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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결정 앞둔 양심적 병역거부 4인 "새로운 길 열렸으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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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적 병역거부를 선언한 대한민국 남성들. 왼쪽부터 사진가 김민(26)씨, 징역형을 산 변호사 백종건(34)씨, 프랑스로 망명한 이예다(27)씨, 1심에서 유죄 선고를 받은 활동가 홍정훈(28)씨. [사진제공 김민, 백종건, 이예다, 홍정훈]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언한 대한민국 남성들. 왼쪽부터 사진가 김민(26)씨, 징역형을 산 변호사 백종건(34)씨, 프랑스로 망명한 이예다(27)씨, 1심에서 유죄 선고를 받은 활동가 홍정훈(28)씨. [사진제공 김민, 백종건, 이예다, 홍정훈]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서로 다른 시계를 차고 살아간다. 결심과 선언 시기에 따라 이들이 헌법재판소의 양심적 병역거부 선고를 기다려온 시간은 달라진다.

헌재, 28일 '양심적 병역거부' 선고 #양심적 병역거부 무죄판결 70건 돌파 #"병역회피 아닌 선택 기회 달라는 것" #與 "합헌이면 하반기 대체복무제 입법"

종교적 이유로 병역을 거부해 온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에겐 수십 년의 기다림이, 이제 막 병역거부 대열에 동참한 청년에겐 수개월의 시간이 서로 다른 초침을 통해 흘러간다.

중앙일보는 28일 헌법재판소의 병역법 88조 1항에 대한 위헌법률심판 결정을 앞두고 서로 다른 상황에 놓여있는 4명의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찾아 소회를 물었다. 정당한 사유 없이 입대에 불응할 경우 3년 이하 징역에 처하도록 한 이 조항은 병역거부자 처벌의 핵심 근거였다.

인터뷰에 응한 이들은 "이번 헌재 결정은 과거와는 다를 것"이라며 병역법 위헌, 즉 양심적 병역거부 합헌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었다. 앞선 2004년과 2011년 '병역법 합헌' 결정과는 다를 것이란 기대감이다.

헌법재판소는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을 28일 선고한다. [사진 국제엠네스티]

헌법재판소는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을 28일 선고한다. [사진 국제엠네스티]

이들을 둘러싼 주변 환경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대체복무제를 공약으로 내세운 정부가 출범했고, 1·2심에서 양심적 병역거부 무죄 판결도 70건을 넘어섰다. 지난해 10월과 11월 인사청문회를 거친 이진성 헌재소장과 유남석 헌법재판관 모두 양심적 병역거부에 긍정적 입장을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은 "헌재가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할 경우 올해 하반기 내에 대체복무 입법을 추진할 것"이라 했다. 국방부도 26일 "국회와 사법부에서 깊이 있는 논의를 통해 대체복무 도입 여부를 판단해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며 전향적 입장을 드러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하지만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여론은 이중적이다. 2016년 국제앰네스티가 한국갤럽에 의뢰한 양심적 병역거부 관련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72%가 양심적 병역거부에 거부감을 밝혔다. 그러나 응답자 중 70%가 대체복무제에 도입에는 찬성 입장을 밝혔다. 이강국 전 헌재소장은 "선고에 대한 섣부른 예단은 금물"이라며 "결과는 선고가 끝날 때에야 알 수 있는 것"이라 했다.

#백종건 변호사
백종건 변호사(33)는 사법시험 합격자 중 첫 양심적 병역거부자다. 여호와의 증인 신도인 그의 아버지도 병역 거부로 투옥됐다. 아버지 일을 계기로 변호사가 됐지만 그 역시 감옥을 피할 순 없었다.

백 변호사는 지난해 수감 생활을 마치고 대한변협에 변호사 등록을 신청했지만 금고 이상의 형을 받으면 '5년간 자격정지'라는 변호사법을 이유로 거절당했다. 현재 변호사 사무실에서 사무직으로 근무 중인 그는 "헌재가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지 않으면 변호사 활동이 어려운 상황"이라 했다.

