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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책,여자=손톱화장 때문에 돋보기 산다?'미투 무풍'日의 현실

중앙일보

입력

“정말로 이 세상의 문자는 너무 작아서 볼 수가 없어~.신문도 읽을 수가 없어.하지만 이 안경을 쓰면 세상이 바뀐다. 크게 보인다.”

작은 일상속에서도 남녀 성차별 의식 뿌리 깊어 #미투 어려운 日,아소 부총리 "성희롱죄란 없다" #

일본의 인기 남자 배우 와타나베 켄(渡辺謙)이 등장하자마자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이어 도쿄대 건축학과 출신 여자 배우인 기쿠카와 레이(菊川怜)가 “나도 세상이 바뀌었습니다. 대단해~”라며 등장한다.

그가 손톱 화장을 하는 장면이 화면에 크게 비쳐지면서 “(돋보기를 썼더니 손톱이)확실히 깨끗하게 보인다”는 대사가 흐른다.

 이어 의자에 올려진 돋보기 안경을 기쿠카와가 깔고 앉는 장면 뒤로 와타나베는 “(안경이 멀쩡하다)이 강도를 보시라, 역시 메이드 인 재팬”이라고 말한다.

 최근 일본 TV에 방영중인 돋보기 안경 CF의 한 장면이다.

 한마디로 남성은 책과 신문을 제대로 읽기 위해 돋보기가 필요하고, 여성은 손톱을 잘 가꾸기 위해 고품질의 돋보기가 필요하다는 내용이다.

 지극히 성차별적인 내용이지만, 일본에선 버젓하게 방영중이다.

오히려 인터넷상에선 화제를 몰고 다닌다.

인터넷 댓글엔 가끔씩 “불쾌하다”는 반응도 있긴 하지만 그 대부분은 성차별 의식 때문이 아니라 “모델들의 연기가 너무 오버다”며 다른 이유를 대고 있다. 오히려 “이 광고에 꽂혔다”,“광고 제작자가 머리가 좋은 것 같다”는 긍정적 반응도 적지 않다.

 일본 재무성 사무차관의 여기자 성희롱 사건과 정부의 대응 과정속에서 일본 사회에 만연한 성차별 의식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응급처치를 위한 여성 의료진의 경기장 출입을 막아 논란을 낳은 일본 스모계.[연합뉴스]

응급처치를 위한 여성 의료진의 경기장 출입을 막아 논란을 낳은 일본 스모계.[연합뉴스]

특히 응급처치를 하려는 여성 의료진을 상대로 "여성은 스모 씨름장(도효ㆍ土俵)에서 내려가라"는 장내 방송 멘트로 스모계가 물의를 빚는 등 극단적인 케이스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의 근본 원인과 관련해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성차별들을 너무 쉽게 용인하는 일본사회의 풍토에서 문제가 비롯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소 다로 일본 부총리[ERA=연합뉴스]

아소 다로 일본 부총리[ERA=연합뉴스]

사우나의 남탕안에서도 여성 목욕관리사(세신사)들이 일하고, 골프장내 목욕탕이나 심지어 기업형 스포츠센터의 사우나 내에서도 여성 직원들이 청소 도구 정리 등을 위해 입장하는 일이 잦은 걸 두고도 점차 “일본 사회가 성별 역할 구분이나 다른 성에 대한 존중 문제 등에 너무 둔감한 것 아니냐”는 의견이 제기된다.

7일 밤 일본 도쿄 지요다(千代田)구 가스미가세키(霞が関)의 재무성 건물앞엔 100여명의 사위대가 몰려들었다. 이들은 “재무성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한 사무차관의 성희롱을 장관이 부정했다”,“당장 반성하고 사임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의 타깃은 아소 다로(麻生太郞)부총리 겸 재무상이다.

그는 동남아 출장중이던 지난 4일 기자간담회에서 “성희롱죄라는 죄는 없다. 살인이나 강제 추행과는 다르다”고 주장했다.

여기자와의 1대1 식사 자리에서 “가슴을 만져도 되느냐”는 등의 성희롱 발언을 했다가 물러난 후쿠다 준이치(福田淳一) 전 재무성 사무차관을 감싸는 발언이었다.

아소 부총리는 후쿠다가 물러나기 전에도 “후쿠다에겐 인격이 없느냐”,“재무성의 출입기자는 남성으로만 해아겠다” 등의 발언으로 논란을 키웠다.

일본 정부의 넘버 2가 맨 정신에 성차별적인 발언을 멀쩡하게 쏟아내는 것이나, 전 세계적인 '미투(Me Too) 열풍'속에서도 일본만 숨을 죽이고 있는 근저엔 "'고립된 섬'처럼 진화하지 못한 일본내 성평등 문화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힘을 받고 있다.

도쿄=서승욱 특파원 ss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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