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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탐사] TV 속으로 들어간 6070…하루 시청 남성 221분, 여성 194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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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0호 05면

“각자의 자존감 점수는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세요?” “25점요.” “99점요.”

여성은 가사, 손자 돌봄에 매여 #6070도 여가 불평등은 그대로 #함께하는 커뮤니티, 여성 더 활발 #“학습·취미·봉사 3박자 맞아야 행복”

강사 이복순씨가 질문을 던지자 머리가 희끗희끗한 9명의 학생이 돌아가며 한마디씩 했다. 지난 9일 경기도 분당에 있는 AK플라자 문화센터 한쪽에서 열린 ‘아름다운 인생학교’ 심리학 강좌다. 양병선(67)씨의 답은 “90점”이었다. 양씨는 2013년 백만기(66) 교장이 영국 평생교육기구 U3A(University of The 3rd Age)를 본떠 만든 ‘아름다운 인생학교’의 심리학 수강생이다. ‘영화 인문학’ ‘스마트폰으로 90초 영화 만들기’ ‘위빠나사 요가 명상’ 강좌의 강사이기도 하다.

2006년 33년간의 직업군인 생활을 마무리한 양씨는 2014년 대한노인회 지원으로 영화를 배워 2015년 다큐멘터리 『할머니 소통대작전』으로 정읍 실버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았다. 요즘은 현대인의 ‘고향’을 테마로 한 영화를 만들고 있다. 양씨의 일주일은 영화와 강의 외에도 다양한 일정으로 빼곡히 채워진다. 매일 요가와 명상으로 시작하고 신문 정독, 그리고 30분 이상의 독서를 거르지 않는다. 일주일에 두 번 아내와 함께 댄스스포츠 동호회 활동에 참여하고, 봉사 차원에서 지인들에게 영상 자서전을 만들어 준다. 양씨는 “은퇴 후의 행복은 학습·취미·봉사의 3박자가 맞느냐에 달렸다”고 말했다.

60대 이상 하루 여가 시간 중  54% TV 봐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러나 60대 이상의 실버 세대 중 양씨처럼 일상을 다양한 여가 활동으로 채우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생활시간조사 분석 결과에 따르면 60대 이상은 하루 평균 383.3분의 여가 시간 중 205.4분(약 53.6%)을 TV 시청에 할애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TV는 다큐멘터리·뉴스 위주로 하루 30~40분 정도만 본다”는 양씨의 생활과 크게 다르다.

60대 이상의 TV 시청 시간은 1999년 182분에서 2014년 205.4분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중앙SUNDAY의 샘플 조사에 응한 60대 이상 남녀 7명은 각각 하루에 90~190분 정도를 TV 시청에 쓴다고 답했다. 유일하게 TV 시청 시간을 하루 100분 이하라고 적은 임모(71)씨는 조사기간 이틀간 매일 3시간씩 바둑을 뒀다.

2014년 생활시간조사를 분석한 결과 60대 이상 남녀의 여가 시간 활용 양상은 크게 달랐다. 여성들은 가사 및 돌봄노동을 도맡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면교제’(여성 47.9분, 남성 34.6분), 종교 집회 참석(여성 10.6분, 남성 5.5분), 교양 학습(여성 2.6분, 남성 1.7분) 등에 쓰는 시간이 남성보다 많았다. 의사소통이 수반되는 커뮤니티 활동에 쓰는 시간이 남성보다 많은 것이다. 반면 남성들은 등산(남성 8.1분, 여성 2.5분), 독서(남성 7.1분, 여성 1.9분), 산책(남성 36.7분, 여성 24.9분) 등 주로 혼자 하는 활동에 여성보다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TV 시청 시간도 남성이 220.7분으로 여성(193.7분)보다 많았다.

아름다운 인생학교 백만기 교장은 “육아 등을 매개로 한 지역사회 커뮤니티를 유지해 온 여성들은 자기 계발의 동반자를 비교적 쉽게 찾는 편이지만 남성들은 그러지 못한다. 관료적 조직에서 평생을 보낸 남성들에 비해 여성들이 수평적 의사소통에 능하다는 점도 여가 시간의 질이 상대적으로 높은 이유”라고 진단했다.

