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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빈의세상담론] 아베 신조와 한·일 관계를 논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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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아베 신조 장관(왼쪽)과 권영빈 발행인이 14일 오전 아베 장관 집무실이 있는 도쿄의 총리관저 내 귀빈실에서 대담하고 있다. 두 사람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서 일본 내 한류 붐까지 다양한 주제를 놓고 허심탄회하게 얘기했다. 사진=권철 재일 사진작가


아베 신조 일본 관방장관과 중앙일보 권영빈 사장 겸 발행인의 대담은 14일 오전 도쿄의 총리 관저에서 이뤄졌다. 일본이 독도 주변의 한국측 배타적 경제수역(EEZ) 안에서 해양조사를 하겠다고 발표한 것은 이날 오후였다. 이에 따라 대담 당시에는 이 문제에 관한 언급이 없었다. 하지만 해양조사가 양국 간 외교 이슈로 불거지면서 권 발행인은 아베 장관 측에 '최근 독도 인근 수역에 대한 일본 정부의 해양조사 방침에 한국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물리적 충돌의 가능성도 있다. 일본 정부는 이 현안을 어떻게 풀 참인가'라는 내용의 서면 질의를 추가로 보냈다. 이에 아베 장관은 "일본 측으로선 서로 냉정한 대응이 필요하며, 가능한 한 원만한 해결을 도모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한국 정부와 접촉하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전해 왔다.

한편 아베 장관은 19일 도쿄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독도 주변 해역에 대한 일본의 해양조사에 대해 한국 정부가 크게 반발하고 있다'는 지적에 "조사는 한국도 하며 서로 냉정하게 대처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18일에는 관저에서 이시카와 히로키(石川裕己) 해상보안청 장관을 만나 "국제법에 따라 냉정히 대처하라"고 지시했다. 아베 장관이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밑에서 중요한 외교 사안에 대한 대처를 주도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일부에선 아베 장관을 이번 해양조사 방침을 막후에서 기획한 인물로 지목하기도 한다. 하지만 본인은 이를 강력하게 부인한다.

북한에 납치된 일본인 요코타 메구미의 남편이 한국인 납북자 김영남이라는 유전자(DNA) 감정결과를 최근 일본 정부가 발표한 것도 그의 의지에 따른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아베 장관은 일본 정부와 정계에도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으며, 고이즈미를 이을 차기 총리로 가장 유력하다.

권영빈=오늘은 관방장관 아베 신조가 아닌 가장 유력한 차기 일본 총리 후보로서 여러 의견을 나누고 싶다. 아베라는 정치인 속에는 보수와 진보, 강경과 유연, 국가주의와 글로벌리즘이란 여러 가지 이미지가 공존하는 것 같다. 하지만 한국에서 당신은 강한 매파로 알려져 있는 편이다.

아베=난 외교.안보 분야에서 현실에 바탕을 둔 정책을 펴고 있다. 일본에선 안보문제에 대해 현실적인 발언을 하면 매파란 비판을 받곤 한다. 그런 일본 매스컴의 시각이 한국에도 전달된 것 같다. 매파라고 낙인 찍는 사람들에 대해 나는 일일이 반론하지 않는다.

권=올 9월 새 총리가 선출되는데, 일본 총리는 아시아, 나아가 세계의 지도자로서 큰 관심을 모은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를 어떻게 보나.

아베=일본은 60년 전 역사에 대한 반성 위에서 자유.민주주의와 인권을 지키고 세계평화에 이바지하는 나라를 만들어 왔다. 한국과도 그런 반성의 바탕 위에서 관계를 구축해 왔다. 이 자세는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 것이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그런 반성을 부정하는 것도 아니고, 전후 일본이 걸어 온 길을 부정하는 것도 아니다. 그곳을 참배하는 것은 전몰자 추도의 전통적 형태일 뿐이다. 오해가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푸는 노력을 해 나가야 한다고 본다. 물론 과거의 역사라는 게 존재하기 때문에 한국 사람들이 반발하는 것도 이해한다. 그런 점에서 '난 야스쿠니에 가겠다'고 선언할 생각은 전혀 없다.

