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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아직도 도시의 성공을 꿈꾸는가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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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7호 30면

서점가에 부는 탈서울 바람

저는 아직 서울이 괜찮습니다

저는 아직 서울이 괜찮습니다

저는 아직
서울이 괜찮습니다
이상빈·손수민 지음
손수민 그림, 웨일북

일만 하다 시드는 ‘피로사회’ #고용 없는 성장, 양극화의 일상화 #내일 위해 오늘을 접는 시대 끝나 #농촌에서 시작한 ‘인생 2막’ #하동으로, 군산으로, 고성으로 … #회계사·디자이너 등 전문가 이주 #서울 탈출만이 답은 아니다 #쇠락한 을지로 일구는 예술가들 #함께 어울리는 도심공동체 기대

서울을 떠나는
삶을 권하다
배지영 지음, 이와우

서울을 떠나는 삶을 권하다

서울을 떠나는 삶을 권하다

다시, 을지로
김미경 지음, 스리체어스

온다 씨의 강원도
김준연 지음, 온다프레스

힘들어도 괴롭진 않아
원유헌 글·사진, 르네상스

서울의 인구는 2013년 1038만 8000명에서 2018년 984만 5000명으로 줄어들었다. 근대화의 깃발을 올린 이래, 물질주의와 개발주의로 압축되는 ‘서울의 삶’은 누구나 열망하는 우리 삶의 기본 모델이었다. 하지만 더 이상 아니다. 지금은 많은 이들이 ‘서울 이후의 삶’ 또는 ‘서울 바깥의 삶’을 모색한다. 인간 없는 성장을 기본으로 하는 경제구조의 변화, 역사상 최고의 스펙을 갖고도 해소될 길 없는 실업 속에서 고통당하는 청년들, 그리고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 시작과 연금 세대의 본격적 출현이 이를 떠받치고 있다. ‘서울 탈출’은 이 시대의 메가트렌드다.

그에 따라 ‘서울 바깥의 삶’에 대한 책들이 쏟아지고 있다. 전원생활이나 귀농·귀촌 관련 서적만은 아니다. 수평으로 확장하고 수직으로 융기하는 ‘고층의 모던 도시’는 여전히 매혹적이지만, 책에서 다루는 사람들은 “열심만으로 턱없이 부족한 이 도시”에서 “너무 오래 열심만 쫓다가 연료가 다하는”(『저는 아직 서울이 괜찮습니다』) 이 삶의 가치를 이제 확연히 의심한다.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해서 적당히 속이며 사는 삶, 내가 가진 것보다 더 많이 가진 것처럼 포장하며 사는 삶”(『서울을 떠나는 삶을 권하다』)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한다. ‘서울 가는 것’이 삶의 목적이자 해결책인 시대는 빠르게 사라지는 중이다.

서울은 더이상 누구나 꿈꾸는 이상적인 삶의 공간이 아니다. 젖과 꿀이 흐를진 몰라도 대도시의 삶은 고달프다. 그래서 도시에서 탈출해 자기 삶의 주인이 되라는 내용의 책이 꾸준히 출간된다. [중앙포토]

서울은 더이상 누구나 꿈꾸는 이상적인 삶의 공간이 아니다. 젖과 꿀이 흐를진 몰라도 대도시의 삶은 고달프다. 그래서 도시에서 탈출해 자기 삶의 주인이 되라는 내용의 책이 꾸준히 출간된다. [중앙포토]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뿌리를 거슬러 오르면, 스무 해 정도 된다. 전국귀농운동본부에서 만든 『귀농, 아름다운 삶을 찾아서』가 나온 것이 1998년이다. 동아시아 금융 위기 직후, 직장을 잃고 절망에 빠진 이들에게 농촌이 삶의 대안으로 제시된다. ‘서울의 삶’의 일반적 우위에 거의 최초로 균열이 생긴 것이다. 200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흐름이 강화되고 구조조정이 일상화된 데다 고용 없는 성장이 계속되고 양극화가 본격화하자, 북유럽 사회 모델 등 ‘또 다른 삶’을 다룬 책들이 서가를 점령하기 시작한다. 2014년 출간 직후 베스트셀러에 오른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더숲)는 대안적 삶의 열망이 우리 안에 얼마나 거대한 크기로 잠재했는지를 보여준다.

