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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격'의 김정은…"나는 언제 北 가보냐"는 文 대통령 말에 "지금 가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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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밝은 표정으로 악수를 건네며 말을 꺼냈다. 김 위원장의 손을 잡은 문재인 대통령은 “오시는 데 힘들지 않았습니까?”라고 하자, 김 위원장은 “아닙니다”라며 더 밝게 웃었다.

2018년 4월 27일 오전 9시 29분. 남북 정상은 판문점 군사정전위원회 본 회의실(T2)과 소회의실(T3) 사이로 난 길에 표시된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놓고 처음으로 만났다.

▶김 위원장=“정말 마음 설렘이 그치지 않고요. 이렇게 역사적인 장소에서 만나니까, 또 대통령께서 이런 분계선까지 나와서 맞이해준 데 대해서 정말 감동적입니다”
▶문 대통령=“여기까지 온 것은 위원장님의 아주 큰 용단이었습니다”
▶김 위원장=“아니 아니, 아닙니다”
▶문 대통령=“역사적인 순간을 만들었습니다”

두 사람은 마주 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그리고는 김 위원장에게 “이쪽으로 서실까요?”라며 군사분계선 남쪽으로 그를 안내했다. 김 위원장의 왼발이 남쪽 땅을 밟았다. 1953년 정전협정 이후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처음으로 한국 땅을 밟는 순간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7일 오전 판문점 평화의 집 앞에서 의장대 사열을 마친 뒤 환담하고 있다. 공동취재단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7일 오전 판문점 평화의 집 앞에서 의장대 사열을 마친 뒤 환담하고 있다. 공동취재단

두 사람은 차례로 남측과 북측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때 돌발 상황이 벌어졌다.

▶문 대통령=“(김 위원장은) 남측에 오시는데, 나는 언제쯤 (북으로) 넘어갈 수 있겠습니까”
▶김 위원장=“그럼 지금 넘어가 볼까요?”

김 위원장은 그리고는 문 대통령의 손을 이끌고 함께 군사분계선을 넘었다. 예정에 없이 함께 북쪽 땅에 나란히 선 두 사람은 다시 손을 맞잡았다. 김 위원장은 왼손으로 마주 잡은 손을 감싸 쥐고 밝게 웃었다.

두 사람은 전통 의장대의 경호를 받으며 130m가량을 나란히 걸었다. 선두에는 전통 악대가 서고, 뒤쪽에는 호위 기수가 따랐다. 북한 지도자의 첫 국군 사열이었다. 김 위원장은 긴장된 표정을 보였다. 그러자 이번에는 문 대통령이 먼저 대화를 이끌었다.

▶문 대통령=“외국(정상들)도 전통의장대를 좋아한다. 그런데 오늘 의장대는 약식이라 아쉽습니다. 청와대에 오시면 훨씬 좋은 장면을 보여드릴 수 있습니다”
▶김 위원장=“아, 그런가요. 대통령께서 초청해주시면 언제라도 청와대에 가겠습니다”

9시 33분. 두 사람이 사열대에 오르자 ‘충성’ 구호와 함께 사열 준비를 마쳤다는 보고가 이뤄졌다. 문 대통령은 거수경례로 답했지만, 김 위원장은 두 손을 아래로 내린 채 그대로 서 있었다. 김 위원장은 사열 내내 굳은 표정으로 의장대 쪽이 아닌 오로지 정면만을 응시했다. 1분여의 사열을 마친 뒤에야 여유를 찾은 표정을 보였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7일 오전 판문점에서 의장대 사열을 받으며 환히 웃고 있다. 공동취재단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7일 오전 판문점에서 의장대 사열을 받으며 환히 웃고 있다. 공동취재단

양 정상은 차례로 수행원들을 소개했다. 문 대통령은 유일한 여성 수행원인 강경화 외교장관을 소개하는데 상대적으로 긴 시간을 할애했다. 김 위원장이 북한 수행원을 소개하는 과정에서 군복 차림의 리 총참모장과 박 인민무력상은 문 대통령에게 거수경례했다. 지난 2월 문 대통령과 만난 적 있는 김여정 당 중앙위 제1부부장은 웃으며 “반갑다”고 인사를 건넸다.

파격은 계속됐다. 김 위원장이 회담장으로 이끄는 문 대통령에게 “사열 끝나고 돌아가야 하는 분들이 있다”고 말하자 문 대통령은 “그럼 가시기 전에 남북 공식 수행원 모두 기념으로 사진을 함께 찍었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예정에 없던 전체 수행원들의 단체 사진 촬영이 이뤄졌다.

공식 환영식 이후 김 위원장은 평화의집 1층이 마련된 방명록 서명 책상에 앉았다. 동생 김여정은 재빨리 서명에 쓸 펜을 전달하자, 김 위원장은 “새로운 력사는 이제부터. 평화의 시대 역사의 출발점에서”라고 적었다. 방명록을 적으면서 그는 간간이 입술에 침을 바르며 긴장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다소 상기된 표정으로 숨을 조금씩 몰아쉬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7일 오전 파주시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남북정상회담에 앞서 방명록을 쓰고 있는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보고 있다. 오른쪽은 김여정 당중앙위 제1부부장. 공동취재단

문재인 대통령이 27일 오전 파주시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남북정상회담에 앞서 방명록을 쓰고 있는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보고 있다. 오른쪽은 김여정 당중앙위 제1부부장. 공동취재단

비공개로 진행된 사전 환담회에서는 김 위원장의 솔직한 면모가 드러났다. 그는 먼저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따른 문 대통령의 새벽 회의 소집을 꺼냈다. 다.

