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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바이냐, 자전거냐 기로에 놓인 ‘생활교통’ 전동킥보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서울시, 광화문광장에 퍼스널 모빌리티 공간 추진 

지난 3일 오후 서울 강북구 수유동 한 버스회사 차고지. 일을 마친 버스기사 김지환(42)씨는 차고지에 주차된 ‘전동킥보드’에 두 발을 올렸다. 왕복 2차로의 가장자리에 선 그는 약 20km의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목적지는 서울 노원구 월계동에 있는 자신의 집이었다.  그는 이날 버스가 운행하지 않는 새벽 3시에 출근하면서도 전동킥보드를 타고 왔다. 김씨는 두 달 전부터 거의 매일 출퇴근길에 전동킥보드를 이용한다. 집에서 회사까지 약 5km 거리를 오는데 15분 정도 걸린다. 김씨는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보다 이동 시간이 왕복 한 시간 정도 줄었고, 승용차를 안 몰고 오니 유류비와 주차비를 합쳐 한 달에 20만원 정도 아끼고 있다”고 말했다.

퍼스널 모빌리티는 생활 밀착형 교통수단이 되고 있다. 버스기사 김지환씨가 지난 3일 오후 서울 강북구 수유동에서 전동킥보드를 타고 퇴근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퍼스널 모빌리티는 생활 밀착형 교통수단이 되고 있다. 버스기사 김지환씨가 지난 3일 오후 서울 강북구 수유동에서 전동킥보드를 타고 퇴근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이용자 절반 이상이 ‘생활교통’으로 이용

전기를 동력으로 쓰는 1인용 이동수단(퍼스널 모빌리티)을 근거리 교통수단으로 이용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한국교통연구원에 따르면 퍼스널 모빌리티의 판매량은 2014년 3500대, 2016년 6만대, 2017년 7만5000대(추산)로 급증했다. 한국교통연구원이 지난해 11월 퍼스널 모빌리티 이용자 150명을 대상으로 조사해보니 이중 55.3%가 퍼스널 모빌리티를 통근·통학 등을 위한 교통수단으로 이용하고 있었다. 레저·운동(46.7%)등의 목적보다 많았다.

서울 중구의 인도에서 전동휠을 탄 한 남성. 임선영 기자

서울 중구의 인도에서 전동휠을 탄 한 남성. 임선영 기자

운전면허 소지자가 차도에서만 주행 가능

하지만 관련법과 안전운행 세부기준은 마련돼 있지 않다. 이 때문에 인도 등에서 불법 운행이 이뤄지고, 안전사고는 증가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국내에서 퍼스널 모빌리티를 합법적으로 타는 유일한 방법은 김씨처럼 운전면허를 소지하고 차도에서 주행하는 것이다. 면허 소지자여도 인도나 자전거도로에서 타는 건 불법이다. 1인용 전동기기인 퍼스널 모빌리티는 도로교통법상 ‘원동기장치자전거’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16세 이상 면허소지자만 차도 우측 가장자리에서 탈 수 있다. 퍼스널 모빌리티에 소형 오토바이(125cc 이하)와 같은 법적 기준이 적용되는 것이다.

한 여성이 서울시청 앞 인도에서 전동킥보드를 타고 있다. 임선영 기자

한 여성이 서울시청 앞 인도에서 전동킥보드를 타고 있다. 임선영 기자

하지만 최대 속도가 대체로 30km 미만인 퍼스널 모빌리티의 차도 주행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이날 전동킥보드를 탄 김씨의 앞뒤로 승객을 태우려는 택시들이 불쑥 들어오기도 했다. 김씨는 “갓길에 주차한 승용차를 피하려다가 다른 차와 부딪힐 뻔 한 적이 있다. 10년 버스운전 경력의 나도 전동킥보드 차도 운행이 만만치 않다”고 말했다.

차도·인도서 ‘쾅’ … 안전사고 급증

퍼스널 모빌리티로 인한 안전사고는 2012년 29건에서 2016년 137건으로 4배 이상 늘었다(현대해상 교통기후환경연구소). 이용자가 차도에서 타다가 자동차에 부딪히거나 인도를 질주하는 퍼스널 모빌리티에 보행자가 충돌하는 경우 등이 있다. 20대 남성 김모씨는 지난해 11월 경기도 김포시의 한 차도에서 전동킥보드를 타다가 갑자기 차선을 변경한 승용차와 충돌했다. 김씨는 이 사고로 다리가 골절되는 중상을 입었다. 70대 여성 윤모씨는 올 2월 경기도 광명시의 한 인도에서 전동킥보드를 탄 여성과 충돌해 역시 다리가 골절됐다.

서울 강북구 수유동에 있는 한 타이어 대리점 직원이 전동킥보드를 타고 거래처로 가고 있다. 임선영 기자

서울 강북구 수유동에 있는 한 타이어 대리점 직원이 전동킥보드를 타고 거래처로 가고 있다. 임선영 기자

행안부는 자전거도로 주행 허용 추진  

퍼스널 모빌리티에 ‘자전거’와 비슷한 수준의 법적 기준을 적용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지난해 국회에선 퍼스널 모빌리티의 자전거도로 통행을 허용하는 도로교통법·자전거법 개정안이 발의됐으나 계류 중이다. 김태범 행정안전부 생활공간정책과 사무관은 “올 연말 국회에서 개정안이 재논의 되도록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전기자전거(최대 속도 25km 미만의 페달보조방식)의 경우 지난 3월부터 자전거도로 통행이 가능해졌다. 하일정 한국스마트이모빌리티협회 사무국장은 “전동킥보드와 레저용 자전거의 최대 속도는 25km 안팎으로 비슷하다. 자전거도로를 달리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자전거 동호인들을 중심으로 반대 목소리도 있다. 한만정 한국자전거단체협의회 대표는 “일부 스마트 모빌리티는 최대 속도가 40km 이상이 되기도 한다. 폭 1.5m 정도인 좁은 자전거도로에서 자전거와 충돌하면 큰 사고가 날 것”이라고 말했다. 독일은 관련 면허를 취득하면 자전거 도로와 차도에서의 주행을 허용한다. 네덜란드는 보험가입을 한 퍼스널 모빌리티에 한해 자전거도로와 차도를 이용하도록 한다.

“주행 도로·속도, 교육·면허 지침 정해야”

전문가들은 현실적인 안전운행 기준부터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신희철 한국교통연구원 4차산업혁명교통연구본부장은 “어느 도로에서 어떤 종류의 퍼스널 모빌리티의 주행을 허용하고, 속도 제한과 안전장치, 이용자 교육·면허는 어떻게 할지 등에 관한 종합적인 지침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시가 퍼스널 모빌리티 시범지구 조성을 검토 중인 서울 광화문광장.[중앙포토]

서울시가 퍼스널 모빌리티 시범지구 조성을 검토 중인 서울 광화문광장.[중앙포토]

서울시는 올 상반기 안에 퍼스널 모빌리티를 안전한 환경에서 탈 수 있는 시범지구를 조성할 예정이다. 서울 광화문광장, 청계천, 여의도 업무지구 등의 일부 공간이 유력하다. 이 운영 결과를 바탕으로 안전운행 기준 등이 담긴 가이드라인도 만든다.

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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