권=전몰자에 대한 추모는 해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A급 전범이 문제다. 야스쿠니에는 본의 아니게 한국인도 2만 명가량 합사돼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전범에 대해 전범 취급을 하지 않으면 미국과 일본 간 관계도 문제가 생길 것이다. 그런 점에서 과거사에 대한 감정적 처리를 합리적으로 처리하는 방식으로 분사가 가장 좋다고 본다.

아베=일본 안에도 그런 주장이 있다. 하지만 현재 난 관방장관이라는 입장에 서 있으며 헌법의 20조에는 '정부가 신앙의 자유를 침해해선 안 된다'는 조항이 있다. 따라서 야스쿠니 신사 스스로 결정할 문제지 내가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는 입장임을 이해해 달라.

권=올 2월 한국의 중앙일보, 중국의 신화통신, 일본의 니혼게이자이 신문이 공동으로 '한.중.일 30인회'를 서울에서 열었다. 회의의 결론은 첫째, 각국 내부의 정치적 입장에서 벗어나 공통 관심사에 접근하자. 둘째, 과거지향적 부정적 사고에서 벗어나 미래지향적 긍정적 사고로 접근하자. 셋째, 선언적 구호에 집착하지 말고 구체적 실천방안을 논의하자는 것이었다. 세 나라가 이런 관점에 선다면 그다지 어려운 일도 없을 것이다.

아베=일본은 과거사에 대한 반성과 겸허한 자세를 계속 갖고 가겠지만 (세 나라 모두) 이를 정치.경제 문제에 끌어들이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한국과 일본은 자유.민주주의와 인권 존중, 법의 지배란 공통된 가치를 공유하고 있다. 세 나라는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관계며, 공생의 가치관을 갖고 있다.

권=그런 차원에서 총리가 되면 한.중.일 정상회담 개최를 제안할 의사는.

아베=일찍이 '아세안+3' 회의 때 3국 정상회담이라는 게 있었다. 일본으로서도 가능하다면 (3국 정상회담 제안을) 하고 싶다.

권=그러나 일본의 현 외교정책은 미국을 중시하고 아시아를 경시하는 것 아닌가. 또 아시아 정책에 있어서도 인도와 호주를 끌어들이며 한국과 중국은 등한시하는 것 아닌가.

아베=미.일 동맹을 보다 확실히 하려는 건 한.미 동맹에 대해 한국인이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또 인도와 호주를 아시아의 틀로 끌어들이는 것이 한.중.일 모두에 도움이 된다. 현재 한.일 정상 간 대화가 막혀 있지만 일본의 문은 언제나 열려 있다.

권=한국에서 대북 문제는 두 개의 대립된 구도다. 하나는 '같은 민족이니까 화해 협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전쟁을 일으킨 집단에 일체의 협조와 원조는 있을 수 없다'는 증오와 원한의 시각이다. 김대중 정부 이후 두 개의 대립구도를 합쳐 '화해협력과 외교안보를 중시한다'는 '투 트랙(two-track)'정책을 취하고 있다. 지난해 여름 한국에서 열린 한.일포럼에 참석했던 다나카 히토시 전 외무성 심의관은 '왜 대북 문제에 적극적이냐'는 나의 질문에 '남북분단의 책임은 일본의 조선 강점과 무관치 않다고 본다. 지난 일본의 역사의 잘못에 대한 반성으로 대북 관계에 성의를 다하고자 했다'고 답한 것을 기억한다. 이렇듯 일본 내에서도 북.일 교섭을 해야 한다는 쪽과 납치 문제 해결 전에는 교류협력을 할 수 없다는 두 대립된 흐름이 있을 텐데 대북 문제를 '투 트랙'으로 할 의향은 있는가.

아베=대화와 압력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것이다. 대화를 하지 않고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그래서 북한과는 '납치 문제' '안전보장 문제', 그리고 과거청산을 포함한 '국교 정상화 문제'란 세 가지 트랙으로 접근하려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진전이 잘 안 된다.