다시 을지로

다시 을지로

‘서울 탈출’은 ‘근대화 이후의 삶’에 대한 우리들의 갈망을 보여준다. 우리는 “사회가 요구하는 경제력, 다시 말해 돈 버는 일을 극단적으로 추구하는 피로한 삶”(『다시, 을지로』)에서 벗어나고 싶다. 경제성장을 빌미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던, 맹목적 국가 발전의 신화는 역사적 임무를 다하고 파산했다. 출세와 대박을 좇던 천박한 욕망의 시스템도 균열이 가는 중이다. ‘훗날의 저기’에 시간을 모조리 쏟아 넣고, ‘지금 여기’의 빈곤과 불우를 견디며 살아가는 프로테스탄티즘 윤리는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

“큰 프로젝트를 맡아서 선수금 5000만 원이 들어왔을 때였어요. 그제야 제 모습이 보이더군요. ‘돼지’가 된 제가 5.4평짜리 집의 컴퓨터 앞에 덩그러니 앉아 있더라고요. 좋은 학교 나와서 나쁘지 않은 조건을 갖춘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제 꼴이…….”(『온다 씨의 강원도』) 이것이 정말 우리가 바랐던 삶이란 말인가.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평범하고 따분하고 안온하게 살아가는 지속가능한 일상이 아니었던가.

‘서울 탈출’은 삶의 중심축을 부의 무한성장에서 행복의 지속 가능성으로 옮기면서 시작된다. 젊어서는 돈이 없어 일터에서 죽도록 일해 산업자본 좋은 일만 하고, 나이 들어 살 만하니 아프고 병들어 의료자본의 먹잇감으로 죽어가는 이상한 삶은 이제 그만! 무섭고 숨 막히고 외로워 죽을 것 같은데 자본이 나누어주는 꿀을 빨면서 끝없는 허기를 느껴야 하는 도시의 삶이여, 안녕. 우리한테는 이제 ‘힘들어도 괴롭지 않은’ 인생이 필요하다네.

온다씨의 강원도

온다씨의 강원도

이러한 인생을 사는 데 방해가 된다면 서울을 과감히 버리고 지역으로 이주한다. 『서울을 떠나는 삶을 권하다』는 서울을 떠나서 하동, 구례, 군산, 제주 등에 둥지를 튼 일곱 사람을, 『온다 씨의 강원도』는 서울에서 회계사, 편집자, 디자이너 등 주로 전문직으로 일하다가 속초, 양양, 고성으로 이주한 아홉 사람을, 『힘들어도 괴롭진 않아』는 지리산 아래 구례로 귀농한 기자 농부 원유헌을 다루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하나다. ‘서울의 삶’ 어디 갈래에서 잃어버린 “자기 삶의 중심”을 잡는 “두 번째 인생”을 시작하기 위해서다.

사실, “자기 삶의 주인”이 될 수만 있다면 굳이 서울에서 멀리 떠날 필요는 없다. 『다시, 을지로』는 을지로의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들과 퇴락한 위엄을 자랑하는 세운상가를 배경으로 기술과 예술이 어우러지는 새로운 도심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청년 예술가들을 다룬다. 『저는 아직 서울이 괜찮습니다』는 “더 새롭고 더 발전된 것만을 추구하며 끝없이 변화해 온 서울의 삶”에 인간적 “기억과 추억”을 입혀 따스한 공간으로 바꾸어 가는 일상의 순간을 포착한다. 체온을 나누고 기억을 공유하는 다정하고 친절한 존재들이야말로 우리 삶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들이 아니겠는가.

힘들어도 괴롭진 않아

힘들어도 괴롭진 않아

뭣 때문에 억지로 하기 싫은 일을 하면서 모멸을 견디고, 어쩔 수 없이 나쁜 짓을 저지르면서 자신을 경멸해야 하는가. 부질없는 출세의 욕망 탓에 일벌레로 세월을 보낸단 말인가. 미래의 행복을 빌미로 현재의 불행을 감당하는 일은 안전 자산에 대한 가치 투자가 아니라 투기 상품에 내기를 거는 위험 도박에 불과하다. 카르페 디엠의 윤리학, ‘지금 이 순간’ 사랑과 우정과 육아의 사소한 기쁨을 만끽하면서 행복을 붙잡는다. 이것이 ‘서울 탈출’의 시대정신이다.

서울을 떠나 새로운 터전을 꾸미려는 이들이든, 서울의 풍경을 사람이 느껴지게 바꾸려는 이들이든, 서울에서 친밀한 당신을 확인하면서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려는 이들이든, 이제 우리의 삶에는 일상의 행복을 고양하는 ‘우아한 품위’가, 타인의 존엄을 생각하는 ‘고결한 윤리’가, 인간의 타고난 동등성이 돈이나 권력보다 존중되는 ‘을의 민주주의’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지역이 아니라 삶을 개발하고 싶다. 지방선거가 나흘 앞으로 다가왔다. 과연 어느 후보가 이 시대의 정신을 우리의 일상을 개발해 줄 심부름꾼인가.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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