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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 마일리지로 '물컵 갑질' 조현민에게 일감 몰아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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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 홈페이지의 대한항공 마일리지 사용처 안내 중 호텔부문. 5개 호텔에서만 대한항공 마일리지를 쓸 수 있다고 나와 있는데, 5개 호텔이 모두 한진그룹 계열사 소유다. 국내의 3개 호텔은 최근 물의를 빚고 있는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가 대표이사인 칼호텔네트워크 산하 호텔이다.[대한항공 홈페이지]

대한항공 홈페이지의 대한항공 마일리지 사용처 안내 중 호텔부문. 5개 호텔에서만 대한항공 마일리지를 쓸 수 있다고 나와 있는데, 5개 호텔이 모두 한진그룹 계열사 소유다. 국내의 3개 호텔은 최근 물의를 빚고 있는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가 대표이사인 칼호텔네트워크 산하 호텔이다.[대한항공 홈페이지]

대한항공 마일리지를 써서 올여름 휴가를 떠나려던 회사원 김관수(45) 씨는 최근 두 번 헛일했다. 마일리지로 예약할 수 있는 비행기 좌석을 구하려다 실패했고 대한항공이 마일리지 사용처를 대폭 넓힌다는 뉴스를 보고 알아본 결과 또 실망했다. 김씨는 “상품이 전부 대한항공 계열사 것이고 마일리지의 가치도 형편없이 낮게 책정해놨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대한항공이 고객의 마일리지로 대한항공 계열사나 한진그룹 관계사를 지원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내년 1월 1일부터 대한항공의 마일리지가 소멸하는데, 마일리지 용 좌석은 극히 일부분이고 다른 사용처도 곰 인형 구매 외에는 별로 없다는 본지 보도(3월7일자 종합2면)에 따라 대한항공은 지난달 말 마일리지 사용처 확대 방안을 발표했다. 문제는 사용처 확대 방안 등에 담긴 상품의 면면이다.

대한항공 홈페이지에 따르면 ‘마일로 호텔로’라는 호텔 이용 상품이 있다. 대한항공 마일리지로 호텔을 이용할 수 있는 상품인데, 예약 가능한 호텔이 제주 칼호텔·서귀포 칼호텔·그랜드 하얏트 인천·와이키키 리조트·인터컨티넨탈 로스엘젤레스 다운타운 등 5개뿐이다. 이 중 국내의 세 호텔은 모두 칼호텔네트워크 소속인데, 칼호텔네트워크의 대표이사는 최근 일명 '물컵 갑질' 논란을 빚고 있는 조현민(35)대한항공 전무다. 외국의 두 호텔도 모두 한진그룹 소유다. 항공업계에 따르면 항공사 마일리지 사용처 중 비행기 표 예약 다음으로 수요가 많은 곳이 호텔 예약이다.

차를 빌릴 수 있는 ‘마일로 렌터카’란 상품은 대한항공 관계사인 제주 한진렌터카 한 곳만 이용할 수 있는 점도 문제지만, 마일리지 가치를 현실성 없게 떨어뜨렸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예를 들어 제주에서 K5차량을 24시간 빌릴 때 마일리지 8000마일을 차감하는데 편의점 등에서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는 롯데 L포인트와 대한항공 마일리지의 교환비율(22포인트=1마일)을 고려하면 그 가치는 17만6000원이다. 그런데 제주 한진렌터카 홈페이지에 가면 K5 24시간 이용 가격이 그의 6분의 1수준도 안 되는 2만6500원으로 나와 있다.

대한항공 마일리지로 사용할 수 있는 렌트카.K5의 경우 8000마일이 공제된다고 안내 돼 있는데,8000마일의 가치는 약 17만6000원이다.[대한항공 홈폐이지]

대한항공 마일리지로 사용할 수 있는 렌트카.K5의 경우 8000마일이 공제된다고 안내 돼 있는데,8000마일의 가치는 약 17만6000원이다.[대한항공 홈폐이지]

한진렌터카 홈페이지에는 K5를 24시간 빌리는 가격이 2만6500원으로 안내돼 있다. [한진렌터카 홈페이지]

