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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되려고 흥분제까지…체력검사 목 매는 수험생들

중앙일보

입력

경찰 체력검사장(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 없음). [중앙포토]

경찰 체력검사장(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 없음). [중앙포토]

지난 3월 시작된 광주지방경찰청의 올 상반기 경찰공무원(순경) 채용시험의 체력검사 도핑 테스트에서 부정행위 의심자가 나왔다. 금지약물 성분인 ‘메틸헥산아민’이 응시자의 소변에서 검출된 것이다. 운동 능력을 높이는 흥분제로 세계반도핑기구(WADA)가 금지하는 약물이다. 처음에 경찰은 치료 목적으로 먹는 약에서 검출됐을 가능성을 높게 봤다. 실제 비슷한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체력검사에서 '메틸헥산아민' 검출 응시자 불합격 #도핑 테스트 도입 이후 처음…"검사 대상자 늘려야"

그러나 의사들로 꾸려진 치료목적사용면책위원회는 응시자인 A씨(26)가 평소 먹는 약과 이번에 검출된 성분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결론을 냈다. 경찰은 필기시험에 이어 체력검사까지 통과한 A씨를 부정행위자로 간주하고 불합격 처리했다. 체력검사에서 더 좋은 성과를 내려고 금지약물을 복용했다는 판단에서다. 경찰 채용시험에 도핑 테스트가 도입된 2015년 이후 도핑 테스트를 통한 첫 불합격 처리다.

경찰공무원에 도전하는 청년들이 몰리는 가운데 체력검사에 목을 매는 수험생들이 늘면서 과열 양상을 보이고 있다. 사상 처음으로 금지약물 복용 응시자까지 나오자 경찰도 공정한 채용 관리를 위한 비상에 걸렸다.

체력검사장(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 없음). [중앙포토]

체력검사장(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 없음). [중앙포토]

순경 채용시험은 원서 접수를 시작으로 필기시험, 신체ㆍ적성ㆍ체력검사, 응시자격 등 심사, 면접시험 순으로 4차에 걸쳐 진행된다. 일반 행정직 공무원과 달리 체력검사까지 준비해야 하지만, 지난해 하반기 전국적으로 2589명을 뽑는 시험에 6만8973명이 몰릴(평균 경쟁률 26.6대 1) 정도로 치열하다.

전형별 최종 점수 비율은 필기시험 50%, 체력검사 25%, 면접시험 25% 등이다. 이 가운데 체력검사는 100m 달리기, 1000m 달리기, 윗몸일으키기, 악력, 팔굽혀펴기 등 5가지 평가 항목으로 구성됐다. 성과에 따라 항목별로 1점부터 10점까지 받는 시험으로 한 항목이라도 1점을 받으면 불합격 처리된다.

‘시간을 들이면 늦게라도 문턱을 넘는다’는 인식이 깔린 필기시험과 달리 체력검사는 수험생들에게 어렵고도 중요한 전형으로 꼽힌다. 필기시험이 끝난 뒤 승부수를 띄워야 할 전형이라는 게 수험생들의 이야기다. 서울에서 경찰 시험을 준비 중인 박모(29)씨는 “필기시험에 통과하면 더욱 절실해지는 상황에서 면접관들의 주관이 개입해 점수를 가늠할 수 없는 면접시험 전 체력검사에서 최대한 점수를 확보하고 싶은 게 수험생들의 욕심”이라고 말했다.

경찰 체력검사장(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 없음). [중앙포토]

경찰 체력검사장(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 없음). [중앙포토]

경찰 시험 준비생들은 필기시험을 준비하며 짬짬이 운동을 통해 체력검사에 대비한다. 필기시험에 합격하면 체대 입시 학원에 몰려가 ‘특강’을 받는다. 학원들은 하루 몇 시간씩, 단 몇 주간 체력검사에 대비한 훈련을 도와주고 수십만원을 챙긴다. 상당수 학원이 측정 규정을 아슬아슬하게 통과해 비교적 적은 힘을 들이고도 체력검사에서 성과를 낼 수 있는 ‘요령’을 가르쳐주기도 한다. 경찰이 쓰는 똑같은 측정 장비를 마련해 놓은 곳도 있다. 수험생들은 과도한 훈련으로 다치기도 한다.

경찰도 날이 갈수록 모호해지는 ‘요령’과 ‘부정행위’의 기준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 별도의 훈련까지 해가며 체력검사에 대비한다. 일부 지방경찰청의 경우 ‘최신 부정행위 적발’을 위한 예행연습까지 해본다고 한다. 경찰 관계자는 “검사요원들이 직접 부정행위가 가능한 다양한 자세를 해보며 체력검사 평가를 준비한다”고 했다.

피트니스 센터(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연관 없음). [중앙포토]

피트니스 센터(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연관 없음). [중앙포토]

체력검사장은 말 그대로 전쟁터다. 부모나 형제, 친구, 연인 등이 응원을 온다. 입시 학원들도 수강생 지도 및 홍보를 위해 당일 검사장에 나온다. 일부 수험생들의 경우 경쟁 상대인 다른 수험생들에 대한 평가를 두고 공정성 문제를 제기하며 극도로 예민한 모습도 보인다.

도핑 테스트는 모든 체력검사 항목에 대한 평가가 끝나고 이뤄진다. 체력검사를 치른 수험생들 가운데 일부를 무작위로 정해 소변 시료를 채취한다. 이 시료는 A시료, B시료로 나눈다. A시료 분석 결과에 대한 이의 제기가 있을 경우 냉장 보관된 B시료를 다시 분석한다. B시료까지 양성 반응이 나와도 당사자가 불복하거나 소명이 되지 않으면 치료목적사용면책위원회의 판단을 받는다.익명을 요청한 순경 계급 경찰관은 "금지약물 복용이 적발되면 향후 5년간 공무원 시험을 치를 수 없다는 점을 알면서도 취업난 속에 유혹에 흔들리는 수험생들이 적지 않다"고 전했다.

경찰은 2015년 이전부터 ‘수험생들이 약을 먹고 체력검사를 통과한다’는 소문이 돌자 도핑 테스트를 도입했다. 그러나 인력 한계로 체력검사를 마친 수험생들 가운데 5%가량만 실제 도핑 테스트를 받는다. 광주경찰청에서는 올 상반기 채용 전형의 체력검사를 치른 32명 중 2명만 도핑 테스트를 받았다. 이 중 한 명이 적발된 것이다. 전국적으로 금지약물을 복용하고도 시험에 합격한 수험생이 더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경찰 출신인 정세종 조선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경찰 업무에서 체력은 중요한 자질”이라며 “기본 자질 확인 및 공무원 시험의 공정성 확보 차원에서라도 도핑 테스트 대상자 수를 크게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광주광역시=김호 기자 kim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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