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김정일 “주한미군 주둔 괜찮다” … 김정은도 비슷한 입장인 듯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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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2호 06면

4·27 판문점 선언을 계기로 한·미 양국 내에서 평화협정 체결 이후 주한미군 주둔 논란이 불거지고 있지만 정작 북한의 입장은 주둔 용인이다. 표면적으로 북한은 주한미군 철수를 끊임없이 주장해 왔다. 하지만 김일성·김정일은 명시적으로 용인 입장을 밝혔고 김정은도 유사한 입장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북 표면적으론 “미군 철수” 되풀이 #“체제 보장하면 문제 삼지 않겠다” #김정은, 북·미 회담서 확약 가능성

먼저, 김일성 주석은 1992년 1월 북·미 평화협정 체결이 처음 논의될 당시 김용순 노동당 비서를 미국에 파견했다. 김 비서는 아널드 캔터 미 국무차관을 만난 자리에서 북·미 수교가 이뤄지면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하지 않을 것이고, 주한미군은 한반도 통일 이후에도 주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사실은 임동원 전 국가정보원장의 회고록 『피스메이커(peace maker)』를 통해 세상에 공개됐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1991년 구(舊) 소련 붕괴와 사회주의권 몰락 이후 심각한 위기감을 느낀 북한이 북·미 수교를 성사시키기 위한 궁여지책이라는 평가도 나왔지만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2000년 6월 첫 남북 정상회담에서 같은 입장을 밝혔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자서전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92년 김용순 비서 방미 당시 제안을 언급하면서 자신 역시 ‘통일이 돼도 미군은 한반도에 있어야 한다’는 김 전 대통령과 같은 견해를 갖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왜 언론 매체를 통해 계속 미군 철수를 주장하느냐”는 김 전 대통령의 질문에 “인민들의 감정을 달래기 위한 것이니 이해해 달라”고까지 말했다고 한다.

이후 김 위원장은 방북한 서방 정치인·학자·언론인 등에게도 비슷한 취지의 발언을 했다. 대표적 사례는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미국 국무장관의 회고록 『마담 세크레터리(Madam Secretary)』에서다. 올브라이트 전 장관은 2000년 방북 당시 김 위원장이 “냉전 이후 북한 정부의 관점이 바뀌었다”며 “미군은 이제 (동북아 질서를) 안정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소개했다. 김 위원장은 이어 “북한 내에도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사람이 있고 남한 내에도 주한미군 주둔을 반대하는 사람이 많다. 해법은 북·미 관계 정상화에 달려 있다”고 밝혔다.

집권 6년차인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경우 주한미군 주둔 용인 입장은 아직까지 공개적으로 나오진 않았다. 하지만 상당수 소식통들은 지난 4월 정부 대북 특사단 방문 당시 “비핵화는 선대(先代)의 유훈”이라고 밝힌 김 위원장이 “주한미군 주둔도 선대의 유훈”이라고 언급했을 가능성을 높게 점치고 있다. 이후 나타난 청와대의 입장 때문이다.

한 청와대 핵심 인사는 최근 중앙일보에 “김 위원장이 북·미 정상회담 때 평화협정 체결 등으로 북한 체제가 보장될 경우 주한미군의 한반도 주둔을 문제 삼지 않겠다고 공개적으로 확약할 가능성이 있다”며 “이는 비핵화 합의 과정에서 북한이 미국에 제공하는 ‘선물’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른 청와대 관계자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미국과 처음으로 직접 담판에 나서는 김 위원장이 선제적으로 주한미군 주둔을 인정하는 입장을 밝히는 것은 당연한 수순일 수 있다”고 밝혔다.

차세현 기자 cha.seh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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