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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구조 취약한 현대차그룹, 거액 풀어 소액주주 달래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현대차 자사주 9600억원 어치 소각, 현대모비스 매출 44조원으로 확대, 현대글로비스 카셰어링 등 신사업 진출.

현대차그룹은 최근 이같은 주주가치 제고 방안과 중장기 사업 전략을 잇달아 쏟아냈다.

현대차가 자사주를 소각하는 것은 2004년 이후 14년 만에 처음이다. 중장기 발전 계획을 발표하면서 매출액과 신사업 부문을 구체적으로 밝힌 것도 이례적이다.

서울 서초구 현대자동차 본사. [연합뉴스]

서울 서초구 현대자동차 본사. [연합뉴스]

업계에서 이를 지배구조 개편의 후속 조치로 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의 분할·합병을 앞두고 주주 설득 차원에서 나왔다는 얘기다.

자사주 소각하고 사업확대 계획 밝히며 주주 달래기 나서

현대차그룹은 지난달 현대모비스를 둘로 쪼개 모듈·AS사업부는 현대글로비스와 합병하고, 존속 부문(미래차부품·투자사업)은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이 지분을 늘려 그룹의 지배회사로 만드는 방안을 발표했다. 현대모비스는 다음달 29일 주주총회를 열어 이 같은 합병안을 의결할 예정이다.
그런데 최근 시장에서 이상 기류가 감지됐다. 일부 주주와 시민단체 사이에 이 방안을 놓고 이견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엘리엇 계열 펀드의 투자 자문사인 엘리엇 어드바이저는 최근 '현대 가속화 제안서(Accelerate Hyundai Proposals)'를 보내 현대모비스를 지배회사로 두는 개편안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러면서 현대차와 현대모비스를 합병해 지주사로 전환할 것과, 현재 및 미래의 모든 자사주를 소각하라고 요구했다. 엘리엇 측은 또 기아차가 보유하고 있는 현대모비스 주식의 미래 가치가 저평가됐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현대모비스 분할합병의 이유와 현대글로비스와의 주식 교환비율에 대한 논리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참여연대도 가치평가 문제를 꼬집었다. 참여연대는 자체적으로 합병비율의 적정성을 검토한 결과를 공개하면서 "모비스 분할법인의 영업이익이 모비스 존속법인보다 월등히 높은데 낮게 평가됐고, 글로비스에 넘겨주는 모비스 분할법인은 합병 이후 매출 총이익과 5년 뒤 영구 성장률을 너무 낮게 추정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은 현대글로비스 지분을 각각 6.7%, 23.3% 갖고 있다. 한마디로 오너 일가에 이익이 되는 쪽으로 합병 비율 산정이 이뤄진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자사주 소각은 회사가 보유한 주식을 없애는 것으로 회사의 성장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주주들에게 이익을 배분하는 효과가 크다. 주식 유통물량이 줄어들어 주당순이익(EPS·당기순이익/주식수)과 주당 배당금이 늘어나는 효과를 볼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주가 부양에도 도움이 된다. 현대차가 이번에 소각하는 주식은 모두 854만주로 전체 발행 주식의 3% 규모다.

소액주주가 엘리엇에 동조 땐 지배구조 개편 난항 우려  

현대글로비스 매출 계획

현대글로비스 매출 계획

김준성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은 “행동주의 펀드는 기업이 지배구조 개편에 나서는 시점을 이익 극대화의 시기로 보고 주주들을 규합해 경영진에 압박 강도를 높인다"고 설명했다. 엘리엇은 지난 2015~2016년에도 삼성그룹과도 일전을 벌였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비율이 주주에게 불리하다며 합병에 반기를 들었고, 삼성전자는 9조원대 자사주 매입·소각 계획을 발표했다.

현대차그룹이 엘리엇의 요구를 외면할 수 없는 이유는 취약한 지배구조와도 연관이 있다. 현대모비스 인적 분할 및 합병안이 주총을 통과하려면 '의결권 있는 출석 주주 3분의 2 이상 동의와 발행주식 총수 3분의 1 이상 참석, 동의'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그런데 현대모비스 지분 중 오너 측 우호 지분은 개인 지분에 기아차(16.9%), 현대글로비스(0.7%), 현대제철(5.7%) 지분을 더해 30% 정도다. 외국인 지분율은 48%에 달한다. 엘리엇이 반대하고 외국인과 기관투자자, 그리고 소액주주가 동조하면 합병이 차질을 빚을 가능성도 있다.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세 결집에 나서는 엘리엇에 현대차그룹이 주주환원정책과 미래 사업 다각화라는 대응책으로 맞서고 있다"며 "이같은 정책이 주주들의 마음을 얼마나 얻을지는 내달 열리는 모비스 주총에서 확인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태희 기자 adonis55@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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