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주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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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한잔 먹세 그녀/또 한잔 먹세 그녀/꽃 꺾어 산 놓고/무진무진 먹세 그녀』로 시작되는 송강 정철의 『장진주사』는 읊기만 해도 벌써 취흥이 오른다. 풍류를 아는 술자리에서는 으례 한번쯤 외어보는 국문학의 백미다.
글이 그러할진대 송강이 술을 좋아했을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아니, 좋아한 정도가 아니라 다소 지나쳤던 모양이다. 그의 글속에는 술을 마시고 후회하는 대목이 더러 보인다.
그의 『송강집』에 나오는 『계주문』이란 글을 보면 송강이 술을 마시는 이유를 네가지로 들고 있다.
첫째는 심신에 불평이 있어 마시고, 둘째는 어떤 감흥으로 인해 마시고, 셋째는 손님을 대접하느라고 마시고, 넷째는 남이 권하는 것을 막지 못하고. 마신다는 것이다.
그러나 송강은 스스로 자문해본다. 어떤 일 때문에 불평이 생길 때는 이해하면 되고, 감흥이 있을 때는 노래나 시를 읊으면 되고, 또 친구가 찾아오면 술이 아니더라도 정성과 친근을 베풀면 그만이고, 술자리에서 지나치게 권하는 이가 있다하더라도 자기 마음만 흔들리지 않으면 되지 않느냐고.
하지만 그게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송강의 『계주문』은 『마음이여, 뜻이여, 누가 너를 통솔하더냐』는 자탄과 반생으로 끝을 맺고 있다.
그러고 보면 술에 관한 시비는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
중국기록에는 우 임금때 의적이 술을 만든 것으로 되었다. 그런데 우 임금이 술을 마셔보고 『후세에 반드시 술로써 나라를 망칠 자가 있을 것이다』고 예언했다. 과연 우의 후손 걸이 술로 하 나라를 망쳤다.
공자는 『술을 사양하지 않고 마시지만 난의 정도에 이르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가하면 서양의 철학자「러셀」은『음주는 일시적 자살』이라고까지 혹평했다.
어제신문을 보면 지난 6일부터 음주혼전 처벌이 대폭 강화되자 술집 앞에 자가용이 크게 줄었다고 한다. 음주운전은 자시의 즐거움을 좇다가 자칫 남에게 피해를 주기 십상이다. 자동차라는 「흉기」가 있는걸 알았던들 옛 선인들의 술에 대한 평가도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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