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일자리 추경]‘나랏돈 퍼주기’논란 의식한 ‘미니 추경’…중기 취업 청년에 '보조금'쥐어주는 땜질 처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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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청년 일자리 대책 및 구조조정 지역 지원을 위해 편성한 추가경정예산(추경)은 규모로 봐서 ‘미니 추경’이다. 3조9000억원 규모는 지난 2006년 태풍ㆍ호우 피해 극복을 위해 편성됐던 2조2000억원의 추경 이후 가장 적은 수준이다. 역대 추경과 비교해봐도 네 번째로 적다.

3조9000억원 규모 추경 편성 #2006년 이후 가장 작은 규모 #재정 건전성 의식에 빚내지 않아 #"중기 취업 청년에 보조금, 땜질 처방 #"다닐만한 중기 만드려는 노력 부족" #

정부가 청년 실업 해소를 위해 추경을 편성했지만 '땜질 처방'에 그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월26일 서울의 한 대학교에서 학위수여식을 마친 졸업생이 취업게시판을 살펴보고 있다. [뉴스1]

정부가 청년 실업 해소를 위해 추경을 편성했지만 '땜질 처방'에 그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월26일 서울의 한 대학교에서 학위수여식을 마친 졸업생이 취업게시판을 살펴보고 있다. [뉴스1]

애초 정부 안팎에서는 정부가 올해 약 15조원으로 예상되는 초과 세수를 활용해 10조원 이상의 추경을 짤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실제 지난해에도 일자리 창출 여건 개선을 위해 11조2000억원 규모의 추경이 편성됐다. 올해 추경 편성이 이례적으로 연초에 이뤄지며 정부는 초과 세수를 활용하지 않았다.

또 일각에서 불거진 재정 건전성 논란을 불식시키기 위해 나랏빚을 늘리는 국채 발행도 하지 않았다.

빚 없는 추경, 초과 세수 투입 없는 추경을 통해 지방선거를 앞두고 야당의 반발을 최소화해 신속한 국회 통과를 추진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3·15 청년 일자리 대책 주요 내용

3·15 청년 일자리 대책 주요 내용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추경 재원은 국가재정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지난해 쓰고 남은 재원인 결산잉여금 2조6000억원과 기금의 여유자금을 활용했다”라며 “올해 초과 세수를 활용하거나 추가적인 국채 발행을 하지 않는 만큼 국민의 추가 부담도 없고 재정 건전성을 해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청년 일자리가 ‘재난 ’수준인 만큼 특단의 대책으로 추경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정부의 설명을 비춰보면 다소 애매한 규모라는 지적도 있다.

추경 3조9000억원 중 1조원은 구조조정 지역 지원을 위해 쓰인다. 청년 일자리를 위해 사용하는 돈은 2조9000억원 수준이 된다. 이 정도로 일자리 문제 해소에 도움이 되겠냐는 얘기다.

표학길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기왕 추경하기로 했다면 보다 적극적으로 할 필요가 있었는데 정부가 재정 건전성 논란을 의식해 추경 규모를 축소 편성한 것 같다. 그렇다 보니 중소기업 청년에 대해 보조금을 주는 형식의 사업만 담기고, 특화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과 같은 보다 장기적인 내용의 사업은 빠질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정부는 작지 않은 규모라고 설명한다. 김동연 부총리는 “청년 일자리 대책 2조9000억원은 올해 전체 청년 일자리 예산 3조원과 비슷한 규모”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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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 예산이면 지난해 편성한 올해 예산에 반영할 수 있지 않았냐는 비판도 나온다. 청년 일자리 문제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어서다. 야권도 이점을 들어 ‘6ㆍ13 지방선거용 추경’이 아니냐고 의심한다.

김동연 부총리는 “지난해에 제출했던 올해 확정 예산의 총지출 증가율이 7.1%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 당시에는 재정 건전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총지출 증가율을 높일 수 있는 수준까지 높였다”라며 “지난해 본예산에서 이런 문제까지 다루기에는 좀 애로사항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번 추경 사업의 대부분은 지난 3월 15일 정부가 발표했던 ‘청년 일자리 대책’과 대동소이하다. 재정 지원과 함께 세제 혜택을 더해 중소기업에 취업하는 청년에게 최대 연 1035만원의 소득을 늘려준다는 게 핵심 방안이다. 여기에 기존 재직자와의 형평성을 중소기업에 몸담고 있는 청년에게도 내일채움공제, 소득세 감면, 교통비 지원 등 매년 765만원의 소득을 늘려준다.

이를 통해 2012년까지 20만명 가량의 일자리를 추가로 만들어 청년실업률을 8%대 이하로 낮추겠다는 게 정부 목표다.

구체적으로 이번 추경을 통해 정부는 청년추가고용장려금, 내일채움공제, 전·월세 보증금 저리 융자 등을 포함한 청년의 소득ㆍ주거ㆍ자산형성 지원에 1조7000억원을 투입한다.

청년일자리 대책 추경 재원 중 절반 이상이 중소기업 취업 청년에 직접 돈을 쥐여주는 데 쓰이는 셈이다. 창업 활성화에는 8000억원, 취업기회 창출에는 2000억원이 쓰인다. 결국 이번 추경은 “돈을 더 줄 테니 중소기업에 취업하라”는 전제가 깔렸다.

전문가들은 일자리 창출에 대한 이런 정부의 접근 방식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오동윤 동아대 경제학과 교수는 “대학 졸업생의 상당수가 중소기업으로 취직하지만, ‘대기업을 가고 싶은데 어쩔 수 없이 가는 것’이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라며 “장기적으로 중소기업을 다닐만한 직장으로 만들어야 하고, 취업자들의 인식도 바꾸도록 노력해야 하는데 이에 대한 정부의 노력이 부족하다”라고 말했다.

구조개혁과 같은 근본적인 해결책은 여전히 뒷전이라는 지적도 있다. 민간의 일자리 창출을 가로막는 규제에 대한 완화 및 노동개혁, 신산업 육성 등에 집중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의 진단이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일시적으로 일자리 숫자를 몇 개 늘리는 건 큰 의미가 없다”라며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산업 육성, 시대의 변화에 맞는 근로 형태ㆍ임금 체계 개선을 위한 거시적이고 장기적인 로드맵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세종=하남현ㆍ장원석 기자 ha.nam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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