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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호기자의문학터치] 세필로 그린 '도시 정글' 지옥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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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김윤영(35)의 소설집 '타잔'(실천문학)은 사람 속깨나 긁는 소설이다. 몇 번이고 집어던졌다 다시 주워드는 소설이다. 정글 자본주의 시대 인간군상이 그리는 지옥도를, 소설은 끔찍이도 생생히 재현한다. 하여 불편하다. 앉은 자리에서 단편 8편을 다 읽어버린 지금 곰살궂은 봄 햇살마저 서럽고 시리다.

직장에서 쫓겨난 중년가장이 어느 날 실종된다. 그리고 한참 뒤. 얼굴 윗부분이 없는 시체가 발견된다. 시체가 걸친 복장은 그의 것이었지만 시체는 그가 아니었다. 시체엔 소아마비를 앓은 흔적이 남아있었다. 다시 한참 뒤. 그의 직장 후배였던 나, 지하철에서 그와 마주친다. 언젠가 산행 뒤 지하철에서 적선했던 절름발이 거지와 똑같은 행색이었다. 하나 그는 못 본채하고 사라진다.

수록작 '얼굴없는 사나이'의 줄거리다. 작가 말마따나 한 치의 빈 틈도 없는 자본주의처럼, 작가는 한 치 빈 틈 없이 후줄근한 우리네 삶을 묘파한다. 여기에 나오는 대사 한 토막. 구조조정 당한 직장동료가 허세부리며 하는 말이다. '사실 우리나 밧데리나 똑같잖아? 가끔씩 재충전을 해줘야지'. 아마도 작가는, 상처가 깊거나 성격이 잔인하다.

'산책하는 남자'에도 구조조정 당한 가장이 등장한다. 그러나 이 가장은 나름의 방식으로 자본주의를 수용한다. 집에선 자가용을 타고 정장 차림으로 출근하는 증권회사 직원이고, 밖에선 법원 집행관 따라다니며 빨간 딱지 붙은 세간을 입찰가로 사 비싸게 되파는 경매입찰자다. 여기서 주목할 건 팽(烹) 당한 후 그의 직업이다. 한 가정이 자본주의 질서에서 도태돼야, 또 다른 자본주의 질서에서 도태된 그가 연명하는 부조리의 메커니즘을 소설은 태연하게 보여준다.

이토록 냉혹한 리얼리즘, 본 기억이 있다. 과거 카프(KAPF) 문학이, 1980년대 노동해방문학 계열이 이러했다. 다르다면 신자유주의 시대 리얼리즘은 호흡이 가쁘고 '소소한 판타지'가 등장한다는 점이다. 주요 단서는 넌지시 던져놓고 막판 반전으로 이끄는 솜씨도 상당하다. 감각과 재미만 좇는다 하여 젊은 작가들을 꾸짖는 오늘이다. 그러나 90학번 김윤영이 있다. 21세기 리얼리즘은 혹독하게 맵기도 하지만 딱딱하게 굳어있지도 않다.

소설에선 유독 실종이 잦다. 그게 탈출이든 도피든, 혹은 추방이든 상관없다. 멀리 캄보디아 정글로 날아가 '타잔'이 된 마장동 김씨는 하얀 이 보이며 웃고 있었다.

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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