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승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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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미국의 고급 시사평논지『포린어페어스』는 최근 이란과 이라크를 복싱선수에 비유한 글을 소개한 일이 있었다. 세기적인 상금이 걸린 시합에서 두 선수는 12라운드를 뛰고 나서 기진맥진해 있는 상태라는 것이다.
이들은 싸우는 기법이 서로 다르다. 이란은 공격적이고 이라크는 간교하다. 이란이 좀 더 적극적인 것에 비해 이라크는 연습을 많이 한 선수라는 것도 특이하다.
이 글의 필자인 「M·비오르스트」는 재래식 전략대로라면 이란이 벌써 이겼어야 옳다고 말한다. 우선 이란쪽의 인구가 4천2백만명으로 이라크보다 3배나 많다. 게다가 이란은 「팔레비」정권을 무너뜨린 젊은이들의 혁명열기가 식기도 전에 전쟁을 맞아 그 패기가 전선에 그대로 이어졌다.
그러나 이라크는 인구는 적지만 동원체제가 잘 짜여진 훈련된 병력을 75만명이나 확보하고 있다. 이란보다 20만명이나 더 많은 숫자다. 외교적으로도 이라크는 모가 나지 않아 알게 모르게 뒤에서 돕는 나라들이 많다.
따라서 이라크는 마음만 먹으면 좋은 무기를 어디서나 살수 있다. 프랑스의 미사일을 비롯해 심지어는 소련으로부터도 무기를 구입한다. 비행기는 20대1로 이라크가 절대 우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란은 사정이 다르다. 서방 세계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고 소련마저도 예뻐하지 않는다. 이란은 겨우 중국이나 북한으로부터 무기를 살수 있었다. 그런 무기의 수준은 짐작할수 있는 일이다.
이들 두 나라는 한시절 석유 강국으로 떵떵 거렸지만 오랜 전쟁에 시달리며 결국 빚쟁이가 되고 말았다. 이라크는 산유국 답지않게 외채가 5백억달러나 되며 형편은 이란도 비슷하다.
이런 전쟁을 8년이나 계속했으니 기진한 권투선수꼴이 될만도 하다. 이라크는 지난해 유엔결의가 나오자 진작 정전을 선언했었다. 이란은 그러나 전쟁을 고집했다. 승부의 끝도 보이지 않는데 말이다.
결국 얻은 것은 국민의 염전의식과 인플레와 경제적 핍박뿐이 었다.
18일 이란도 비로소 정전을 선언했다. 테헤란 시민들은 『그게 정말이냐』, 『믿어지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여주었다고 외신은 전한다. 속으로 오죽 이날이 기다려졌으면 그랬을까. 전쟁을 겪어본 우리는 그 심정을 알고도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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