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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신성식의 요람에서 무덤까지

국립중앙의료원장의 황당한 큰절 사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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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신성식 기자 중앙일보 복지전문기자
신성식 복지전문기자·논설위원

신성식 복지전문기자·논설위원

“정부를 무시하는 거냐, 사과해요.” “잘못 모셔서 죄송합니다.”

화제의 두 발언이다. 전자는 보건복지부 A과장이 18일 모 병원장에게 한 말이다. 후자는 정기현 국립중앙의료원장이 19일 A과장에게 무릎을 꿇고 큰절을 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두 장면에서 우리 사회의 단면이 드러난다. A과장의 호통에는 중앙부처 공무원의 선민의식이 깔려있다. 이게 왜곡되면 ‘갑질’로 비친다. 복지부는 의료법·건강보험법·약사법 등 96개의 법률에다 대통령령 100개, 부령 116개를 갖고 있다. 강력한 규제법이다. 훈령(65개), 예규(42개), 고시(251개)는 더 무섭다. 이걸로 의사·약사·병원·제약회사·의료기회사·어린이집 등을 통제한다.

공무원의 힘은 규제에서 나온다. 선민의식이라면 빠질 게 없는 의사도 복지부 주무관·사무관·과장 앞에서는 몸을 낮춘다. 국민의 공복이라고 자처하면서도 그들의 맘 한 켠에 ‘감히’라는 왜곡된 우월감이 도사리고 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4/24

요람에서 무덤까지 4/24

이번 건은 독특한 면이 있다. 정 원장은 최근 발생한 간호사 사망사건을 주무부처인 복지부에 보고하지 않았다. A과장은 18일 저녁 자리에서 정 원장에게 섭섭함을 토로했다. 여기까지는 A과장이 갑이다. 지금부터는 갑을이 바뀐다. 정 원장은 복지부 공공의료발전위원회 위원장이다. 복지부 차관과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다. A과장은 위원회 간사이다.

게다가 정 원장은 흔한 위원장이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 지지모임인 ‘더불어포럼’ 공동대표 출신의 ‘실세’다. 공공의료 분야 경험이 별로 없는 소규모 민간병원장이 위원장이 됐고, 국립중앙의료원장까지 올랐다. 복지부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존재다. 그래서 정 원장의 ‘무릎 사과’의 의도를 의심하는 시각이 있다. 정부청사 사무실에서 여러 명이 보는 가운데 그런 황당한 행동을 하기 쉽지 않다.

전만복 전 복지부 기조실장은 『공무원은 무엇으로 사는가』(지필미디어)에서 “공무원이 위임받은 권한을 갖고 갑의 입장에서 상전 노릇을 하는 것은 비정상 중의 비정상”이라고 지적한다. 후배들이 귀 기울일만한 선배의 조언이다. 그리고 정권 창출에 공이 있다고 해서 맞지도 않은 옷을 입히는 일은 이제 그만뒀으면 좋겠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