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루킹의 네이버 댓글 조작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이 김경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4일 오전 소환조사키로 한 것은 더 이상 강제조사를 미룰 수 없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경찰이 사건 발생 한 달이 넘은 시기에 김 의원을 피의자로 입건조차 하지 못한 채 소환조사하는 상황을 두고는 늑장 부실 수사로 인한 참혹한 결과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드루킹 첫 재판 검찰 허술한 준비 #매크로 설명 못해 피고 측이 답해 #경찰, 김경수 조사 한 달 미적대다 #피의자 입건 못하고 참고인 소환 #IT 전문가 “증거 인멸 시간 준 셈”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2일 “김 의원을 상대로 댓글 조작과 인사청탁 부분을 포함해 사건 전반을 조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 의원이 사건의 핵심이며, 김 의원이 댓글 조작을 사전에 알거나 드루킹 김동원(49·구속기소)씨에게 불법 조작을 지시했는지 등을 집중 조사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경찰은 드루킹 일당의 본거지인 파주 느릅나무 출판사를 압수수색(3월 21일)하면서 이 사건에 김 의원이 관계된 사실을 처음 인지했다. 압수한 휴대전화를 복원·분석한 끝에 두 사람의 비밀 메신저를 통한 댓글 관련 대화를 확인했다. 댓글 관련 기사주소(URL)를 주고받으며 ‘홍보해 주세요’(김 의원), ‘처리하겠습니다’(드루킹) 등의 대화를 나눈 사실과 인사청탁 관련 메시지를 드루킹이 보낸 사실도 파악했다. 그러나 경찰은 김 의원의 통화 내역이나 계좌는 들여다보지도 못했다. 지난달 24일 검찰에 신청한 압수수색 영장이 기각된 이후 재신청하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영장을 두고 검경 갈등 양상을 보이다가 경찰이 고육지책으로 참고인 소환을 결정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한 정보기술(IT) 전문가는 “김 의원 측 휴대전화를 신속히 확보하지 않은 건 메시지를 삭제할 여유를 준 꼴”이라고 말했다.
김 의원에 앞서 지난달 30일 경찰에 소환된 보좌관 한모씨 조사에서도 김 의원과 관련한 의미 있는 진술은 없었다고 한다. 한씨는 경제적 공진화 모임(경공모) 회원 김모(49·필명 성원)씨를 통해 지난해 9월 500만원을 받았다가 드루킹 구속(3월 25일) 다음 날 돌려준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 조사에서 한씨는 “500만원을 빌린 것은 아니고 ‘편하게 쓰라’고 해서 받았고, 개인적 용도로 썼다. 김 의원은 알지 못했다”고 선을 그었다. 오사카 총영사, 청와대 행정관 등의 인사청탁과는 무관하다는 취지로 방어막을 쳤다.
경찰은 김 의원 소환 하루 전 각각 오사카 총영사, 청와대 행정관 후보로 추천된 도모·윤모 변호사를 불러 조사한다. 이들 역시 한씨처럼 ‘김 의원은 모르는 일’이라고 진술할 경우 경찰 수사는 난항에 빠질 수도 있다.
김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경찰 조사가 늦었지만 다행’이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김 의원은 “신속한 소환은 제가 여러 번 요구해 온 것”이라며 “가서 분명하게 설명하고 정확하게 소명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김동원씨에 대한 첫 재판이 서울중앙지법 형사12단독(김대규 판사) 심리로 열렸다. 재판부는 김씨가 올해 1월 17~18일 ‘매크로 프로그램’을 활용해 평창올림픽 기사 댓글 공감 수를 조작해 네이버의 업무를 방해한 혐의만 추궁했다. 500만원 돈 거래 의혹은 재판 대상이 아니라서다.
- 매크로 프로그램이라는 게 어떻게 작용하는 건가요. (김 판사)
- “상세히 설명하기 위해 공소장을 변경할 예정입니다.” (이모 검사)
- 그 프로그램을 쓰면 아이디 하나로 클릭을 여러 번 할 수 있다는 건가요? (김 판사)
- “수사 중에 있어서 다음에….” (이 검사)
검찰은 공소장에 ‘불법 프로그램’이라고 적시된 매크로 프로그램이 뭔지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김 판사는 피고인 측 오정국 변호사로부터 “매크로 프로그램을 써도 아이디 하나당 ‘공감’은 한 번만 클릭할 수 있는 걸로 안다. 네이버의 업무에 크게 영향을 주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한다”는 설명을 들었다. 김씨는 혐의를 시인했다. 다음 재판은 2주 뒤(16일) 열린다.
한영익·문현경 기자 hanyi@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