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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의 제왕' 속 협곡… 신이 빚은 뉴질랜드 남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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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1호 20면

뉴질랜드는 크게 북섬과 남섬으로 나뉜다. 북섬이 여러 개의 화산으로 이뤄진 ‘불의 섬’이라면 남섬은 빙하의 영향으로 형성된 ‘얼음의 섬’이다. 남섬의 피오르랜드(Fiordland) 국립공원은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은 원시림과 빙하 녹은 물이 호수를 이룬 청정지역이다. 국립공원 안에 ‘세계 8번째 불가사의’로 통하는 밀포드 사운드(Milford Sound)가 있다. 전 세계 액티비티의 수도라는 퀸스타운(Queenstown)도 지척이다. 번지점프가 퀸스타운에서 유래했다. 뉴질랜드 남섬을 다녀왔다. ‘대자연’이라는 단어를 실감했다.

영화 '반지의 제왕' '호빗' 등에 나온 밀포드 사운드. 빙하가 만든 협곡 안으로 바다가 흘러든 피오르 지형이다. [사진 뉴질랜드관광청]

영화 '반지의 제왕' '호빗' 등에 나온 밀포드 사운드. 빙하가 만든 협곡 안으로 바다가 흘러든 피오르 지형이다. [사진 뉴질랜드관광청]

바다, 산으로 들어오다 - 밀포드 사운드

 크루즈가 호수처럼 잔잔한 바다를 미끄러져 내려왔다. 회색 물범이 바위 위에서 한껏 게으름을 피우며 오후 햇볕을 즐겼다. 돌고래 무리는 해변 쪽으로 물고기들을 몰고 가더니 첨벙첨벙 장난을 쳤고, 가마우지는 수면 가까이 낮게 나르며 인간 무리를 반겼다. 자연 다큐멘터리 영화에서나 보던 장면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밀포드 사운드 절벽은 푸릇푸릇하다. 열대우림과 양치류 식물이 바위를 덮고 있어서다. [사진 뉴질랜드관광청]

밀포드 사운드 절벽은 푸릇푸릇하다. 열대우림과 양치류 식물이 바위를 덮고 있어서다. [사진 뉴질랜드관광청]

 밀포드 사운드. 뉴질랜드 남서쪽 끝 피오르랜드 국립공원 안에 있는 거대 협곡이다. 빙하의 침식작용으로 이루어진 이 날카로운 계곡을 뉴질랜드에서는 ‘신의 조각품’이라 부른다. 마이터봉(1692m)을 비롯한 높고 날카로운 산이 병풍처럼 늘어서 있다. 밀포드 사운드는 국립공원의 14개 해안 협곡 가운데 가장 지형이 장쾌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밀포드 사운드의 풍경은 왠지 익숙하다. 할리우드 영화 ‘반지의 제왕’과 ‘호빗’의 주 촬영지가 이 협곡지대였다.
 밀포드 사운드는 노르웨이의 피오르와 비슷하면서 다르다. 험준한 봉우리들과 대비되는, 바다라고는 믿기지 않는 잔잔한 수면이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피오르를 연상시킨다. 일반 해협처럼 V자가 아니라 빙하가 끊어 놓은 U자 협곡이다. 가장 다른 점은 밀포드 사운드는 푸르다는 사실이다. 노르웨이의 피오르는 황무지가 연상되지만, 밀포드 사운드의 절벽은 너도밤나무를 비롯한 열대우림이 양치류와 함께 푸른 색으로 장식한다. 밀포드 사운드 일대 연평균 강우량은 7500mm가 넘는다. 습기가 많아 바위 위에 이끼가 자라는데, 그 불안하게 자리 잡은 이끼에 나무들이 뿌리를 내린다.

밀포드 사운드는 구름 끼고 비가 내려도 운치 있다. [사진 뉴질랜드관광청]

밀포드 사운드는 구름 끼고 비가 내려도 운치 있다. [사진 뉴질랜드관광청]

 약 16㎞ 길이의 협곡 곳곳에서 젓가락처럼 얇은 폭포들이 부드러운 안개를 만들어낸다. 그중 높이 155m의 스털링 폭포가 가장 유명하다. 나이애가라 폭포의 3배 높이다. 스털링 폭포의 물을 맞으면 십 년 젊어진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그래서 여객선이 일부러 폭포 앞 절벽까지 다가가고, 여행자는 난간으로 나와 쏟아지는 물 아래에서 환호를 지른다.
 먹구름 속에서도 밀포드 사운드의 웅장함은 빛났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러디야드 키플링(1865∼1936)이 “세계 8번째 불가사의”라고 극찬했다던가. 밀포드 사운드로 가는 트레킹 코스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로 꼽힌다.

