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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 담판에 드리운 '이란 핵합의'의 망령…"더 나은 합의하면 세기의 기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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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0일 밤 전용기인 에어포스원을 타고 싱가포르 공군기지에 도착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비비안 발라크리슈난 싱가포르 외교장관(오른쪽 둘째)의 영접을 받은 후 숙소인 샹그릴라 호텔로 이동했다. [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0일 밤 전용기인 에어포스원을 타고 싱가포르 공군기지에 도착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비비안 발라크리슈난 싱가포르 외교장관(오른쪽 둘째)의 영접을 받은 후 숙소인 샹그릴라 호텔로 이동했다. [AFP=연합뉴스]

“트럼프가 북한 비핵화 협정을 확실히 해내고 다른 (군사적) 우환을 영구적으로 없앤다면 ‘현세의 기적’이 될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선 이란 핵합의를 반영하는 수준만 끌어내도 주요한 성취일 테다.”

미국 매체 폴리티코 '트럼프의 딜레마' 분석 #"더 넓은 장기적 결과물 자신했던 게 족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역사적인 싱가포르 회담(6월12일)을 앞두고 미국 정치전문지 폴리티코가 10일(현지시간) 내놓은 전망이다. 이번 북·미 정상회담은 개최 직전까지 협상이 진통을 겪고 있는데다 실질적인 합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반신반의하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폴리티코는 무엇보다 트럼프가 파기해버린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가 김정은과의 핵 담판에 족쇄로 작용할 거라고 관측했다.

이렇게 된 이유는 근본적으로 트럼프가 북핵 협상의 기대치를 높였기 때문이다. 버락 오바마 정부 시절 타결된 JCPOA에 일몰 조항(sunset clauses) 등이 포함된 것을 두고 트럼프는 “최악의 합의”라고 비난해 왔다. 측근들은 JCPOA를 파기한 덕에 미국이 사전 대북 협상에서 더 강한 압박을 할 수 있었다는 주장도 했다. 거꾸로 말하면 이제 김정은이 협상장에 나온 상황에서 트럼프는 JCPOA보다 높은 수준의, 장기적 결과물을 끌어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문제는 북핵이 이란핵보다 훨씬 합의하기 까다롭다는 점이다. 폴리티코에 따르면 첫째 북한은 실제로 핵무기를 완성했고(반면 이란은 개발 초기단계였음) 둘째 핵프로그램 목적을 군사위협용으로 과시해왔으며(이란은 평화적 활용이라고 주장) 셋째 북한이 경제 지원보다 체제 보장을 원한다는 점, 마지막으로 국제 제재를 통한 타격 강도가 이란보다 북한이 훨씬 덜하다는 이유 때문이다. 한마디로 북한이 핵을 협상의 레버리지(지렛대)로 활용할 수 있는 여력이 이란보다 크다.

북미 정상회담을 이틀 앞둔 10일 오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싱가포르 창이공항에 도착, 에어차이나 항공기에서 내려 비비안 발라크리쉬난 싱가포르 외무장관과 악수하고 있다. [싱가포르 외무부=연합뉴스]

북미 정상회담을 이틀 앞둔 10일 오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싱가포르 창이공항에 도착, 에어차이나 항공기에서 내려 비비안 발라크리쉬난 싱가포르 외무장관과 악수하고 있다. [싱가포르 외무부=연합뉴스]

게다가 트럼프는 이란 협상이 너무 좁은 범위를 다뤘다고 비난해 왔다. 이란의 탄도미사일이나 테러리즘 지원 등을 거론하지 않은 미완의 합의라는 주장이다. 반면 오바마 정부 측은 그같은 문제를 도외시한 게 아니라 이란의 거부로 합의 대상에 포함시키지 못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것까지 포함했으면 아예 합의가 되지 않았을 거란 주장이다.

트럼프의 역시 비슷한 딜레마에 처할 수 있다. 트럼프가 협상장에서 북한 인권이나 생화학 무기 비축분을 거론한다면 협상은 공전을 할 가능성이 커진다. 그렇다고 이런 이슈를 도외시한다면 미국내 여론을 악화시킬 뿐 아니라 ‘JCPOA와 다를 바 없다’는 자기 모순에 빠지게 된다.

폴리티코는 특히 이번 협상의 난제가 김정은이 트럼프에게서 뭘 원하는지 불확실하단 점을 들었다. 설사 김정은이 핵무기를 장기간 포기한다고 한들 주한미군 철수 등을 조건으로 제시한다면 논란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결국 북한이 원하는 '체제 보장'의 합의점이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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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정의 지속성도 문제다. 앞서 트럼프와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북한과 어떤 합의를 하더라도 상원에서 조약 형태로 공고화되도록 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이는 북한이 원하는 불가역적인 체제 보장을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그러나 양당이 엇비슷한 동수로 대립하는 상원에서 3분의2 이상의 찬성을 얻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미국의 JCPOA 파기 이후 이란은 여차하면 핵프로그램을 재가동할 수 있다는 압박을 높이고 있다. 지난 6일엔 원자력청장이 우라늄을 농축하는 신형 원심분리기(IR-8, IR-6) 생산 시설을 완공했다고 밝히면서 “산업용이 아니라 연구용”이라고 주장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지난 5일엔 핵합의 당시 협상단 대변인을 맡았던 세예드 호세인 무사비얀이 미국 기반의 NK 뉴스에 기고한 칼럼을 통해 협상에 임하는 김정은에게 직접 조언을 했다. “북한은 협상의 최대 무기가 핵이란 걸 잊지 말라” “초반에 이를 포기하면 안 된다. 상호성에 따라 단계적 합의를 추구해야 한다” 등이다.

폴리티코는 “이란이 이를 통해 북·미 정상회담에 폭탄을 던지려 한 것은 아닐지라도 트럼프로선 김정은과의 협상에서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란 및 북한과 핵문제로 자주 접촉해온 수전 디마지오 뉴 아메리카재단 국장 겸 선임연구원은 “북한은 비공식 대화에서 줄기차게 이란 핵합의 얘기를 꺼냈다”면서 “트럼프 정부는 북한과 이란 핵합의 수준만 끌어내도 행운일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이란 때보다 더 나은 합의를 끌어낸다면 '현세의 기적'이나 다름 없을 것"이라고 비유했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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