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고도 말 못하는 진압 경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4면

노동단체의 불법시위를 저지하려다 저항조차 제대로 못한 채 이들에게 흠씬 얻어맞은 한 경찰의 자조섞인 푸념이다. 그의 이 말은 길거리에서 불법시위대에 폭행당하고도 말 한마디 못하는 우리 공권력의 현주소를 말해준다.

더욱이 경찰은 현장에서 가해자들을 검거조차 하지 않았다. 시위대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라고 했다.

15일 오후 4시. 창원공단 내 GM대우 창원공장 정문 앞. 금속연맹 경남본부 주최로 '비정규직 차별철폐 결의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전국에서 몰려온 비정규직 노조원 150여 명은 집회를 마친 뒤 해고자 복직 등을 요구하며 후문까지 400여m를 가두행진하기 시작했다. 이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자 대기하던 전경 2개 중대 160여 명이 저지하면서 충돌이 빚어졌다. 이날 집회는 신고됐지만 도로를 점거하는 가두행진은 신고되지 않아 경찰이 막은 것이다. 경찰은 "시위대 진행방향이 차량 주행의 역방향이어서 사고 위험이 높아 막았다"고 말했다.

갑자기 시위대가 맨 앞줄의 전경대원 2명을 끌어내 방패와 헬멧 등 보호장구를 뺏고 마구 폭행하기 시작했다. 이를 본 창원 중부서 형사과 강력팀 형사 4명이 전경대원을 구하기 위해 달려갔다.

우모(54)경사는 시위대 주먹에 맞아 안경이 떨어졌고 이를 주우려는 순간 다른 노조원 30여 명이 달려들어 주먹과 발로 마구 폭행했다. 우 경사는 아스팔트 위로 5m쯤 끌려가 팔꿈치와 무릎에 타박상을 입고 바지까지 찢어졌다. 신모(49) 경위와 강모(44) 경사도 시위대가 전경에게서 빼앗아 휘두른 헬멧에 맞아 얼굴이 찢어졌다. 이모(35) 경장도 팔꿈치를 다쳤다. 주변에 있던 형사 20여 명이 달려들어 말리면서 사태는 겨우 진정됐다.

강 경사는 오른쪽 이마가 찢어져 다섯 바늘을 꿰맸고 이 경장은 팔꿈치 인대가 늘어나 전치3주의 진단을 받았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출근했다.

우 경사는 "병원에서 X선을 찍었는데 뼈가 부러지지 않아 출근했다"며 "시위대가 폭행한다고 경찰이 맞받아 때릴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한 경찰관은 "경찰이 공격하면 사회적 비난이 심하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한다"고 털어놓았다.

이날 경찰 6명이 다쳤지만 창원 중부서는 18일 오전까지 경남경찰청에 제대로 보고조차 하지 않았다. 경찰관 한 명이 시위대가 던진 헬멧에 맞아 다친 것으로만 보고돼 있다. 피해 경찰관로부터 진단서를 제출받지 않았고 가해 노조원에 대한 수사도 적극적으로 진행하지 않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사측과 비정규직 노조 간 협상이 원만히 진행되고 있어 노조원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현장검거 작전을 자제했다"며 "가해자 16명의 신원이 확보된 상태인 만큼 사후 사법처리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창원=김상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