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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투표 불만이나 승복전통중요|국회 부결이후 술렁이는 정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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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대법원장 임명동의안의 부결파동속에 정국이 술렁거리고 있다. 민정당은 패배의 충격을 씻기 위해 주말동안 연쇄 고위대책회의를 가지면서 재빨리 대법원장 임명동의안을 다시 국회에 제출하고 야당총재들에게 협조를 구하는등 신속한 대응 모습을 보였고 야당측도 여당의 움직임을 주의깊게 관망하면서 대처하는 모습이다.
여소야대의 변화된 정국을 실감시킨 부결파동속에 정상회복을 향해 움직이는 여야의 표정이 숨가쁘다.
○…정부와 민정당은 대법원장임명동의안 부결직후 2일밤과 일요일인 3일 잇단 대책회의를 열어 사후수습책을 마련.
윤길중 대표위원·김윤환총무·박준병사무총장·이한동정책위의장등 핵심당직자 4명은 부결직후 오후7시 청와대를 방문, 노태우대통령에게 사표를 제출했으나 즉석에서 반려.
노대통령은 『사표를 내고 안내고는 2차적인 문제며 빨리 후속조치를 하여 사법부를 안정시키고 민심을 수습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며 사표반려와 동시 사후대책 마련을 지시했다고 윤대표가 부언.
노대통령이 「책임은 2차문제」라고 한데대해 후속조치 후 문책한다는 문책유보가 아니냐는 해석도 있으나 참석자들은 『문책은 하지 않겠다는 뜻』이라고 당시 분위기를 들어 설명.
노대통령과의 면담자리에는 배명인안기부장, 정해창법무·이종찬정무장관과 청와대의 홍성철비서실장·최병렬정무수석등도 참석, 패인분석과 후속인선·동의안 재상정시기등을 중점논의했는데 공백이 길어질 사법부의 사정과 충격에서 빨리 벗어나는게 좋다는 의견이 복합돼 대법원장임명동의안은 「주초처리」로 방침을 결정.
회의가 끝난뒤 윤대표등 당직자들은 밤10시30분쯤 당사로 돌아와 기다리고 있던 보도진에 『무기명 비밀투표토록 돼 있는국회법과 선례를 어기고 공개투표한 사항은 중대한 문제나 승복의 전통을 세우는게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발표.
패인에 대해 김총무등은 『평민·민주당이 공개투표를 했고, 일부 초선의원들이 기표방법을 몰라 찬표가 무효표로 처리되는 바람에 졌다』고 말했으나 청와대 모임에선 노대통령도 인선자체에 문제가 있었음을 시인하는 분위기였다고 한 참석자가 소개.
노대통령은 담담한 표정이었으며 무효표의 내용과 원인 및 지각한 두의원에 대해 관심을 표시했다고 한다.
○일요일인 3일에도 전날 청와대모임 참석자를 중심으로 잇단 모임을 갖고 구체적인 처리 시기와 인선작업을 실시.
이번 인선엔 처음부터 재조인사가 제외되고 이일규·김윤행·이회창·김덕주씨등 대법원판사출신의 재야인사가 거론돼 마지막까지 이일규·이회창 두사람으로 압축되다 이일규씨로 최종 낙착.
당초 법조게 내외의 신망으론 두사람 모두 「합격」이었으나 한사람은 68세로 정년에 가깝고, 한 사람은 56세로 대법원장 지리에 비해 젊다는 점에서「나이」가 결격사유가 됐던 것. 결국 이일규씨로 내정한 것은 70세정년을 2년여밖에 남기지 않았다는 점에서 「과도기」로 본다는 의미로도 해석.
이씨를 일단 내정한뒤 김총무는 3야당총무와 전화등으로 접촉, 야측의 의중을 타진했고 긍정적인 반응을 받아 냄에 따라 최종 확정.
○…부결직후 146호실에서 열린 민정당 의원총회는 자욱한 담배연기속에 허탈·침통한 분위기로 일관.
윤대표는 대법원장표결에 지각한 두 의원을 엄중문책하겠다며 노한 목소리로 꾸짖고 『대표위원으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했고 김총무는 『대통령과 당에누를 끼친 점 책임을 지겠다』며 사의를 표명.
지각의원들은 『어떠한 처벌도 달게 받겠다』고 백배사죄.
이도선의원은 『무효표가 찬성쪽인 점을 감안하면 우리당과 다른당의 합작으로 과반수를 넘긴 것이어서 실질적으로 하나의 가능성을 확인한 좋은 결과』라고 긍정적 해석.
군출신인 이광노의원은 『인원파악, 모든 가능성에 대한 사전점검과 대비등 군대적 문화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일부 중진들이 표결전 바둑이나 두는등 남의일 보듯했던 사실을 성토.
○…2일 오후 정대법원장임명동의안 표결결파 부결이 선포되는 순간 평민·민주당의석에선 일제히 박수와 함성이 터져 나왔고 민정당의원들은 망연자실해 천장만 쳐다보는등 침통.
이미 개표진행도중 부결이 확실해지자 본회의장에는 미묘한 공기가 흐르기 시작했는데 민정당 정창화수석부총무가 『백지투표는 무효』 라며 고함. 그러나 의장이 개표를 선언한 이후여서 이미 물건너간 상태.
투표도중 『이름을 쓴 사람이 있다』는 말이 돌자 민정당의석은 사색이 되어 뒤늦게 『가자를 써넣어라』고 단속하기 시작했으나 이미 물은 엎질러지고 난 뒤.
20여분만에 투표는 대체적으로 완료됐으나 민정당의원 2명이 나타나지 않자 금의장은 개표시작을 미룬채 이들을 기다리며 10여분간 지연작전.
이에 신기하의원(평민)이 『왜투표를 종결하지 않느냐』고 고함쳤고 이를 신호로 야당의원들은 연단으로 몰려가거나 고함을 치며 김의장에게 격렬히 항의하는등 소동.
황명수 의원(민주)은 연단에서 김의장에게 삿대질을 하며 『미국에 가 있는 의원이 올 때까지 기다려라』며 야유.
김의장은 기다리다 포기한 김민정당총무의 수신호를 받고서야 투표종결을 선언하고 『시어머니가 많아서…』라며 혼잣말로 푸념.
○…민정당측은 대법원장 임명동의안 부결엔 무효표가 결정적으로 작용했다고 분석.
무효표 14표는 △「정기승」5표 △「정기승·가」1표 △「정기승·가」1표 △ 「정기성」1표 △「조기승」1표 △「정기승·가」라고 썼다가 「정기승」을 두줄로 긋고「가」자만 남겨둔 것 1표 △「찬성」「찬」「찬」 각1표 △「×」1표로 사실상 찬성의 뜻을 담은 표가 13표며 반대는 1표인셈.
이름을 틀리게 쓴 것을 빼더라도 찬표가 11표로 기표를 제대로 했더라면 1백52표여서 가결선 1백48표보다 4표가 넘어 민정당으로선 『수에서 이기고 투표에선 졌다』는등 어처구니 없는 패배라는 통탄의 소리가 나올판.
이날 특히 민정당의원들올 혼란시킨 것은 김광일의원(민주)의 의사진행 발언.
김의원은 투표직전 의사진행발언을 얻어 『이번안에 대해 의장이 운영위와 의사일정 협의를 했느냐』는 요지를 빗대어 사실상 반대토론. 이 바람에 장내는 여야의원 고함으로 소란스러워져 의사국장이 나와 『기표방법은 가부로만 해야한다』고 했으나 묻혀버렸다고. <고도원·김진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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