사법연수원 시절 백종건 변호사(34)의 모습. 백 변호사는 복역후 대한변호사협회에 변호사 등록을 신청했지만 유죄 선고를 이유로 거절당했다. [사진 백종건 변호사]

사법연수원 시절 백종건 변호사(34)의 모습. 백 변호사는 복역후 대한변호사협회에 변호사 등록을 신청했지만 유죄 선고를 이유로 거절당했다. [사진 백종건 변호사]

백 변호사는 여호와의 증인들에 대한 오해가 있다며 "대체 복무제가 도입돼 양심도 지키고 국가를 위해 책임도 다하고 싶은 것이 저희들의 마음"이라 말했다. 특혜나 면제를 바라는 것이 아니란 주장이다.

#홍정훈(28) 활동가
참여연대 활동가인 홍정훈씨는 지난해 4월 병역을 거부한 이유로 1년 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홍씨는 "적을 상정하고 폭행이 용인되는 군대에 내 자신을 갈아넣을 수 없었다"며 "폭력을 반대하는 개인적 신념 때문에 병역을 거부했다"고 말했다.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언한 뒤 2017년 4월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홍정훈(28)씨. 불구속 상태에서 작년 8월로 예정됐던 그의 항소심 재판은 헌재 판결까지 연기된 상태다. [사진 홍정훈]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언한 뒤 2017년 4월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홍정훈(28)씨. 불구속 상태에서 작년 8월로 예정됐던 그의 항소심 재판은 헌재 판결까지 연기된 상태다. [사진 홍정훈]

그는 헌재가 기존 판단을 유지할 경우 징역형을 살 가능성이 높다. 이에 대해 "감옥은 당연히 두려운 공간"이라며 "그럼에도 감옥에 가겠다는 병역 거부자들이 얼마나 절박하고 위중한 심정인지 알아주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예다(27)씨
이예다씨는 2012년 7월 징병제 반대와 양심적 병역거부를 이유로 프랑스에 난민 신청을 했고 9개월 뒤 난민 지위를 획득했다. 그는 병역 거부로 프랑스에서 난민 자격을 얻은 최초의 한국인이다.

이예다(27)씨는 2012년 7월 징병제 반대와 양심적 병역거부를 이유로 프랑스 정부에 난민 신청을 했고 2013년 6월 난민 지위를 인정 받았다. [사진 이예다]

이예다(27)씨는 2012년 7월 징병제 반대와 양심적 병역거부를 이유로 프랑스 정부에 난민 신청을 했고 2013년 6월 난민 지위를 인정 받았다. [사진 이예다]

이씨는 "병역거부를 이유로 인권이 외면당한 채 처벌과 차별을 받는 사람들이 더는 나와선 안 된다"며 "헌재가 잘못된 역사를 인정하고 옳게 고쳐나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다만 이씨는 대체복무제가 도입된다 하더라도 "한국에 돌아갈 이유는 없는 것 같다"고 했다.

#김민(26)씨
사진가로 활동해 온 김민씨는 지난 18일 입대를 거부하고 양심적 병역거부 선언을 했다. 헌재가 25일 병역법에 대한 위헌선고 시점을 발표하기 1주일 전이었다. 김씨는 "이렇게 헌재 선고가 신속할 줄 몰랐다"며 "감옥에 갈 각오를 했는데 혼란스러운 마음이 조금 크다"고 했다.

지난 18일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언한 사진가 김민(26)씨. 김씨는 특정 종교를 갖고있진 않지만 사진가로 활동하며 겪은 다양한 경험들이 병역거부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사진 김민]

지난 18일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언한 사진가 김민(26)씨. 김씨는 특정 종교를 갖고있진 않지만 사진가로 활동하며 겪은 다양한 경험들이 병역거부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사진 김민]

김씨는 "사회활동을 시작하며 6~7년간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고민하며 살아왔다"며 "사진을 촬영하며 고통받는 약자들과 연대하는 분들을 마주했고 그 결심을 점점 더 굳혀왔다"고 말했다. 김씨는 "감옥이든, 대체 복무든 어떤 것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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