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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행정권 조사하신 분 나오세요"···특별조사단 곤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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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감사관님의 출석 요구 건을 게시하였습니다.”(서울중앙지법 A판사) 

각급 법원 대표판사들로 구성된 ‘전국법관대표회의’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에 최근 올라온 글이다.
11일로 예정된 법관회의에 ‘법관 사찰 및 재판거래’ 의혹을 조사한 대법원 산하 ‘특별조사단’ 관계자를 부르자는 제안이다. A판사는 “특별조사단의 조사결과에 대해 논의하려면 조사단 실무자들과의 질의응답이 전제”라며 “이를 위해 윤리감사관님 등의 출석요구 건을 게시했다”고 밝혔다.

김명수 대법원장(왼쪽)과 이진성 헌법재판소장이 6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현충일 추념식에서 국민 의례를 하고 있다. 사법부 현안 토의를 위한 전국법원장간담회가 7일 대법원에서 열린다. [연합뉴스]

김명수 대법원장(왼쪽)과 이진성 헌법재판소장이 6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현충일 추념식에서 국민 의례를 하고 있다. 사법부 현안 토의를 위한 전국법원장간담회가 7일 대법원에서 열린다. [연합뉴스]

법관회의 관계자는 “실제 출석 요구건이 채택돼 조사단이 오게 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며 “특별조사단의 조사내용을 어떻게 볼 것인가가 판사들 사이에서 뜨거운 이슈가 됐다”고 말했다.

‘법관회의’ A판사 특별조사단 출석요구 # 보고결과 대하는 대법원장 반응이 ‘불씨’ # 서울고법 판사들은 조사결과 존중 입장 # “대법원장이 만든 조사단이었는데…”

특별조사단은 지난달 25일 조사 보고서를 법원 게시판에 올렸다. 보고서엔 ‘특별조사단에서는 (관련자들에게) 형사 책임을 묻기에 충분치 않은 상황이라는 의견이 일치되었음’ ‘뚜렷한 범죄 혐의가 인정되지 않아 형사 조치를 취하지 않기로 함’이라고 나와 있다.
인사 불이익을 주려는 블랙리스트는 없었고, 법원행정처의 권한 남용은 있었지만 형사 책임을 물을 정도는 아니라는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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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후 상황은 꼬여만 갔다. 시작은 김명수 대법원장의 말 한마디에서 비롯됐다.
김 대법원장은 지난달 28일 “(행정처 권한 남용) 관련자들을 고발할 것이냐”는 기자들 질문에 “그런 부분까지 모두 고려하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형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특별조사단 결과를 그대로 수용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취지였다.

김 대법원장은 조사단이 출범할 당시 모든 권한을 위임하면서 의혹에 관한 조사를 지시했던 터라, 법원 내부가 크게 술렁였다. 일선 법원 단위로 판사 회의가 연쇄적으로 열리는 등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갔다.
법원 내부에선 “대법원장이 조사내용을 거부하는 게 말이 되느냐”(서울고법 B판사), “조사단이 결과 발표 전에 진짜 대법원장에게 보고를 한 차례도 안 한 게 맞느냐”(대법원 C판사) 등 여러 말이 흘러나왔다.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이 4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법원으로 출근하며 기자들 질문에 답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이 4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법원으로 출근하며 기자들 질문에 답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특별조사단은 김 대법원장의 지시로 지난 2월 만든 것이다. 그가 대법관으로 추천한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을 단장으로 앉혔다. 또 노태악 서울북부지방법원장과 이성복 전 전국법관대표회의 의장(지법 부장판사), 정재헌 법원행정처 전산정보관리국장(지법 부장판사), 김흥준 행정처 윤리감사관(고법 부장판사) 등 총 6명이 참여했다. 이 의장과 정 국장, 김 감사관은 모두 우리법연구회 출신이며 이 의장은 국제인권법연구회 구성원이다.
김 대법원장이 우리법ㆍ국제인권법연구회 회장을 했던지라, 조사단 구성을 두고 공정성 시비가 일기도 했다.

반면 특별조사단 출범 당시 “또 조사단을 꾸리는 게 맞느냐”고 했던 서울고법 부장판사들은 “우리는 특별조사단이 수개월 동안의 조사를 거쳐 발표한 이번 조사결과를 무겁게 받아들이고 존중한다”(5일 판사회의)고 의결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서 특별조사단도 입장이 애매해졌다. 법원 관계자는 “특별조사단이 자신들의 조사가 잘 됐다고 하면 김 대법원장이 걸리고, 그렇다고 조사가 미흡했다고 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고 말했다.
법조계 인사들은 “판사들이 자체 조사결과도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작금의 현상은 사법의 비극이자 위기”(김현 대한변호사협회장 등)라고 지적하고 있다.

현일훈 기자 hyun.il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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