권=납북자 문제에 대해선 일 정부는 공격적으로 대응해 북한 김정일 위원장의 시인과 사과를 얻어냈다. 반면 한국은 협력과 대화 쪽에 너무 힘을 싣다 보니 정당한 요구조차 하지 못했다. 그러나 요코타 메구미의 남편이 한국인 김영남으로 드러난 이후 한국 정부도 납북자 문제를 경제지원 문제와 연계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 한국과 일본이 협력작전을 펴는 것도 효과적이라고 본다.

아베=맞다. 납치 문제 전반에 대해 양국이 협력할 일은 많이 있다. 반드시 협력해야 한다.

권=한.일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중단된 지 1년이 넘었는데.

아베=FTA는 두 나라에 다 큰 이익이 된다. 서로가 이를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개별 문제를 논의하다 보면 서로 격한 이견과 정치적 문제가 발생한다. 나도 관련 당국에 한.일 FTA를 반드시 가속화시킬 것을 지시하고 있다.

권=개인적으로 한국 사회의 문제점은 소모적 이념적 논쟁, 변화의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다는 점, 청년실업 등을 들 수 있다. 일본은 어떤가. 또 고이즈미 총리는 '우정 민영화'를 직을 걸고 해냈는데 아베 장관이 총리가 되면 어떤 개혁을 하고 싶나.

아베=무엇보다 (총리가 되면) 교육개혁을 하고 싶다. 교육 수준을 올리고 국제화를 추진할 것이다. 고등교육은 세계의 여러 우수한 학생들이 일본에 공부하러 오게끔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 조기 영어교육에 반대여론도 있지만 문법.독해뿐 아니라 (영어로) 말하거나 듣는 능력에 힘을 쏟을 필요가 있다.

권=하지만 지금 말한 교육의 국제화란 관점과 아베 장관이 주장하는 애국주의 교육이란 상반된 것 아닌가. 신사참배, 역사 교과서, 독도 문제 등으로 애국 포퓰리즘을 고양시키려는 정치적 계산은 없는가.

아베=국제인이 되기 위해선 자신의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잘 알고 그에 대해 '조용한' 자긍심을 갖는 게 필요하다. 내가 강조하는 건 (자기가 사는) 지역이나 국가를 사랑하는 마음을 양성하자는 것이지, 국가주의적인 것을 가르치자는 게 아니다.

권=아베 장관과 부인 모두 한국문화에 관심이 깊다고 하는데.

아베=일찍이 조선통신사가 일본에 건너와 여러 문화를 전파했는데 그 분들이 내 고향인 시모노세키에 가장 먼저 상륙했다. 비도 세워져 있다. 한국의 영상과 음악, 특히 영화나 TV 드라마 등은 요즘 엄청난 붐이다. 나도 지난주 처와 함께 '내 머리속의 지우개'란 한국 영화를 비디오로 봤다. 내 처는 지금 한글을 배우고 있는데 잘 늘진 않는다(웃음).

권=맞다. 문화의 수신과 발신이 동시에 이뤄지면 과거사 문제 등 작은 이해 문제는 잘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아베=(한국어로) 감사합니다.

정리=김현기 도쿄특파원

아베 관방장관 1954년생. 올 9월로 예정된 자민당 신임 총재(총리) 선거에서 가장 유력한 후보로 꼽힌다. 세이케이(成蹊)대학과 미국 남캘리포니아대학(USC) 졸업 후 고베철강에 입사했다.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전 총리가 외할아버지며, 총리 후보였던 아베 신타로 전 외상이 아버지로 정치 명문가 출신이다. 정계에는 외상 시절 아버지의 비서관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2002년 9월 고이즈미 총리를 따라 북한을 방문했을 때 "납치 문제에 대한 김정일의 사과 없인 평양선언에 서명해선 안 된다"고 주장한 것이 국민에게 높이 평가받으며 차세대 지도자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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