비공개로 진행된 사전 환담회에서는 김 위원장의 솔직한 면모가 드러났다. 그는 먼저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따른 문 대통령의 새벽 회의 소집을 꺼냈다.

▶김 위원장=“대통령께서 우리 때문에 NSC에 참석하시느라 새벽잠을 많이 설쳤다는데, 새벽에 일어나는 게 습관이 되셨겠습니다”
▶문 대통령=“김 위원장께서 우리 특사단이 갔을 때 선제적으로 말씀을 주셔서 앞으로 발 뻗고 자겠습니다”

그리고는 의외의 발언이 나왔다. 바로 연평도다.

▶김 위원장=“오면서 보니 실향민들과 탈북자, 연평도 주민 등 언제 북한군의 포격이 날아오지 않을까 불안해하던 분들도 오늘 우리 만남에 기대를 가지고 있는 것을 봤습니다. 이 기회를 소중히 해서 남북 사이에 상처가 치유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분단선이 높지도 않은데 많은 사람이 밟고 지나다 보면 없어지지 않겠습니까”
▶문 대통령=“우리 어깨가 무겁다. 오늘 판문점을 시작으로 평양과 서울, 제주도, 백두산으로 만남이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

2010년 11월 23일 북한이 곡사포 100여 발을 무차별 사격했던 연평도 포격사건으로 해병대 2명이 사망하고 16명이 중경상을 입었고, 민간인 도 2명이 사망하고 10명이 다쳤다. 김 위원장 입에서 이에 대한 ‘상처’가 언급된 자체가 지극히 이례적이다.
김 위원장은 이어 열악한 북한의 교통상황을 에둘러 표현하기도 했다. 발단은 등산을 좋아하는 문 대통령의 언급이었다.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7일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에서 사전 환담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단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7일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에서 사전 환담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단

▶문 대통령=“나는 백두산을 가본 적이 없다. 그런데 중국 쪽으로 백두산을 가는 분들이 많더라. 나는 북측을 통해서 꼭 백두산에 가보고 싶다”
▶김 위원장=“솔직히 걱정스러운 것이 우리 교통이 불비해서 불편을 드릴 것 같다. 평창 올림픽에 갔다 온 분들이 말하는데 평창 고속열차가 다 좋다고 하더라. 남측의 이런 환영에 있다가 북에 오면 참으로 민망스러울 수 있겠다. 우리도 준비해서 대통령이 오시면 편히 모실 수 있게 하겠다”

문 대통령은 교통시설이 부족하다는 김 위원장의 솔직한 ‘고백’에 “앞으로 북측과 철도가 연결되면 남북이 모두 고속철도를 이용할 수 있다. 이런 내용이 6ㆍ15, 10ㆍ4 합의서에 담겼는데 10년 세월동안 실천하지 못했다”며 “김 위원장께서 큰 용단으로 10년 동안 끊어졌던 혈맥을 오늘 다시 이었다”고 답했다.
문 대통령의 말에 김 위원장도 보수 정부 때 단절됐던 대화를 여러 차례 강조했다.

▶김 위원장=“큰 합의를 해놓고 10년 이상 실천을 못 했다. (2007년 회담 이후) 11년간 못한 것을 100여일 만에 줄기차게 달려왔다. 굳은 의지로 함께 손잡고 가면 지금보다야 못해질 수 있겠나”
▶문 대통령=“(대통령직을) 시작한 지 이제 1년 차다. 내 임기 내에 김 위원장의 신년사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달려온 속도를 계속 유지했으면 좋겠다”
▶김 위원장=“김여정 부부장 부서에서 ‘만리마 속도전’이라는 말을 만들었는데, 남과 북의 통일의 속도로 삼자. 다시 원점으로 오는 일이 없어야 한다. 좋은 세상을 만들어보자. 앞으로 우리도 잘하겠다”

이를 놓고 일각에선 김 위원장이 보수정부에 남북 합의 불이행의 책임을 떠넘기며 문재인 정부와 공감할 수 있는 포인트를 제시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동시에 합의 불이행의 원인이 된 북해 문제에 대한 귀책사유를 회피하려는 의도도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날 환담 중에는 김 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에 대한 언급도 있었다. 문 대통령은 지난 2월 방한으로 이미 안면이 있는 김여정을 언급하며 “김 부부장은 남쪽에서는 아주 스타가 됐다”라고 말하면서 환담장에 큰 웃음이 나왔다. 이 바람에 김여정의 얼굴이 빨개졌다고 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7일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오전 정상회담을 마치고 북측으로 가기 위해 차를 타고 이동하고 있다. 12명의 경호원들이 김 위원장의 차량을 에워싼 채 이동하고 있다. 공동취재단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7일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오전 정상회담을 마치고 북측으로 가기 위해 차를 타고 이동하고 있다. 12명의 경호원들이 김 위원장의 차량을 에워싼 채 이동하고 있다. 공동취재단

판문점=공동취재단, 강태화ㆍ송승환ㆍ김준영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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