빙하가 빚은 협곡 밀포드 사운드 #"세계 8번째 불가사의" 극찬 #155m 높이 스털링 폭포 장관 #번지점프의 탄생지 퀸스타운 #제트보트 등 모험스포츠 천국 #피노누아 등 수준 높은 와인도 #

대자연과 놀다 - 퀸스타운

 퀸스타운을 찾는 사람은 반드시 곤돌라를 타고 스카이라인에 오른다. 해발 451m 전망대에 도착하면 설산과 와카티푸(Wakatipu) 호수의 맑은 물이 한눈에 들어온다. 왜 퀸스타운이 스키 뿐 아니라 스카이다이빙ㆍ패러글라이딩ㆍ제트보트 등 액티비티의 천국인지 알 수 있다. 퀸스타운은 번지 점프가 시작된 고장이기도 하다.

퀸스타운 시내에서 곤돌라를 타고 올라가는 스카이라인. 와카티푸 호수가 내려다 보인다. [사진 이홍순]

퀸스타운 시내에서 곤돌라를 타고 올라가는 스카이라인. 와카티푸 호수가 내려다 보인다. [사진 이홍순]

스카이라인에서는 번지점프도 할 수 있다. 와카티푸 호수를 보며 뛰어내리면 극한의 스릴이 느껴진다. [사진 뉴질랜드관광청]

스카이라인에서는 번지점프도 할 수 있다. 와카티푸 호수를 보며 뛰어내리면 극한의 스릴이 느껴진다. [사진 뉴질랜드관광청]

 곤돌라에는 산악자전거를 실은 젊은이로 넘쳤다. 엎어지고 넘어지면서도 자전거를 타는 이들의 기개가 부러웠다. 함께 곤돌라를 탄 데이비드는 미국에서 왔다고 했다. “왜 이 먼 곳까지?” “퀸스타운은 모험 스포츠의 수도니까.” 데이비드는 헬멧을 고쳐 쓰고 거친 자전거 길로 사라졌다. 스카이라인에서 리프트를 타고 더 올라가면 루지 승강장이 있다. 평탄한 코스와 가파른 코스가 있는데 완만한 코스에선 경치를, 가파른 코스에서는 스릴을 느낄 수 있다.
 제트보트 ‘샷오버(Shot-over)’는 ‘터널’이라 불리는 협곡을 통과한다. 보트가 절벽에 바투 붙어 놀라운 속도로 달리기 때문에 살갗이 벗겨지는 듯한 짜릿함을 경험한다. 골퍼라면, 헬리콥터를 타고 산으로 올라가 푸른 호수 옆 그린을 향해 샷을 하는 ‘오버 더 탑’ 골프를 잊지 못할 것이다.

스카인라인에서 체험할 수 있는 루지. [사진 이홍순]

스카인라인에서 체험할 수 있는 루지. [사진 이홍순]

 와카티푸 호수는 멀리서 보면 옥색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바닥이 훤히 비칠 정도로 투명하다. 빙하가 녹아내리면서 바위를 곱게 갈았고 바위 입자가 채 용해되지 않은 상태로 물에 떠다니는 콜로이드 현상 때문이다. 고요한 호수에는 오래된 증기선이 연기를 뿜으며 떠다닌다. 영화 ‘인디아나 존스: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에 등장한 백 살 넘은 증기선 ‘TSS언슬로’호다.
 퀸스타운에서 진짜 하늘색을 잊고 살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미세먼지와 황사에 갇힌 서울에서 보지 못했던 투명한 하늘이 퀸스타운에는 있었다. 사진작가 이홍순씨는 “공기가 아주 맑아서 자연의 색깔이 완연히 다 드러난다. 프로든 아마추어든 사진 찍는 사람들이 아주 행복한 곳이 여기”라고 말했다.

퀸스타운 인근 와이너리에서 와인을 시음하는 관광객. [사진 이홍순]

퀸스타운 인근 와이너리에서 와인을 시음하는 관광객. [사진 이홍순]

퀸스타운은 전체적으로 습도가 높지만 사막기후인 깊은 계곡도 있다. 와인 산지에 적한한 환경이다. [사진 이홍순]

퀸스타운은 전체적으로 습도가 높지만 사막기후인 깊은 계곡도 있다. 와인 산지에 적한한 환경이다. [사진 이홍순]

 음식도 예술이다. 낙농업이 발달한 나라여서 소고기ㆍ양고기가 혀에서 녹는다. 남위 45도에 자리하고 습도가 높은 퀸스타운에 뛰어난 와인도 있다는 것도 놀랍다. 퀸스타운에서 20분 거리에 사막 기후의 계곡이 있다. 높은 산이 구름을 막아 와인 생산에 적절한 습도를 유지한다. 특히 피노누아 와인의 향취가 그윽하다. 액티비티를 즐긴 뒤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히기에도 좋다.

 ◇여행정보=한국에서 뉴질랜드 남섬으로 가는 직항은 없다. 대한항공 인천∼오클랜드 직항편을 이용하거나 호주 등을 경유해 퀸스타운으로 가야 한다. 1뉴질랜드달러는 약 780원이다. 뉴질랜드는 남반구여서 한국과 계절이 반대다. 퀸스타운의 가을인 4월 평균 기온은 13도다. 한겨울에도 영하로 내려가지 않는다.

퀸스타운(뉴질랜드)=성호준 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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