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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 달래는 '어르신 노티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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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올해 72세인 이준규씨는 요즘 컴퓨터에 빠져 산다. 하루 6시간 넘게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것은 보통이고 홈페이지도 운영한다. 일주일에 두어 차례는 오전 2~3시까지 인터넷을 뒤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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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는 "내가 인터넷을 잘하니 집안에 기강이 선다"며 "해외에 유학 간 손자와는 일주일에 한두 차례씩 e-메일로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고 자랑했다.

소외감과 외로움을 달래며 '황혼의 서핑'을 즐기는 실버 네티즌이 늘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만의 온라인 커뮤니티를 형성하기도 한다.

3000여 명의 회원 수를 자랑하는 '원로방''실버넷''어르신나라'등에는 하루에도 수십 건의 게시물이 올라오고 있다. 각종 포토숍과 동영상 기술을 이용해 멋진 배경 음악과 그림을 깐 시 등도 흔하다.

한국인터넷진흥원에 따르면 60세 이상 인터넷 이용자 수는 2004년 12월 60만 명으로 2003년 30만 명에 비해 2배, 2002년 12만 명에 비해 5배 가까이 늘었다. 인터넷 이용률도 2002년 2.3%에서 2003년 5.2%, 2004년 10.1%로 급증했다.

◆ 그들만의 문화 이뤄=한 커뮤니티의 '친구 사귀기' 모임은 23일 서울대공원에서 '상봉 마당'을 열기로 했다. 온라인에서 만났던 이들이 토요일을 이용해 오프라인에서 직접 대면하는 것이다.

모임을 준비하는 관계자는 "젊은 네티즌의 '번개'보다는 점잖은 자리라는 게 다르다"며 "담소를 나누고 걷기운동을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최고령 회원이 96세인 원로방은 존경심을 나타내는 의미로 '닉네임'대신 '호'를 쓴다. 또 채팅을 '전자회의', 고령자를 '앞선 이'라고 부른다. 문법 파괴가 많은 젊은이들의 통신언어와 달리 한자와 고사성어가 섞인 문장이 많다.

일본 대중가요인 '엔카'등은 물론이고 회고담이나 보수적인 색깔의 정치평론.세태비평 등도 쉽게 볼 수 있다. 당뇨병 예방하는 법, '젊게 사는 비법' 등 건강 정보도 서로 나눈다.

실버 네티즌 사이에도 다툼은 있다. 한 네티즌은 "남이 쓴 글을 시비 걸고 비하해 싸움이 붙기도 한다"고 전했다.

◆ 외로움 나누는 통로 역할도=한 커뮤니티의 네티즌은 "밤 12시20분이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있으니 왠지 잠이 안온다. 아무 할 일도, 아무도 찾는 이 없는 햇늙은이. 잠이 안 와 아마도 오늘 저녁은 엎치락 뒤치락할 것 같아"라며 외로움을 토로했다.

'로맨스 그레이'도 엿볼 수 있다. 한 네티즌은 "어느 클럽 사이버에서 만난 사람. 대화는 항상 짧았지만 참 편안한 사람이라 생각했습니다… 사이버 인연이지만 소중한 사람이 되어 오늘도 당신 흔적을 찾아 보고 있습니다"라고 했다.

원로방 대표 시솝 황재영(66)씨는 "노인들은 많이 외롭다"며 "인터넷에 글을 올려 남이 보고 관심 가져주는 것을 기뻐한다"고 했다. 웰에이징닷컴의 최일용 이사는 "노인들과 시골 청소년을 사이버상으로 연결해 주는 등 노인들의 외로움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백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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