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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자 대법관의 "인간승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법원장서 승진한 김용준씨
『이처럼 영예로운 자리에 지명된 것은 선배나 여러 동료 법관들이 아껴주시고 도와준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새 대법관에 지명된 김용준서울가정법원장(50)은 환한 얼굴로 소감을 털어놓으며 남다른 감회에 젖었다.
지체부자유를 딛고 일어선 인간승리이자 우리나라 사법사상 첫 장애자대법관이 됐기때문이다. 『지체부자유자도 한때 질병을 앓았던 것일뿐 평범한 정상인입니다. 지체가 자유롭지 못하다는 이유로 차별대우를 받아서는 안되지만 특별대우를 받아서도 안됩니다.』
김원장은 세살때인 41년 소아마비에 걸렸다. 일제치하의 조선인으로서 변변한 치료한번 받아보지 못했다.
『나이가 조금씩 들면서 어린 마음에 무척이나 상심했읍니다. 나는왜 다른 친구들처럼 뛰어놀수 없을까하는 것이었지요. 그러나 철이 들면서 걷지도 못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나마 걸을수 있다는것이 큰 위안이었고 지금도 그같은 생각에는 변함이없읍니다.』 학업성적이 뛰어났던 김원장은 서울중학에 진학했고 서울고 2학년 재학중 대입검정고시에 합격, 이듬해인 55년 동급생들보다 1년 먼저 서울법대에 입학했다.
자신의 신체적 결함을 학구열로 불태워온 김원장은 만19세가 되던 7년 제9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응시, 최연소로 수석합격의 영광을 안았다. 고시 9회에는 모두 4천여명이 응시, 단 3명만을 합격시킨 어려운 관문이어서 김원장의 수석합격은 커다란 화제가 됐었다.
평범한 사람이라서 법관을 지망했다는 김원장은 60년 대구지법 판사로 법조계에 것발을 디딘후 법관재직중에도 장애자 자활활동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65년4월 같은 소아마 비를 앓았던 친구 송영욱변호사 (소아마비협회부회장)와 어릴적 친구 정은배씨 (51·소아마비협회이사) 등과 함께 공동이사로 한국소아마비협회를 만들었던 것.
그는 이때부터 장애자단체의 행사라면 빼놓지않고 참석해왔으며 스스로 장애극복을 위해 매일아침 수영을 시작, 이제는 1km를 쉬지않고 수영할수 있는 실력을 쌓았다. 『서울고법 부장판사시절이던 81년 미국방문중 루스벨트기념관에서 받았던 감명은 지금도 잊을 수 없읍니다. 그때까지만해도「루스벨트」가 다리를 좀 걸었던 사람으로 생각했는데 그의 생가에서 여러개의 훨체어를 보고 내자신 걸을 수 있다는 생각에 감사했던 것입니다.
법관의 생명은 법과 양심에 따른 판결일 뿐이라고 강조한 김원장은 진정한 장애자는 지체부자유자가아니라 마음이 비뚤어진 사람이라며 또한번 환한웃음을 지었다. <신성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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