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 민주화 절호의 기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지난 11년간 장기독재를 펴온 「지아」대통령의 사망은 그 동안 민주화를 끈질기게 요구해 온 야권세력에 새로운 희망을 안겨줄 것으로 보이나 파키스탄에 민주정부가 순조롭게 정착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우선은 ▲「베나지르·부토」를 주축으로 한 야권세력이 뚜렷한 정책 없이 분열되어 있는데다가 ▲ 「지아」 대통령이 군부를 강력하게 장악하고 있었으며 ▲회교 정신적 지도자들의 폭넓은 지지를 받아왔기 때문이다.
77년 무혈쿠데타로 집권, 회교공화국수립을 통치이념으로 삼아 온 그는 실권을 공고히 하기 위해 쿠데타 발발 2년 후 「알리·부토」 전 수상을 처형함으로써 국내외의 비난을 받았으며 「부토」의 딸인 「베나지르·부토」가 이끄는 파키스탄인민당(PPP)이 주축이 된 11개 야당 연합세력인 MRD(민주회복운동)의 끈질긴 도전에 시달려 왔다.
그는 85년 말 독재자의 인상을 완화하기 위해 8년6개월간 실시됐던 계엄령을 해제하고 국민투표와 헌법개정을 실시하기는 했으나 임기 5년 연장·대통령의 수상임면권·의회해산권·국민투표실시권 등 제도적 장치를 통해 대통령의 절대실권을 보장토록 조처했다.
또한 그는 85년 총선으로 선출된 「주네조」수상에 대한 국민의 인기가 상승하자 그를 해임시켰으며 최근 들어 각료전원과 의회를 해산시키면서 야권세력의 반발이 극에 달했었다.
그러나 「지아」대통령은 야권의 도전이 정국의 불안을 가져올 수 없도록 강력한 리더십으로 군부를 장악했으며 개인적으로는 「점잖고 청빈한」 인물이라는 평을 받았으며 정부가 부패하지 않아 일반 국민들로부터는 일면 지지를 받기도 했다.
뚜렷한 후계자 양성 없이 「지아」가 사망함으로써 야당세력에서는 민주화운동에 박차를 가할 절호의 찬스가 마련됐으나 「지아」 독재를 가능케 했던 군부강경파들이 과연 어느 선까지 양보할 것인가는 두고 봐야할 일이다.
또한 강력한 회교율법실시로 「지아」 대통령이 모슬렘 종교지도자들의 지지를 받아왔던 터이며 반정부세력들이 그 동안 투쟁노선 등을 놓고 잦은 이견을 보이는 등 분열되어 있어 파키스탄 야권세력들이 이 기회를 결실로 이끌지는 자못 회의적이다.
이번에 「지아」의 뒤를 이어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은 「굴람·이샤크·칸」 상원의장도 77년 쿠데타에 가담했던 「지아」의 추종자이다.
그러나 지난 5월 의회해산 후 임시과도정부 상태로 「지아」의 강력한 통치아래 이끌려 온 파키스탄의 현 정세에서 「칸」 상원의장이 정국수습을 위한 제대로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할 경우 최근 민주화냐, 기득권 유지냐로 국민의 눈치를 살피는 군세력의 향방이 문제를 푸는 열쇠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아시아의 최장수 독재지도자의 한사람으로 출중한 외교력을 발휘해온「지아」의 죽음은 주변국제정세에도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여겨진다.
「지아」 대통령은 소련의 조종을 받고 있는 아프가니스탄 정부를 붕괴시키기 위해 지난 8년간 아프가니스탄 게릴라들을 지원하는데 미국을 도와 앞장서 왔으며 게릴라 군으로 가는 미국의 무기 및 기타원조를 전하는 창구역할을 해왔다.
소련은 그 동안 파키스탄의 이러한 역할에 불만을 보여 왔던 만큼 미국의 대 아프가니스탄 정책의 절대 지지자인 「지아」의 죽음은 미국에 일단은 손실로 작용할 것으로 분석된다.
미국은 「지아」가 죽은 이후 파키스탄에 대한 「적극적 지지」를 다짐했는데 미국정책을 전폭적으로 지지할 후임자를 바라는 미국의 입장도 파키스탄 정국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또한 파키스탄은 그 동안 인도 내에서의 독립정부 구성을 시도해 온 시크교 도들을 지원함으로써 인도와 냉랭한 관계를 유지해왔던 만큼 이번 사건을 계기로 양국의 관계변화도 예상된다.

<고혜련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