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 “매크로가 뭔가, 여러번 클릭되나” 검사 “다음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8면

‘민주당원 댓글 조작 사건’으로 구속된 파워블로거 ‘드루킹’ 김동원씨의 첫 재판이 2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렸다. 김씨는 재판장이 공소 사실을 인정하는지 묻자 ’네 인정합니다“라고 답했다. 연녹색 수의를 입은 김씨가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이동하고 있다. [최승식 기자]

‘민주당원 댓글 조작 사건’으로 구속된 파워블로거 ‘드루킹’ 김동원씨의 첫 재판이 2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렸다. 김씨는 재판장이 공소 사실을 인정하는지 묻자 ’네 인정합니다“라고 답했다. 연녹색 수의를 입은 김씨가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이동하고 있다. [최승식 기자]

드루킹의 네이버 댓글 조작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이 김경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4일 오전 소환조사키로 한 것은 더 이상 강제조사를 미룰 수 없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경찰이 사건 발생 한 달이 넘은 시기에 김 의원을 피의자로 입건조차 하지 못한 채 소환조사하는 상황을 두고는 늑장 부실 수사로 인한 참혹한 결과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드루킹 첫 재판 검찰 허술한 준비 #매크로 설명 못해 피고 측이 답해 #경찰, 김경수 조사 한 달 미적대다 #피의자 입건 못하고 참고인 소환 #IT 전문가 “증거 인멸 시간 준 셈”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2일 “김 의원을 상대로 댓글 조작과 인사청탁 부분을 포함해 사건 전반을 조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 의원이 사건의 핵심이며, 김 의원이 댓글 조작을 사전에 알거나 드루킹 김동원(49·구속기소)씨에게 불법 조작을 지시했는지 등을 집중 조사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경찰은 드루킹 일당의 본거지인 파주 느릅나무 출판사를 압수수색(3월 21일)하면서 이 사건에 김 의원이 관계된 사실을 처음 인지했다. 압수한 휴대전화를 복원·분석한 끝에 두 사람의 비밀 메신저를 통한 댓글 관련 대화를 확인했다. 댓글 관련 기사주소(URL)를 주고받으며 ‘홍보해 주세요’(김 의원), ‘처리하겠습니다’(드루킹) 등의 대화를 나눈 사실과 인사청탁 관련 메시지를 드루킹이 보낸 사실도 파악했다. 그러나 경찰은 김 의원의 통화 내역이나 계좌는 들여다보지도 못했다. 지난달 24일 검찰에 신청한 압수수색 영장이 기각된 이후 재신청하지 않고 있다.

관련기사

이에 따라 영장을 두고 검경 갈등 양상을 보이다가 경찰이 고육지책으로 참고인 소환을 결정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한 정보기술(IT) 전문가는 “김 의원 측 휴대전화를 신속히 확보하지 않은 건 메시지를 삭제할 여유를 준 꼴”이라고 말했다.

김 의원에 앞서 지난달 30일 경찰에 소환된 보좌관 한모씨 조사에서도 김 의원과 관련한 의미 있는 진술은 없었다고 한다. 한씨는 경제적 공진화 모임(경공모) 회원 김모(49·필명 성원)씨를 통해 지난해 9월 500만원을 받았다가 드루킹 구속(3월 25일) 다음 날 돌려준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 조사에서 한씨는 “500만원을 빌린 것은 아니고 ‘편하게 쓰라’고 해서 받았고, 개인적 용도로 썼다. 김 의원은 알지 못했다”고 선을 그었다. 오사카 총영사, 청와대 행정관 등의 인사청탁과는 무관하다는 취지로 방어막을 쳤다.

경찰은 김 의원 소환 하루 전 각각 오사카 총영사, 청와대 행정관 후보로 추천된 도모·윤모 변호사를 불러 조사한다. 이들 역시 한씨처럼 ‘김 의원은 모르는 일’이라고 진술할 경우 경찰 수사는 난항에 빠질 수도 있다.

김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경찰 조사가 늦었지만 다행’이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김 의원은 “신속한 소환은 제가 여러 번 요구해 온 것”이라며 “가서 분명하게 설명하고 정확하게 소명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김동원씨에 대한 첫 재판이 서울중앙지법 형사12단독(김대규 판사) 심리로 열렸다. 재판부는 김씨가 올해 1월 17~18일 ‘매크로 프로그램’을 활용해 평창올림픽 기사 댓글 공감 수를 조작해 네이버의 업무를 방해한 혐의만 추궁했다. 500만원 돈 거래 의혹은 재판 대상이 아니라서다.

매크로 프로그램이라는 게 어떻게 작용하는 건가요. (김 판사)
“상세히 설명하기 위해 공소장을 변경할 예정입니다.” (이모 검사)
그 프로그램을 쓰면 아이디 하나로 클릭을 여러 번 할 수 있다는 건가요? (김 판사)
“수사 중에 있어서 다음에….” (이 검사)

검찰은 공소장에 ‘불법 프로그램’이라고 적시된 매크로 프로그램이 뭔지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김 판사는 피고인 측 오정국 변호사로부터 “매크로 프로그램을 써도 아이디 하나당 ‘공감’은 한 번만 클릭할 수 있는 걸로 안다. 네이버의 업무에 크게 영향을 주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한다”는 설명을 들었다. 김씨는 혐의를 시인했다. 다음 재판은 2주 뒤(16일) 열린다.

한영익·문현경 기자 hanyi@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