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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차슬라브스카」|「요정」연기…여자체조 새장열어|환상의 율동으로 소의독주 제동|동경·멕시코서 「금」7 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제1회 아테네올림픽에서부터 정식종목으로 자리잡은 남자체조와는 달리 여자체조는 28년 암스테르담대회에서 단체전이 첫 채택됐으며 52년 헬싱키대회부터 개인전이 끼어들었다.
이처럼 짧은 역사를 가진 여자체조가 올림픽의 최대관심 종목중의 하나로 급성장하게 된 데에는 체코의요정 「베라·차슬라브스카」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볼 수 있다.
매력적인 용모와 완숙한 율동미의「차슬라브스카」는 「라리사·라티니나」로 대표됐던 소련체조의 일방독주를 종식시키며 64년동경대회 3관왕 (개인종합·뜀틀·평균대) 68년멕시코대회 4관왕(개인종합·뜀틀·이단평행봉·마루)에 올라 세인들의 이목을 체조장으로 끌어들였다.
「차슬라브스카」로 인해 본궤도로 진입한 여자체조의 인기는 72년 뮌헨대회에서 이단평행봉 연기도중 떨어져 우승을 놓친후 서러운 눈물을 쏟아내 사람들을 울렸던 「올가·코르부트」(소련) 를 거치며 증폭돼 76년 몬트리올대회에서 14세의 어린나이로 사상최초의 10점만점 연기를 펼쳤던「나더아·코마네치」(루마니아)에 이르러 절정을 이루게된다.
체코의 자유학운동이 소련의 무력침공으로 수포로 돌아간지 2개월후 개최된 멕시코올림픽은 「차슬라브스카」를 오래도록 기억에 남게 만든 무대.
「차슬라브스카」는 여자체조 파이널 이벤트였던 마루운동에서 소련의 「라리사·페트릭」과 공동우승을 차지했다.
두나라 국기가 게양되고 두나라 국가가 연주되는 것은 당연했으나「차슬라브스카」는 소련국가가 연주되는 순간 고개를 떨구며 외면했다.
「차슬라브스카」의 이같은태도는 스포츠정신에 위배된 것임에 틀림없었으나 선수이기 이전에 조국을 짓밟은 침략자의 만행에 분개하는 한 여인으로서 취할수 있는 최소한의 저항이었다는 점에서 관중들의 가슴을 뭉클하게했다.
다음날 「차슬라브스카」는 오랫동안 사랑을 속삭여왔던 같은 나라의 육상1천5m선수 「조세프·오들로질」과 결혼식을 올려 전올림픽패밀리로부터 축하를 받았다.
체코대사관저에서 혼인신고를 마치고 소칼로지역의 성당으로 혼인미사를 갖기위해 떠나는 이커플 주변에는 1만명 이상의 팬들이 모여 북새통을 이뤘다.
소련군에 점령당한 조국땅을 벗어나 스포츠인으로서의 엄청난 영광을 부여받은 제3국에서의 결혼식은 그들 나름대로 상당한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
멕시코올림픽이 끝나고 체코선수단이 귀국한 후인 11월2일, 선수단 개선환영식에서 「스보보다」당시 체코대통령은 눈물을 글썽거리며 「차슬라브스카」의 손을 꼭 잡아 그녀에 대한 체코국민의 애정을 대변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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