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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국제시장 ‘수중전골’ 아시나요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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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7호 32면

책 속으로 

노포 장사법

노포 장사법

노포의 장사법
박찬일 글
노중훈 사진
인플루엔셜

사연 가득한 오래된 음식점 순례 #셰프·소설가가 말하는 우리네 맛 #술과 안주의 궁합도 빠질 수 없어

오늘 뭐 먹지?
권여선 지음, 한겨레출판

먹는 이야기가 삶의 허전함을 채워주는 심리적 충전재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하지만 인간의 혀는 저마다 개성이 있고, 주장이 뚜렷하다. 게다가 변덕스럽기까지 하다. 획일적이기를 거부한다.  ‘글 쓰는 셰프’ 박찬일씨의 노포 답사기인 『노포의 장사법』과 자신만의 술과 음식 이야기를 들려주는 소설가 권여선씨의 『오늘 뭐 먹지?』는 이런 시대의 흐름을 새삼 확인시켜 준다.

『노포의 장사법』은 음식 분야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 해당한다. 대를 이어 사랑받아온 노포들의 맛과 인심, 그리고 사연을 함께 그린다. 시작은 바싹하고 두툼한 돈가스로 유명한 서울 명동의 ‘명동돈가스’다. 최근에 전면 수리해 새로 단장한 이 가게는 사실 1983년 개업했다. 반도패션(현재 LG패션) 임원 출신인 창업자 윤종금 회장이 일본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문을 열었다. 일본 도쿄 메구로의 명문 돈가스집 ‘동키’에서 소스를 제외한 기술을 전수받았다. 맑은 기름 속에서 돈가스가 치익 소리를 내며 익어가는 모습을 보며 소리까지 들을 수 있는 명동돈가스 1층의 모습은 영락없이 동키다. 카운터 직원인 이순자씨가 34년째 근무 중이라는 사연을 들으면 노포의 깊은 맛에는 인간미가 포함된 것이라는 생각을 절로 하게 된다.

오늘 뭐 먹지

오늘 뭐 먹지

몇 년 전 동네가 재개발되면서 수하동에서 명동으로 터를 옮긴 하동관 곰탕 이야기도 감칠맛이 돈다. 39년 문을 연 이 가게는 68년부터 김희영씨가 맡고 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정육점인 팔판정육점에서 70년째 고기를 받고 있다는 이야기는 들을 때마다 새롭다. 이런 믿음이 70년 세월 동안 맛이 한결같았던 비결이 아닐까. 고기를 넉넉하게 넣은 2만원 짜리 곰탕인 스무공, 밥을 적게 넣은 ‘넌둥만둥’, 달걀을 의미하는 ‘통닭’, 소주를 의미하는 ‘냉수’ 같은 은어 이야기는 고명이다.

날이 더워지니 냉면 이야기도 한 사발 필요하겠다. 서울의 필동면옥·을지면옥·본가평양면옥은 의정부 평양면옥의 자제들이 문을 연 가게로 유명하다. 평양면옥은 69년 평양 출신의 홍영남-김경필씨 부부가 경기도 연천군 전곡면에서 시작해 87년 의정부로 옮겼다. 이 집안의 특징은 주방 일을 비롯한 어려운 일은 직원에게 시키지 않고 본인들이 직접 한다는 점이다. 맛이 흔들리지 않는 비결은 솔선수범이었다. 선대 ‘유훈’ 때문에 형제들의 냉면 맛이 서로 비슷하다는 이야기도 흥미롭다.

서울 충무로 을지면옥의 냉면. 50년 역사의 의정부 평양면옥의 맛을 이어받았다. [사진 인플루엔셜]

서울 충무로 을지면옥의 냉면. 50년 역사의 의정부 평양면옥의 맛을 이어받았다. [사진 인플루엔셜]

눈에 띄는 것은 지은이가 부산 국제시장 깊숙한 골목에서 이름도 생소한 수중전골을 만들어 파는 ‘바다집’까지 찾아갔다는 사실이다. 비행접시를 연상케 하는 알루미늄 판에 해물과 국수를 넣어 끓이고 그 진한 국물과 푸짐한 해물 건더기에 밥을 쓱싹 비벼 먹는다. 이는 지역 주민들만 아는 본고장 서민 음식이다. 지은이의 철저한 취재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음식도 글도 철저하지 않으면 사람들의 마음을 얻을 수 없다.

『오늘 뭐 먹지?』는 술과 음식으로 영혼을 어루만진다. 지은이는 애초 고기를 제대로 먹지 못하다 술 때문에 비로소 하나둘 입에 대기 시작했다고 고백한다. 순대와 순댓국이 여기에 포함된다. 술이 음식을 이끌고, 안주가 술을 부르는 무한순환의 사연이 이를 읽는 술꾼의 공감을 부른다. 지은이는 식사용 만둣국 맛국물은 멸치로 우려내지만, 해장 만둣국을 끓일 때는 쇠고기 양지나 사태를 끓여야 한다며 나름 맛 내기 비법을 소개한다.

먹거리 장단에 계절 음식이 빠질 수 없겠다. 지은이는 여름철이면 ‘호박잎쌈과 깡장’ ‘양배추쌈과 고추장물’을 냉장고에 항상 넣어두고 먹는다. 이 여름 진미를 맛보려면 준비가 필요하다. 우선 봄철에 멸치를 구해 냉동실에 잘 갈무리해야 한다. 여름이 되면 멸치를 꺼내 무지 매운 땡초를 함께 난도질한 다음 둘을 냄비에 볶다가 호박줄기·호박·마늘·물·된장을 풀어 바글바글 끓이면 깡장 완성이다. 따뜻한 호박잎 위에 뜨끈한 깡장과 밥을 얹어 쌈을 싸 먹으면 속에 천불이 난다. 가슴속 깊숙이 구수하고 복잡하며 그립게 번지는, 묵직한 불이다. 술과 음식이 우리의 삶의 뭔가 허전한 부분을 채워주는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맛있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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