품을 특가에 제공하기도 한다.

화장품의 경우 대형 브랜드 제품은 판매하지 않기로 했다. 유진철 삐에로쑈핑 담당 BM(브랜드매니저)은 “다른 품목도 기존 유통 업계에서 판매하기 어려운 중소기업의 제품을 적극적으로 유치해 홍보의 장이 되고자 한다”며 “주변 소매점과 중복되는 상품의 판매는 지양하고, 지역 명소로 손님을 모아 상권 활성화에도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삐에로쑈핑의 주요 타켓층은 20대와 30대다. 트렌드를 이끄는 이들 세대의 마음을 잡기 위해 매장 관리 방식도 바꾸기로 했다. 이마트에선 본사의 지침에 의해 모든 매장을 똑같이 운영하는 표준화를 추구했지만 이곳에선 소비자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일하는 점장의 권한을 키우기로 했다. 매장을 운영하면서 뒷부분에 놔뒀던 제품이 인기가 많다면 앞쪽으로 진열방식을 바꾸거나, 해당 매장에 납품을 원하는 업체가 있으면 담당자가 직접 상품을 매입하는 권한까지 주기로 했다. 특가 제품의 가격을 점장이 조정할 수도 있는데, 이렇게 되면 돈키호테처럼 매장마다 가격이 다른 제품이 생길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B급 만물상' 을 표방하는 삐에로쇼핑에는 주류를 비롯해 화장품, 장난감, 성인용품 등 4만개가 넘는 제품을 판매한다. [사진 이마트]

'B급 만물상' 을 표방하는 삐에로쇼핑에는 주류를 비롯해 화장품, 장난감, 성인용품 등 4만개가 넘는 제품을 판매한다. [사진 이마트]

삐에로쑈핑은 대형마트 등 기존 오프라인 시장의 정체를 극복하기 위한 돌파구다. 정 부회장은 그동안 수 차례 기존의 오프라인 매장의 한계에 대비해야 하며, 그 방안은 고객에게 머무르는 즐거움을 주는 것이라 강조해왔다. 지난해 하반기 경영전략회의 특강에서 “15년 만에 대형마트 매출이 반 토막 난 일본처럼, 우리나라 대형마트도 더 편하고 즐거운 경쟁 업태에 밀릴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올해 신년사에선 "스토리가 있는 콘텐트로 고객이 우리를 찾을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유진철 매니저는 “워낙 소비자들이 온라인으로 많이 넘어가고 있는 상황이지만 온라인은 상품을 직접 만지거나 둘러볼 수 없고, 기존 오프라인은 가격이 비싸고 상품 종류도 적고 재미가 없었다”며 "기존의 온·오프라인을 넘어서는 새로운 쇼핑경험을 제공하는게 목표"라고 말했다.

이마트는 이번 1호점에 이어 동대문 두타와 논현동에 각각 삐에로쑈핑 2,3호점을 올해 안에 추가로 연다. 서울과 수도권 위주로 매장을 연 뒤에 지방에도 매장을 확대할 계획이다.

강나현 기자 kang.na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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