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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고용노동부, 경제 포기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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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기찬
김기찬 기자 중앙일보 고용노동전문기자
김기찬 고용노동선임기자

김기찬 고용노동선임기자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의 작업환경 측정 보고서 공개에 제동이 걸렸다. 국민권익위원회 중앙행정심판위원회는 삼성전자의 정보공개 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였고, 산업통상자원부의 산업기술보호위원회는 ‘국가핵심기술’로 분류했다. 보고서 공개를 밀어붙이던 고용노동부만 정부 내에서 왕따가 된 모양새다.

민감한 사안일수록 부처 간 협의는 필수다. 각 부처가 관할하는 사안이 맞물려있어서다. 경제나 기술과 관련된 건 더 복잡해서 일개 부처가 무 자르듯 단박에 판단하기 어렵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고용부가 산자부와 협의만 제대로 했어도 이번 같은 혼란은 없었을지 모른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사실 반도체공장의 작업환경 보고서 공개 논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008년부터 10년 넘었다. 그때마다 고용부는 공개에 신중을 기했다. 2009년에는 지금의 여당인 당시 야당 의원들이 보고서 제출을 요구했다. 반도체업체 역학조사와 산업보건위험성 평가보고서다. 당시 고용부 산업안전국장이던 정현옥 전 차관은 의원들을 일일이 찾아다녔다. 그러면서 “보고서는 줄 수 있다. 그러나 추후 파장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고 다소 공격적으로 설득했다. 당시 정 국장은 “반도체는 한국 경제의 핵심 먹거리다. 국가 차원에서 기술 유출을 막으려는 이유다. 따라서 자료를 받은 뒤 유출되면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이는 의원의 면책특권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조목조목 설명했다. 의원들이 더는 제출 요구를 하지 않았다.

조선 업체만 해도 경쟁국 업체 관계자가 방문하면 공장 곳곳의 블록을 모두 천막으로 가린다. 자재 배치 자체가 선박 건조의 노하우여서다. 기술을 지키려는 현장의 이런 눈물겨운 노력을 ‘현장 중심의 행정’을 표방한 고용부가 외면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물론 대전고법이 노동계의 손을 들어준 데 따른 조치라고 하지만 유관 부처와 협의는 고사하고, 대법원 판단을 기다리는 성의조차 보이지 않았다. 기다렸다는 듯 공개하려다 창피를 당했다.

그렇다고 고용부가 고유의 업무를 제대로 하는지도 의문이다. 한국GM 노사가 극한 대립을 하고 있지만 노사관계 조정 업무를 수행해야 할 고용부는 어디에서 무슨 역할을 하는지 파악하기 어렵다. 이러니 “귀족 노조의 민원처리를 전담하는 부처”라는 비판이 나온다.

글로벌 경쟁에서 지고서야 일자리가 나오겠는가. 고용부의 기울어진 직진이 경제를 엉뚱한 곳으로 몰지나 않을지 위험해 보인다.

김기찬 고용노동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