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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원가 혁신 이룬 중소기업에 불이익을 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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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김도년 산업부 기자

김도년 산업부 기자

한 대기업이 부품 납품사 입찰을 진행한다고 가정하자. 대기업은 기준 가격으로 100원을 제시했고, 원가 절감에 성공한 중소기업 A사는 85원을, 나머지 B사와 C사는 각각 110원, 120원의 입찰 가격을 제시했다고 보자. 모든 기업이 마진을 남기고 제품 품질도 균등하다면, 누가 낙찰되는 것이 공정할까? 상식적으론 가격 경쟁력을 높인 A사가 낙찰되는 게 당연하지만, 포스코가 이달부터 도입한 새 낙찰 제도를 적용하면 A사는 입찰 자격이 박탈된다. 포스코가 제시한 기준 가격과 입찰에 참여한 기업들이 제시한 가격을 평균한 뒤, 이 평균 가격의 85%보다 낮게 입찰가를 제시한 곳은 입찰에서 제외하는 형태로 ‘최저가 낙찰제’를 폐지했기 때문이다. 최저가 낙찰제란 가장 싼 가격에 비교적 좋은 제품을 공급하는 기업에 일감을 주는 가장 기본적인 입찰 방식이다. 경제학을 모르는 사람도 시장에서 물건을 살 때 값싼 제품을 사지 일부러 비싼 제품을 사진 않는다.

물론 포스코가 최저가 낙찰제를 폐지한 데는 합리적인 이유도 있다. 중소기업이 과도한 저가 입찰 경쟁에 나서면서 기업이 부실해지고 납품하는 제품 품질이 나빠지는 폐해가 생긴다는 것이다.

문제는 공정성이다. 포스코가 도입한 새 낙찰제에선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원가 혁신을 이뤄 낮은 입찰가를 쓴 기업이 입찰에서 탈락하는 경우가 생긴다. 중소기업으로선 ‘적당히 높은 입찰가를 불러야 하는데, 그 수준을 가늠하기 힘든’ 새로운 딜레마에 빠질 수 있는 것이다. 조선사용 철 자재를 대기업에 납품하는 회사의 대표는 “무인 자동화 설비 도입 이후 작업 속도가 빨라져 제품값을 25% 낮출 수 있었다”며 “낮은 가격을 제시했다는 이유로 입찰에서 배제하면 중소기업들은 혁신의 동기를 잃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포스코는 “경쟁력 있는 협력사가 입찰에서 탈락하지 않도록 구매 품목의 제조 기술과 시장 변화 등을 면밀히 조사한 뒤, 이를 기준가격 결정에 반영하고 있다”며 “일부 부작용은 있겠지만, 최저가 낙찰제의 폐해가 계속되는 건 피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싼값에 질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은 모든 기업이 추구하는 목표다. 중소기업도 연구·개발을 하고 유능한 인재를 고용한다. ‘상생’이란 선의로 출발했지만 결국 혁신 기업이 입찰에서 배제된다면, 이를 ‘부작용’ 정도로 취급해선 안 된다.

김도년 산업부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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