남성 67세, 여성 77세부터 시간 과잉  

성별에 따른 여가 불평등(2014년 기준 남성 299.8분, 여성 271.3분)은 여가 시간 과잉층(여가 시간 상위 25%)이 집중적으로 분포하는 6070 세대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6070 세대의 남성은 하루 평균 여가 시간이 412.7분에 달한 반면 여성은 360.8분이었다. 시간 과잉층에 접어드는 평균 연령도 남성은 67세로 조사된 반면 여성은 77세로 크게 차이가 났다. 생활시간 조사를 분석한 주익현 박사는 “여성은 60대 이후에도 가사노동이 크게 줄지 않는 데다 손주의 육아에 참여하면서 돌봄노동 시간이 오히려 느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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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2014년 조사에서 60대 이상 남성 중 직업이 없는 사람의 가사노동 시간은 71.6분이었지만 같은 조건인 여성의 가사노동 시간은 200.9분에 달했다. 직업이 있는 40대(남성 29.4분, 여성 150.6분)에 비해 남녀 간 격차는 다소 작았지만 여성에게 가사 부담이 치우친 구조는 연령별로 차이가 없다는 의미다. 60대 이상의 돌봄노동 시간 역시 남성은 하루 평균 8.0분에 그쳤지만 여성은 11.3분이었다.

샘플조사에서도 가사 및 돌봄노동의 여성 편중 현상은 뚜렷했다. 주 3회 정도 1시간30분 거리에 사는 손자의 방과후 시간을 돌보는 김경례(71)씨는 토요일인 지난달 31일 360분을 가사에 썼고, 월요일인 4월 2일엔 120분간 집안일을 하고 210분 동안 손자와 함께했다. 서울 강남의 아들 집과 자신이 사는 경기도 부천까지의 이동 시간은 왕복 3시간이었다. 김씨는 “먼 거리에 사는 손자를 돌보다 보니 그렇지 않은 날 밀린 집안일에 많은 시간을 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손주를 돌보는 일에서 자유로운 이모(63)씨는 지난달 30일 410분을 청소·빨래와 열무김치 담그기 등에 썼다. 많은 시간을 교회에서 보낸 4월 1일 일요일에도 140분간 가사노동을 했다.

반면 간헐적으로 소득을 위해 일하는 남성 임모(72)씨는 지난달 30~31일 손자들 통학을 보조하는 일에 60분 정도를 쓴 게 가사와 돌봄의 전부였다. 은퇴해 주업 노동을 하지 않는 다른 남성 임모(71)씨도 이틀 동안 장보기에 100분 정도 썼을 뿐이다. 대신 두 사람은 시간의 대부분을 등산·종교활동·바둑·TV시청 등 개인 여가 활동으로 채웠다.

생활시간조사 어떻게 분석했나

생활시간조사는 통계청이 1999년부터 5년 단위로 시행해 온 대규모 사회조사다. 표본 가구원들이 10분 단위로 이틀간 자신이 주로 한 행동을 일지에 기록하는 방식으로 조사한다. 지금껏 네 차례 조사에 총 4만9850가구, 12만1838명이 참여했다.

중앙SUNDAY는 한준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주익현 성균관대 박사후연구원과 함께 이 조사에서 수집된 만 20세 이상 남녀의 생활시간 원데이터 16만1697건을 분석해 한국 사회에서 가장 시간이 빈곤한 집단을 추적했다. 여가시간이 가장 부족한 하위 25%를 ‘시간빈곤층’, 너무 많은 상위 25%를 ‘시간과잉층’으로 정의했다. 여성·30대·자녀 있음·직장인이라는 특징을 가지면 시간빈곤층에, 남성·60대 이상·미성년 자녀 없음·무직자에 해당하면 시간과잉층에 포함되기 쉬운 것으로 확인됐다. 이를 토대로 지난달 19~31일 각각 시간빈곤·과잉층의 특징에 부합하는 남녀 20명에 대한 샘플조사를 진행했다.

탐사보도팀=임장혁(팀장)·박민제·이유정 기자 deep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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