한진렌터카 홈페이지에는 K5를 24시간 빌리는 가격이 2만6500원으로 안내돼 있다. [한진렌터카 홈페이지]

이에 더해 마일리지로 결제할 수 있는 한진관광 해외여행 상품의 경우 비행기 표는 고객이 각자 알아서 사는 조건으로 판매하고 있다. 회사원 윤정수(42)씨는 “항공사 마일리지를 사용해 해외여행을 가는 상품에 항공권이 빠져 있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마일리지 좌석을 구하는 건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렵게 만들어 놓고 해외여행 상품에까지 항공권을 빼는 건 고객을 우롱하는 처사 “라고 말했다. 이밖에 마일리지로 조종사 훈련과정을 체험할 수 있는 정석비행장, 제주민속촌 등도 모두 대한항공 계열사다. 마일리지 소멸 시효가 임박한 고객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대한항공 계열사의 매출을 올려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아시아나항공의 경우 이마트·기내면세점·CGV 등에서 마일리지를 사용할 수 있는 점이 대한항공과 다르다. 하지만 아시아나도 숙박 상품으로 구비한 금호리조트는 그룹 계열사다.

해외 항공사 중에서는 이런 경우를 찾아보기 어렵다. 캐세이퍼시픽 항공의 경우 ‘아시아 마일즈’란 여행 프로그램에 가입돼 있어 전 세계의 호텔을 마일리지로 쓸 수 있다. 아시아 마일즈 홈페이지에서 서울에서 쓸 수 있는 호텔을 검색한 결과 워커힐·더 플라자·파크 하얏트 등 163개 호텔이 올라왔다. 델타항공은 ‘마일스 투 고’란 프로그램을 통해 전 세계 수천개의 호텔을 예약할 수 있다. 또한 아랍에미리트항공은 마일리지를 두바이 면세점 등에서 쓸 수 있고, KLM 항공은 온라인 면세점 등을 이용할 수 있다.

송상민 공정거래위원회 소비자정책국장은 “해외 선진 항공사는 고객의 자산이자 항공사의 빚인 마일리지를 현금과 동일하게 여기고, 고객이 마일리지를 쓰는 데 불편함이 없게 다양한 옵션을 마련하는 데 우리는 그렇지 않다는 데에 큰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 대한항공은 장부상으로 마일리지를 비유동부채(비유통부채 하의 이연수익 항목)로 계상해 놓고 있다. 대한항공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이연수익이 2조615억원으로 2016년 1조8682억원보다 10%가량 늘었다. 이연수익에는 신용카드사에서 항공마일리지 적립 대가로 대한항공에 지급한 현금 등이 포함돼 있다. 대한항공은 ‘마케팅 제휴’란 명목으로 신용카드사에 1마일당 20원 가량을 받고 마일리지를 팔고 있다. ‘고객이 쓴 돈’으로 계열사를 부당지원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2017년 대한항공 감사보고서에 비유동부채로 분류된 항목 중 맨 아래 부분이 이연수익. 첫 번째 칸 2조615억원이 2017년 이연수익이고 오른쪽으로 2016년,2015년 이연수익이 계상돼 있다. [자료 금융감독원]

2017년 대한항공 감사보고서에 비유동부채로 분류된 항목 중 맨 아래 부분이 이연수익. 첫 번째 칸 2조615억원이 2017년 이연수익이고 오른쪽으로 2016년,2015년 이연수익이 계상돼 있다. [자료 금융감독원]

공정위 고위관계자는 “대한항공이 문제의식을 갖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마일리지 사용처와 관련 계열사 부당지원 및 일감 몰아주기에 해당하는지도 세심하게 들여다볼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대한항공 홍보팀 민경모 차장은 “계열사 호텔 외의 다른 호텔이 마일리지 사용처로 등록해 달라는 요청이 없어 우선 계열사 호텔만 쓸 수 있게 한 것”이라며 “마일리지 사용처에 관한 사항은 대법원 판례 등을 봤을 때 ‘자유 계약’의 영역이기 때문에 위법의 소지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대한항공은 고객들이 작은 단위의 마일리지까지 모두 쓸 수 있게 지속해서 제도를 개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함종선 기자 js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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