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과 재미, 지루하지 않은 오페라 '돈조반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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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대의 난봉꾼 돈조반니(돈후안)는 결국 불구덩이 속으로 떨어진다. 하지만 1막에서 농민 행렬에서 실감나는 무대를 연출했던 횃불이 정작 가장 중요한 피날레 장면에서는 불발로 끝나고 말았다. 리허설 때 무대 전체를 휘감았던 불길이 치솟지 않았다.

드라이아이스로 만든 연기만 자욱할 뿐. 승강(昇降)무대는 올라오다가 멈춰 서기까지 했다. 돈나 안나가 무대막 앞에서 아리아를 열창할 때 안쪽에서는 무대 전환 때문에 마치 천둥 치는 소리를 냈다. 개관 후 14년째인 극장이니 만큼 무대설비를 교체할 때가 된 모양이다.

모차르트 탄생 250주년을 맞아 20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막이 오른 오페라 '돈조반니'(23일까지)는 휴식시간 30분을 포함해 3시간 30분 가까이 걸리는 대작이다. 그동안 국내에서는 군데군데 가위질을 하기 일쑤였지만 이번에는 '풀 버전'을 올렸다.

하지만 군더더기 없이 짜임새 있는 구성과 다채로운 음악으로 다양한 등장 인물의 성격을 묘사한 모차르트의 음악과 쉴 새 없이 움직이는 회전 무대 덕분에 지루한 줄을 몰랐다. 돈조반니 역에 잘 어울리는 훤칠한 몸매의 소유자인 바리톤 지노 킬리코, 유럽 무대에서 모차르트의 코믹 오페라로 잔뼈가 굵은 베이스 연광철(레포렐로 역)의 콤비 연기가 시종 배꼽을 잡게 했다.

돈조반니의 마수에 걸려든 세 여자는 모두 소프라노다. 특히 탄탄한 발성과 호소력 짙은 고음 처리로 극적인 깊이를 더해준 소프라노 박은주의 활약이 눈부셨다. 아버지(기사장)를 찔러 죽인 돈조반니에게 복수를 결심하는 돈나 안나 역을 맡아 희극 속의 비극적 색채를 돋보이게 했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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