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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이라크 휴전에 "명암"|울상 짓는 나라도 많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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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8년에 걸친 지루한 페르시아만 전쟁이 종전에 이르자 전세계는 모처럼 안도의 숨을 쉬었다. 하지만 다른 한쪽에선 종전 후 이 지역 정세변화를 우려와 불만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력들이 있다.
가장 걱정이 큰 나라는 이스라엘이다. 이스라엘은 지난8년간 이 지역에서 일종의 어부지리로 평화를 누려왔다. 그러나 종전이 되면서 중동문제의 초점이 다시 아랍-이스라엘 문제로 되돌아오게 된 것이다.
그 동안 이스라엘은 이란-이라크 전을 지속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이스라엘은 미국의 대이란 무기판매 금지요청까지 무시하면서 이란에 무기공급을 계속해왔다.
이스라엘로서 가장 두려운 존재는 이라크.
우선 당장은 전쟁에 지친 이라크가 국가재건을 위해 이스라엘을 적으로 하고 나서지는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아랍권의 관심이 점차 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로 집중될 것은 분명하다. 사실 이렇게 됐을 때 아랍의 맹주위치를 노리는 이라크의 존재는 이스라엘로서 힘겨운 상대가 될 수밖에 없다.
또 그 동안 이라크의 전쟁 비용을 대주느라 팔레스타인문제는 등한히 했던 사우디아라비아·쿠웨이트 등 석유부국의 존재. 이들은 앞으로 이라크 대신 PLO등 반 이스라엘 세력에 대한 자금지원을 강화할 것이 틀림없다.
소련이 종전을 바라보는 시각은 양면성을 갖는다. 이란과의 관계개선을 통한 남부국경의 안정을 꾀한다는 기대도 있지만 이란 지도부의 대미경사에 따른 반소이슬람전선 구축의 우려다.
그러나 최근 정세는 후자 쪽으로 기울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최근 들어 이란은 소련의 중앙아시아지역 이슬람 계 주민들을 대상으로 반 소 선전을 강화하고 있다.
한편 이라크와 같은 범아랍 바트당 정권으로 아랍의 맹주를 다투는 시리아도 불안하다. 전쟁초기 시리아는 이란을 지원함으로써 이라크로부터 반감을 샀다. 이라크가 앞으로 PLO를 지원하면 시리아는 앞으로 레바논에서 상당히 고전할 것이 분명하다.
이란-이라크전쟁으로 수지를 맞추던 무기수출국들은 종전으로 황금시장을 잃게 됐다. 이란-이라크 전은 연간 3백억∼4백억달러의 국제무기시장 거래량의 약6분의1에 해당하는 엄청난 양을 소모했으며, 특히 이 과정에서 제3세계개발도상국들이 전체 거래량의 15%를 차지, 경제적으로 큰 재미를 봤다. 따라서 종전이 됨으로써 이들 국가, 특히 중국·북한·이집트·브라질·파키스탄 등은 경제적 타격이 적지 않을 것이다. 이밖에 이란과 이라크에 대해 각각 반기를 들고 싸우는 저항단체인 무자헤딘 하르크(인민성전의 전사)의 아랍민족해방군(NLA)과 쿠르디스탄 산악지대에 사는 쿠르드족 반군세력이 있다.
NLA는 최근 이란 서부이슬라마바드 가르브와 칼란드에서 12만 병력의 이란대군과 맞 싸워 그중 4만명을 사상시키는 전과를 올리는 등 기세를 올린바 있다. 그러나 앞으로 종전이 되면 그 동안 NLA를 지원해온 이라크가 지원을 중단하고, 이란이 대대적 토벌작전을 벌일 것이 예상되므로 NLA는 곤경에 처하게 됐다.
한편 쿠르드족 반군은 지난해말 이란의 지원을 받아 대 이라크전에서 상당한 성과를 올렸으나, 최근 이라크군의 우세로 전황이 바뀌면서 고전중이다. <정우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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