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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구급대원이 아프면 국민도 아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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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김준희 기자 중앙일보 기자
김준희 내셔널부 기자

김준희 내셔널부 기자

2일 전북 전주시의 한 장례식장. 자신이 구한 40대 취객에게 맞은 지 한 달 만에 숨진 익산소방서 인화119구조센터 구급대원 강연희(51·여) 소방위의 빈소가 차려진 곳이다.

현직 소방관인 남편 최태성(52·소방위)씨가 각각 초등학교 6학년, 고등학교 1학년인 두 아들과 함께 조문객을 맞았다. 세 부자의 눈 주위는 퉁퉁 부어 있었다. 몸보다 큰 검정 양복을 걸친 두 아들은 평소 친구들에게 “우리 엄마·아빠는 소방관”이라고 자랑했다. 하지만 어머니가 본인이 살린 사람 때문에 숨지자 충격이 큰 듯했다. 최씨는 “큰 녀석은 속으로 삭이는데 작은 녀석이 많이 힘들어 한다”고 했다.

강씨는 지난달 2일 오후 1시 2분쯤 익산역 앞 도로에서 술에 취해 쓰러진 윤모(48)씨를 119구급차에 태워 병원으로 옮기다가 봉변을 당했다. 윤씨는 응급실 앞에서 강씨의 머리를 주먹으로 때리고 폭언을 퍼부었다. 이후 강씨는 불면증·어지럼증에 시달렸다. 밤에는 숟가락을 물고 자야 할 정도로 딸꾹질이 멈추지 않았다. “폭행과 극심한 스트레스 때문에 자율신경이 손상됐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런데도 강씨는 지난달 24일 전주 자택에서 뇌출혈로 쓰러지기 전까지 현장을 지켰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119구급대원은 국민을 지키는 직업이다. 그런데 자신을 돕는 대원들에게 폭언과 폭행을 일삼는 국민이 적지 않다. 최근 3년간 집계된 구급대원 폭행사건만 564건이다. 이는 빙산의 일각이다.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구급대원들은 심각한 신체적 폭력이 없는 한 신고하지 않는다. 강씨도 생전에 “맞은 것보다 여성으로서 모욕적인 욕을 들은 게 가장 끔찍하다”고 힘들어했지만, 두 차례 병원을 찾은 것 외엔 스스로 견뎠다.

정은애 인화센터장은 “병원에 가서 드러누울 만큼이 아니면 어제 맞고도 오늘 출동해야 하는 게 구급대원의 숙명”이라고 했다. 실제로 지난해 말 센터 구급대원 2명이 취객에게 폭행을 당했지만 몇 달 뒤 그 취객이 “아프다”고 신고해 와 폭행 피해를 입었던 대원이 출동하기도 했다.

이런 비극이 일어날 때마다 소방관의 지위 향상과 처우가 논란이 된다. 대부분 말만 무성하고 실제 개선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강씨가 죽지 않았다면 사람들이 19년간 헌신한 구급대원의 삶에 관심을 보였을까. 정 센터장은 “구급대원이 아프면 국민도 아프다”고 했다. 구급대원이 심신의 상처를 받아 일을 못하면 그만큼 국민이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얘기다. 이 말이 귓전에 자꾸 맴돈다.

김준희 내셔널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