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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방송, 더 이상 벽은 없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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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영화와 TV를 아울러 지난 한 해 동안의 주요 성과를 시상하는 제54회 백상예술대상에서 영화부문 심사위원장을 맡은 최동훈 감독.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영화와 TV를 아울러 지난 한 해 동안의 주요 성과를 시상하는 제54회 백상예술대상에서 영화부문 심사위원장을 맡은 최동훈 감독.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제가 백상에서 ‘타짜’(2007년 대상·감독상)로도, ‘암살’(2016년 작품상)로도 상을 받았거든요. ‘심사위원장을 하겠냐’고 하길래 올게 왔구나, 세상에 공짜란 없구나 싶었죠.”

‘타짜’‘암살’의 최동훈 감독 #백상예술대상 심사위원장 맡아 #새로운 매력의 작품 찾아낼 것 #하루 20시간 TV 켜놓고 살기도

올해 제54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심사위원장을 맡은 최동훈(47) 감독의 말에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열흘 전 서울 상암동에서 만난 그는 이내 진지한 어조로 “영화상이란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했다. “잘 만든 영화에 상을 주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발굴’의 의미도 있죠. 가끔은 관객의 뜻과 좀 다른 결과라도. 그런 게 영화 만드는 사람들을 흥분시키곤 하죠.”

그처럼 한창 활약 중인 감독이 심사위원장을 맡는 건 사실 흔치 않은 일. 더구나 같은 감독으로서 동료나 선후배 작품을 심사하는 건 부담이 없을 리 없다. “사실 무례한 일이죠. 근데 제 머릿속에 있는 생각은 ‘이 영화가 저 영화보다 낫다’가 아니라 영화마다 미덕이 다르단 거에요. ‘신과함께’처럼 드라마가 강한 영화도 있고, ‘리틀 포레스트’처럼 여백이 강한 영화도 있고. 심사란 올해 뭐가 우리를 매혹시키냐, 우리가 뭘 응원하느냐가 없으면 안 되죠.”

그는 몇 해 전 중화권의 이름난 시상식인 대만 금마장 영화제에 참석했던 경험을 들려줬다. “5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이기도 했는데 역대 남우주연상 수상자들, 여우주연상 수상자들이 좌악 나오셨더라구요. 와, 이 사람들 참 잘 노는구나 싶었죠. 집행위원장은 허우샤오시엔 감독, 심사위원장은 리안 감독이었고. 리안 감독이 작품상부터 정했다고 하더라구요. 다른 부문부터 정하다 보면 배분하는 것처럼 될까 봐.” 한국감독들이 매년 여는 ‘디렉터스 컷’ 시상식도 최근 시상방식이 달라졌다고 한다. “지난해 나문희 선생님이 여우주연상을 받았는데, 선생님과 영화 찍었던 감독들이 모두 올라가 축하했죠.”

백상예술대상에 대해 그는 “경쟁보다 축하하는 걸로 자리를 잡았으면 한다”며 특히 영화·TV를 아우르는 시상식이란 점에서 “한국의 골든글로브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말마따나 더이상 “영화와 방송이 떨어져 있는 게 아니”란 점에서도 그렇다. 지난해 ‘아가씨’로 영화부문 대상를 받은 박찬욱 감독이 현재 영국 BBC의 6부작 드라마 ‘더 리틀 드러머 걸’을 찍고 있는 게 좋은 예다. 박 감독은 유럽에서 바쁜 촬영 일정을 소화하는 와중에 올해 영화부문 특별심사위원으로 참여한다. 지난해 드라마 ‘도깨비’로 TV부문 대상을 받은 김은숙 작가 역시 올 여름 신작 ‘미스터 선샤인’을 앞두고 올해 TV부문 특별심사위원을 맡았다.

최동훈 감독은 “어쩌면 TV부문 심사가 제게 더 맞을 것”이라고 했다. 듣고보니 TV를 하루 20시간 넘게 보기도 할 정도란다. 매번 시나리오를 직접 써온 감독답게 활자와도 친하다. 재미있는 건 “인터넷 검색보다 신문 기사 보는 걸 좋아한다”는 점. 자칭 ‘형광등도 못 가는 사람’인 그는 각종 소셜네트워크서비스도 안 한다고 했다.

그가 신작으로 준비해온 ‘도청’은 주연배우 가운데 김우빈이 지난해 비인두암 진단을 받자, 배우의 회복을 기다려 제작을 연기하는 쉽지 않은 결정을 내렸다. “영화라는 게 사람의 매력을 한껏 끌어올리는 작업이잖아요. 한 번 사랑에 빠진 사람과 쉽게 헤어질 순 없죠.” 덕분에 그에게는 올해 심사위원장을 거절할 구실이 없어졌다.

최근 한국영화계가 침체한 것 같다는 지적에는 “장르가 다양해져야 한다기보다 ‘작은 차이’를 느끼고 싶은데 그게 좀 아쉽다”고 했다. “영화 찍을 때나 감독이지, 저도 관객으로서 보고 싶은 영화가 있거든요. 색다른 것, 남들이 안 했던 것, 호기심을 부르는 것….” 심사위원장으로서는 “민주주의 방식”을 강조했다. “심사는 서로를 설득하는 과정이에요. 그리고 투표, 재투표로 이어지겠죠.”

이후남 기자 hoon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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