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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프리즘] 미래 꿈꿀 수 있어야 사회 안정성 높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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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박성원의 예측사회 (4) 미래 지향성

미래 지향성

미래 지향성

1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한국 사회는 대단히 미래지향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서강대 나은영 연구팀에 따르면 1979년부터 2010년까지 30년을 두고 세 차례 실시한 한국인 가치관 조사에서 ‘과거와 미래 중 버릴 것’을 묻는 말에 1979년 89%, 1998년 92%, 2010년 88%가 미래보다 과거를 버린다고 응답했다. 두 번째 조사부터 추가한 ‘미래에 대비하느냐’는 질문에는 1998년 82%, 2010년 62%가 ‘그렇다’고 응답했다. 이 질문에 대한 긍정의 응답률은 감소했지만, 여전히 과반수 이상은 미래에 대비하고 있다고 믿었다.

‘앞날 설계’가 인류 진보에 중요 #도움 줄 수 있는 사회관계망 절실 #한국 20~30대 미래에 부정적 시각

‘미래 지향성’은 미래의 ‘자신’을 적극적으로 상상하는 태도다. 미래지향적 개인은 현재보다 더 나은 자신의 모습을 목표로 계획을 세우고, 그 목표의 실현 가능성을 끊임없이 탐색한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미래 세대의 요구까지 예상하고 이를 현재 사회에 반영하기도 한다. 미래 지향적이었던 우리 선조가 ‘교육은 백년지대계’라며 후손들이 태어날 세상과 이들이 맞닥뜨릴 문제를 예상하고 이를 헤쳐나갈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교육 과정을 설계하려고 했다. 이런 점에서 미래 지향성은 인류의 진보와 보존을 위해 중요한 태도다.

최근 10년 동안의 미래 지향성에 관한 해외 연구 추이를 보면 수준 높은 저널에 수록된 논문만 5000편이 넘는다. 논문이 발표된 학술 분야는 심리학·행동과학·청소년·직업·소비자학·경영/마케팅·삶의 질·보건의료·미래학·윤리학·과학기술학·사회학·환경학 등 다채롭고 다양한 분야에서 미래 지향성을 다루고 있다.

미래 지향성 연구의 지평을 확장한 핀란드 헬싱키대학 누르미 교수의 연구는 주목할 만하다. 그가 1991년 국제학술지 디벨롭먼털 리뷰에 발표한 장문의 논문에서 미래 지향성은 동기→계획→평가 등 3단계로 발현된다고 주장했다. 사람들은 미래에 대한 기대를 갖고 목표를 세운다. 이것이 미래 지향성이 발현되는 첫 단계, 동기 부여다. 그리고 난 다음에 목표를 달성할 계획을 수립한다. 마지막으로 그 계획대로 실행할 경우 성공 가능성은 얼마나 될지 평가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자신만의 미래 모습과 정체성을 확립해 간다.

미래 지향성

미래 지향성

누구나 미래 지향성을 갖고 있지만 사람마다, 사는 환경에 따라 미래 지향성을 개발하는 정도는 달라진다. 누르미 교수는 미래 지향성을 개발하려면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첫째, 미래에 대한 지식의 사회적 확산과 규범적 기대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4차 산업혁명 관련한 과학기술의 발달에 따라 사회가 어떻게 변할 것인지, 그 사회가 어떤 규범과 가치를 추구할 것인지, 앞으로 어떤 새로운 직업이 사회에 등장할지 논의하고 이에 대한 근거 있는 정보가 퍼져야 한다.

둘째는 미래에 대한 관심을 부추기고 그에 따라 새로운 계획을 만들고 실현하는 데 도움을 줄 사회적 관계망이 필요하다. 더 좋은 미래사회가 온다는 믿음은 부모나 교사 또는 친구와 대화를 통해 형성된다. 부모의 따뜻한 격려, 본받고 싶은 사회적 인물의 존재 등은 아이가 미래 지향성을 갖추고 개발하는 데 도움이 된다.

셋째, 미래 지향적 태도는 실제 미래를 실현해보는 경험이 축적되면서 향상된다. 부모가 아이들과 함께 문제를 풀어나가는 경험이 중요한데, 부모의 역할은 답을 찾아주는 것이 아니다. 아이가 목표를 설정하고 유지하는데 도와주고, 답을 찾아 나가도록 격려하며 실현 가능성을 스스로 가늠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데 그쳐야 한다. 많은 경우 인생에 중요한 장기적인 계획일수록 부모의 격려가 도움되고, 반면 덜 중요하면서 짧은 기간의 계획은 친구의 격려가 도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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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지향적 사회는 사회 안전성도 높다. 미국 미드웨스턴에 거주하는 850명의 흑인 청소년(14~18세)을 대상으로 수행된 연구는 미래 지향성과 폭력적 행동 간의 상관성을 분석한 것으로 10년 동안 청소년들을 추적했다(스토다드(Stoddard) 외 2011). 연구에 참여한 학생들은 학교 성적이 하위권에 머물러 학업을 포기하기 직전에 있는 청소년들이었다. 미래에 어떤 직업이나 경력이 유리할지 자주 상상하는 미래 지향적 청소년은 칼이나 총을 휴대하거나 폭력으로 상대에게 심각한 해를 입히는 행동 등을 훨씬 덜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미래 지향성이 낮은 청소년들은 감옥에 가거나 심지어 죽임을 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미래 지향성이 낮은 청소년일수록 마약이나 술을 탐닉하며 학업성적도 낮았다. 미래 지향성이 높은 청소년은 자기 행동의 결과를 예측하거나 주변 환경의 변화를 예측하기 때문에 충동적인 행동을 삼가며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더 보호한다.

미래 지향성은 종종 ‘회복 탄력성’과 연결돼 연구되고 있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하려면 미래지향적 태도뿐 아니라 미래가 뜻대로 되지 않아도 견디는 태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회복 탄력성은 혼란스런 상황에서 안정을 찾아가는 능력을 말한다. 이탈리아 청소년을 대상으로 연구한 최근 논문에 따르면 미래 지향성과 회복 탄력성은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능력과 삶의 만족도 등에서 높은 관련성을 보였다. 즉 미래 지향성과 회복 탄력성이 높은 청소년들은 다른 일을 맡게 될 때 전환 기간을 잘 버티고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에도 능동적이었다.

앞서 가치관 조사에서 한국인은 미래지향적이라고 언급했지만, 최근 상황은 좀 달라지고 있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이 2013년부터 2015년까지 3년 동안 세 차례에 전국 성인 20~60대 1000명을 대상으로 미래인식을 조사한 결과는 과거와 약간 달랐다. 미래를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비율이 2013년과 2014년엔 40%였다가 2015년 47%로 상승했다.

게다가 현재든 미래든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비율은 2013년 34%, 2014년 37%, 2015년 45%로 증가했다. 현재를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것은 과거까지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연령별로 보면 주로 20~30대가 현재든 미래든 부정적으로 인식했다. 이들에게 미래는 ‘보고 싶지 않은 시공간’이었다.

박성원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연구위원

박성원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여러 연구에 따르면 청년들이 미래를 보는 시각에 영향을 주는 요인은 직업·교육·결혼·주거 등이다. 한국 청년들의 미래 인식 조사에서 드러난 것처럼 청년들은 자신의 미래 직업·결혼·주거에서 미래를 부정적으로 보고 있었다. 이런 점에서 청년들은 미래를 예측하고 계획하고 평가하는 미래 지향성을 개발하는 데 필요한 개인적·사회적 조건의 악화를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박성원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연구위원 spark@step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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