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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 종식 몰타의 폭풍우, 남북 정상의 날씨 덕담…27일 판문점 날씨는

중앙일보

입력

날씨는 분위기를 형성한다. 정상회담 같은 국가적인 이벤트도 예외는 아니다.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는 27일의 날씨에도 관심이 높은 이유다.

기상청 중기 예보에 따르면 회담 당일 판문점이 위치한 경기도 파주 지역의 날씨는 ‘구름이 조금 많은 가운데 맑음’이다. 최저 기온은 6도, 최고 기온은 21도로 평년 수준이다. 북한 지역에서 판문점과 가장 가까운 개성 지역은 최저 8도, 최고 20도가 예상된다. 역사적 장면이 전 세계에 생중계되는 날 현재까지 기상 이변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냉전 종식의 '산통' 같았던 폭풍우

89년 12월 3일 지중해의 섬나라 몰타에서 정상회담을 끝내고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부시 미국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 [중앙포토]

89년 12월 3일 지중해의 섬나라 몰타에서 정상회담을 끝내고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부시 미국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 [중앙포토]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은 17일 “이번 판문점 회담이 남북 간 관계를 넘어서 한반도의 주요 당사자, 특히 북ㆍ미 간의 문제가 풀리는 계기가 된다면 저는 몰타 회담보다도 훨씬 더 상징적인 회담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임 실장이 이번 남북 정상회담과 비교한 1989년 몰타회담에서는 날씨가 큰 변수였다. 89년 12월 2, 3일 지중해 몰타 해역의 배 위에서 열린 부시 미국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과의 역사적인 정상회담은 날씨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때마침 몰아친 강풍과 폭우로’ 당초 예정했던 4차례의 회담을 2차례로 끝냈다. 당시 언론 보도는 이렇게 적고 있다.

「회담 벽두부터 휘몰아치던 강풍과 폭우는 3일 들어 일단 멈추고 오랜만에 햇살이 비치기도 했으나 거의 48시간 동안 계속된 악천후로 인해 당초 계획됐던 정상회담 일정이 상당 부분 취소되거나 수정되는 등 진통을 거듭했다. 10년 만에 찾아온 최악의 강풍과 거센 파도로 인해 양국 정상은 마르삭스로크 만에 정박했던 소련 순양함 슬라바호에서 가질 예정이던 1차 정상회담을 취소하고 외항에 있는 소련 여객선 막심 고리키호에서 회동. 회담 첫날 몰타 섬에는 강풍이 몰아쳐 나무들이 뿌리째 뽑혔으며 양국정상을 환영하기 위해 내걸렸던 국기들이 찢어져 나가기도 했다.」 (89년 12월 4일 자 중앙일보 현지 르포)

89년 12월 4일자 중앙일보

89년 12월 4일자 중앙일보

막심 고리키 호에 승선한 부시 대통령과 베이커 국무장관이 뱃멀미를 막기 위해 멀미 제거 파스를 귀밑에 붙였다는 기사도 있다. 해군 출신인 부시 대통령은 비교적 안색이 좋았으나 베이커 장관은 창백한 얼굴로 시종 힘든 표정이 역력했다고 한다. 배는 여러 차례 접안에 실패했다. 두 정상이 40여 년 간 계속된 냉전 시대의 종식을 선언하는 결과물은 그렇게 힘겹게 탄생했다. 당시의 날씨는 그 ‘산통’을 대변하는 역사적 기록이 됐다.

2000·2007년 남북 정상회담 땐 화창한 날씨

2000년 6월 13일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한 김대중 대통령이 영접 나온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두 손을 잡고 환하게 웃으며 인사말을 나누고 있다. [중앙포토]

2000년 6월 13일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한 김대중 대통령이 영접 나온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두 손을 잡고 환하게 웃으며 인사말을 나누고 있다. [중앙포토]

앞선 2000년 6월 13~15일과 2007년 10월 2~4일 평양에서 열린 남북 정상회담 기간엔 날씨에 대한 특별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각 초여름과 가을에 열렸기 때문에 비교적 화창한 날씨에서 회담이 진행됐다. 다만 2007년 정상회담의 경우 당초 8월 말에 열기로 합의했지만 평양의 폭우와 홍수 피해로 인해 10월로 연기해 개최했다.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07년 10월 2일 낮 평양시 4.25 문화회관 광장에서 열린 공식환영식에서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중앙포토]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07년 10월 2일 낮 평양시 4.25 문화회관 광장에서 열린 공식환영식에서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중앙포토]

역사상 첫 남북 정상회담이 열린 2000년 6월 13일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만남 당일의 보도에선 “하늘엔 약간의 구름이 끼어 있었지만, 역사적인 순간을 축복하듯 맑았다. 기온은 섭씨 22도”라고 전했다. 평년보다 조금 높은 기온이었다. 김정일이 김 대통령을 맞기 위해 순안공항까지 직접 나온 것을 두고 북한 측의 한 안내원은 “경애하는 장군님이 조국통일을 바라는 마음으로 나오셨다. 원래 잘 안 나오시는데 무더운 날씨를 마다않고 나오셨다”며 “통일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포용할 수 있는 분이 우리 장군님”이라고 선전했다.

날씨는 무난한 첫 대화 소재였다. 방북 당일의 보도에 따르면 정부 당국자는 “첫인사로는 날씨 얘기를 꺼내는 게 가장 무난하고 모내기 철이 지났으니 농사 얘기를 하는 것도 준비돼 있다”고 말했다. 실제 김 대통령은 김정일과 나란히 서서 의장대를 사열하면서 “날씨가 매우 좋습니다”(김정일), “회담하기 좋을 것 같습니다”(김 대통령)는 대화를 주고 받았다.

박유미 기자 yumi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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