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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마크 테토의 비정상의 눈

전통 미술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잇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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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마크 테토 미국인·JTBC ‘비정상회담’ 출연자

마크 테토 미국인·JTBC ‘비정상회담’ 출연자

우리는 역사를 떠올리면 지금의 우리와 거리가 멀고, 과거의 모습이 현 시대와 매우 다를 것이라고 보통 상상한다. 하지만 가끔은 역사가 얼마나 우리 가까이에 있는지, 그리고 지금의 현실과 얼마나 닮아 있는지 깨닫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한 번은 이태리로 여행을 떠나 폼페이 유적지를 구경한 적이 있다. 폼페이 도시는 AD 79 화산 폭발로 인해 붕괴되었지만 수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화산재로 인해 상당 부분이 보존되어 있다. 어떤 집에 들어갔을 때 우리의 여행 가이드는 당시의 비즈니스 문화 그리고 놀이 문화를 보여주는 어느 벽화를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 보세요. 사람들이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 팔고 있네요. 그리고 그곳에서 놀기까지 해요. 요즘 우리가 하는 행동들과 아주 비슷하지요.” 나는 그때 그들의 삶이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과 비슷하다는 점에 깜짝 놀랐었다.

최근에 나는 한국의 동대문 디자인 프라자에서 전시회를 관람하던 중 비슷한 경험을 했다. 간송미술문화재단에서는 전시회 “바람을 그리다”를 주관하며 신윤복과 정선의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신윤복의 작품에는 조선 시대의 일상이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폼페이에서 본 벽화처럼 그의 작품들 또한 과거가 지금의 우리 모습과 얼마나 가까운지 그리고 닮아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한 작품에서는 어느 양반이 데이트를 마친 후 여자와 함께 걸으며 집에 데려다 주는데, 마치 마지막 인사를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는 사람들처럼 그녀의 집 앞에서 어색한 모습을 취하고 있다. 이 장면은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만한 장면일 것이다. 또 다른 그림에서는 한 남자가 술을 마시고 있었다. “이 남자가 술을 마셨다는 점은 모두 알 수 있겠죠. 여기 보시면 얼굴이 빨개졌어요” 도슨트가 말했다. 나는 가까이 다가가 사진을 보았다. 그의 빨간 얼굴은 분명 소주를 마시는 누군가의 얼굴 빛과 매우 흡사했다. 또 다른 작품에서는 싸움에 휘말린 두 남자가 있고 구경꾼들 사이로 경찰이 다가오는 장면이 있었다.

비정상의 눈 4/12

비정상의 눈 4/12

정선의 작품에서 나는 지금의 내가 공감할 수 있는 또 다른 현대적 감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바로 로드 트립 (road trip)을 떠날 때의 그 설레는 마음이다. 정선의 전시는 그가 서울을 떠나 금강산을 향해 시골로 떠나는 여행길을 보여주는데, 전시를 통해 관람객은 마치 현대의 로드 트립과도 같이 모험이 주는 그 설렘과 동일한 감정을 공유할 수 있다. 그것은 내가 강원도 여행 갈 때 올림픽대로를 통과해 동쪽으로 운전해 갈 당시의 감정과도 같았다. 서울을 지나 미사리를 통과할 때 즈음 나는 여행에 대한 흥분으로 가득 차 오르며 내 심장은 뛰기 시작한다.

미술가들의 작품 외에도 본 전시는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기 위해 장대한 시간을 모두 망라하고 있다. 또한 작품에 생명력을 불어넣기 위해 애니메이션을 이용한 디지털 미디어 아트를 충분히 활용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데이트 후 여자를 집에 데려다 주는 어색한 커플의 모습은 애니메이션을 통해 볼 수 있다. 전시 중 가장 흥미로운 장면 중 하나는 신윤복의 작품을 마치 인스타그램에 올려진 사진들처럼 연출한 부분이었는데, 거기에는 작품에 담긴 장면을 설명하는 문구가 해시태그 되어 있었다. 이러한 그림들은 순간 또는 추억을 포착하고 다른 이들과 공유한다는 점에서 그 시대의 SNS와도 같은 역할을 했을 것이다. 이렇게 과거와 현재를 적극적으로 연결하고자 했던 그들의 노력은 내게 깊고 진한 여운을 남겼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전통과 역사가 결코 멀리 있거나 접근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아니라 우리 가까이에 있으며, 지금의 우리와 얼마든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것으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영감을 주는 새로운 원천이 되어줄 수 있다는 점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마크 테토 미국인·JTBC ‘비정상회담’ 전 출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