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취재일기

뒷북만 치는 경찰의 '드루킹' 수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9면

홍상지 기자 중앙일보 기자
홍상지 사회부 기자

홍상지 사회부 기자

민주당원 댓글 조작 사건이 처음 접수된 건 지난 1월 31일이었다. 50일쯤 지난 3월 21일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드루킹’이라는 필명의 김모(49)씨 등 3명을 체포해 구속했다. 이런 사실은 그로부터 20여일 뒤인 지난 13일에서야 언론 보도를 통해 수면위로 드러났다. 사건 접수 이후 73일째 되던 그 날, 경찰에 ‘피의자들이 민주당원이 맞느냐’고 묻자 “피의자들의 진술일 뿐 확인이 되지는 않았다”는 뜨뜻미지근한 답이 돌아왔다.

그날 이후 한 발씩 늦는 경찰의 뒷북 수사가 이어지고 있다. ‘피의자의 인신을 확보한다→증거 인멸 전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계좌·통화내역 등을 분석한다 →혐의를 찾아 기소한다.’ 수사의 기본 단계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하지만 첫 스텝부터 꼬였다. 경찰은 김씨 일당을 체포하면서 이들의 계좌 15개를 영장 없이 ‘임의제출’ 방식으로 받았다. 연간 운영비 11억원의 출처를 찾는 게 수사의 핵심 포인트였음에도 피의자들이 ‘취사선택’한 계좌만을 받아 조사한 셈이다. 통신내역 추적영장도 검찰 송치 후 10일이 지난 이달 11일에서야 신청했다. 그나마 압수한 휴대전화 170개 중 133대는 조회도 안 하고 검찰에 넘겼다가 다시 돌려받았다.

김씨가 김경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지속적으로 텔레그램 메시지를 보낸 사실이 처음 보도됐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경찰은 “핵심은 매크로 댓글 조작이고 김 의원을 조사한다는 건 너무 앞서 나가는 부분”이라고 일축했다. 그러나 이후 김 의원이 김씨와 최소 다섯 차례는 만났고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게 김씨를 소개해준 사실 등이 밝혀졌다.

부실수사 논란에 경찰은 17일 부랴부랴 계좌추적 영장을 신청하고 수사인력을 보강하겠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그 사이 ‘드루킹’ 세력은 닫았던 블로그를 열고, 일부 게시글을 공개로 전환했다. 이들이 공개한 게시글을 인용해 기자들이 기사를 쓰면, 경찰은 해명하고 수사에 나서는 한심한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 차기 경찰청장 ‘0순위’라는 이주민 서울경찰청장이 자신에 대한 인사권을 가진 청와대까지 연루된 수사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억측 같지만은 않은 이유다. 이런 가운데 19일에는 김 의원실 압수수색 오보까지 등장했다. 경찰이 ‘증거인멸 시간을 벌어준 꼴’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경찰의 부실 수사를 수사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오는 판이다. ‘경찰에게 수사 의지가 있기나 한 걸까’, 의구심이 든다.

홍상지 사회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