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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인제」파문…정국냉각 오래끌듯|대통령 거부권행사 여부와 전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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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9일 국회를 통과한 국정감사·조사법과 국회에서의 증언·감정에 관한 법에 대한 노태우대통령의 거부권행사 여부가 관심을 끌고 있다.
구인제등 몇 가지 정점에서 집권당의 반대속에 3야당이 야대의 힘으로 통과 시킨 법안이라 민정당은 표결전부터 『거부권행사 건의』 방침을 결정해 놓고 있다.
김종필공화당총재는 『시발부터 부담이 될 정치행위를 할 리가 있겠느냐』며 거부하지 을것이라고 전망하고 김대중평민·김영삼민주당총재도 특정인 비호의도·국민감정등을 들어 거부권행사에 제동을 걸고 있으나 이미 민정당은 정부와 여러차례 당정회의 끝에 거부권행사를 확정해 두고 있다.
따라서 문제는 거부권행사 후에 올 정국분위기 및 재심의 협상 등으로 주목되고 있다.

<거부권>
국회가 의결한 법률안에 이의가 있을 때 대통령이 재의결을 요구하는 권한 (헌법 제53조) 으로 국회에 대한 대통령의 합법적인 방어수단이다.
국회는 거부돼온 법률안을 수정없이 확정시키려면 「재적의원과반수 출석에 출석의원 3분의2 찬성」을 얻어야 한다.
그러나 야3당은 무소속 8명까지 모두 끌어 들인다해도 1백74명에 불과해 재의결은 어렵게 돼 있다. 국회해산권이 없어지는 등 대통령의 권한이 크게 줄어들고 상대적으로 국회의 권한이 확대된 새 헌법에다 여소야대로 국회를 장악하지 못한 상황이 대통령으로선 법률안거부권이 최후의 방어수단인 셈이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야대라는 힘의 한계를 깨닫게 해주는 동시 자주 행사하게 될지도 모르는 거부권에 대한 충격을 완화시켜 두려는 목적』이라고 13대 첫 거부권행사의 이유를 셜명하고 있다. 특히 민정당측은 야당이 요구하고 있는 구인제에 위헌적 요소가 있다고 보고 이번 거부권행사가 타당하다는 점을 대대적으로 홍보할 작정이다.

<전망>
대통령의 거부권행사는 국회로부터 법률안을 받은뒤 15일 이내에 하도록 규정돼 있다. 늑장을 부리려면 다음 임시국회(18∼23일)가 끝난 뒤 거부권을 행사해도 아무런 하자가 없다. 이 경우 「광주」「5공비리」「선거부정」 등 3개조사특위의 본격 활동은 물론 9월 정기감사까지 근거법이 없어 실시하지 못하는 상태를 맞을 수도 있다.
때문에 여당측은 국정감사마저 기피한다는 비난은 피하기위해 국정감사·조사법을 일부수정해서 통과시킨다는 생각이다.
따라서 이번주중 거부권을 행사, 곧 바로 여야 재협상이 시작돼 다음주 열릴 임시국회에서 협상안이 처리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다만 쌍방 모두 표결강행→거부권행사등 최종카드를 내놓고 힘대결을 벌인 뒤끝이라 감정과 자존심 싸움으로 연결될 경우 냉각정국이 상당기간을 끌 수도 있다.
쟁점중 △국가기밀의 한계·조사대상기관등은 민정당측이 △국정조사발동요건·상임위조사 등은 야측이 각각 양보할 가능성이 있어 결국 남은 것은 구인제설치여부다.
이 조항은 전두환전대통령의 직접소환여부와 고리지어져 있어 먼저 그에 대한 여야 타협이 이뤄져야만 풀리게끔 돼 있다. 그러나 아직은 여야 모두 강경한 입장이라 손쉬운 협상타결을 점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과거사례>
대통령의 법률안거부권은 제헌헌법부터 규정된 제도로 그동안 50건이 기록돼 있으나 10, 11, 12대 때엔 행사된예가 한건도 없어 일반에겐 낯선 제도가 됐었다.
제헌14건, 2대25건, 3∼4대각3건, 6대1건, 7대3건, 9대1건등에서 볼 수 있듯 야당이 과반수를 넘은 1, 2대때 집중되고 있어 여소야대의 13대에 와서 관심을 끌고 있는 점과 연결되고있다.
50건중 국회의 원안대로 재의결확정시킨 것이 19건, 법률확정으로 간주한 것 5건, 수정통과시킨 것이 6건이며 재의부결8건, 기타 폐기 또는 철회된 것이 12건등이다.
우리 헌정사상 최초의 거부권행사는 48년10월6일 이뤄졌다. 당시 정부는 처음으로 열린 국회에서 의결된 양곡매입안법과 지방행정에 관한 임시조치법안등 2개 법안을 차례로 거부,전자는 국회가 정부요구대로 수정의결했으나 후자는 3분의2찬성으로 국회원안을 재의결, 정부에 패배를 안기는 첫 사례를 남겼다.
정부와 국회가 핑퐁식으로 주고 받으며 큰 관심을 모았던 사례는 농지개혁법. 국회는 49년3월 산업위원장 이름으로 농지의 유상매수·유상분배를 골자로한 농지개혁법안을 발의, 4월27일 가결했다. 무상분배를 기대하던 당시 사회분위기와는 거리가 먼 내용이었는데도 정부는 지주측의 반발에 부닥치자 공포를 미루다 「국회가 페회중이어서 이 법안은 자동소멸된 것으로 간주한다」고 국회에 통보했다. 이에 국회는 6월6일「정부의 소멸통고는 위법적 조치이므로 법률이 확정된 것으로 간주한다」는 의결을 하여 정부에 재이송, 끝내 공포케 했다.
2대 때는 이승만대통령이 「전시상황」을 핑계로 재의결한 법률 8건에 대해 공포를 미루는 위헌을 저지르기도 했는데 그중 5건은 1년만에 공포했으나 농지개혁법(개정)·정치운동에관한 임시조치법·비상사태하의 범죄처벌에 관한 특별조치령폐지등 3건은 끝내 공포를 기피하다 4·19후 제2공화국에서 7년만에 햇볕을 보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54년6월 집권층이 원내장악을 한뒤부터 지금까지는 거부권행사의 필요성이 없어진 탓으로 행사사례가 현격히 줄어 들었고 몇몇 거부권이 행사된 법률은 재심의과정에서 정부 뜻대로 부결 또는 폐기되곤 했다.
마지막으로 거부권행사를 유도한 법률은 75년7월의 「국회에서의 증언·감정에 관한 법」으로 이번에 또 다시 논란이 되고 있으니 재미있는 현상이다.
당시 국회는 국정조사를 위한 증언 때 국가안보에 관한 사항에 대해선 증언·서류제출을거부할 수 있도록 하면서 국회가 이를 의결하면 거부하지 못하게 단서규정을 달았다. 이에정부는 이 규정대로하면 국가안보사항이 누설될 수 있다는 우려를 표시 거부했다. 야당측은원안통과를 고집했으나 그해 11월 재의결에 부친 결과 중과부적으로 부결됐다. <허남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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