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현대차처럼?…'셀프개혁' 요구받는 기업들의 고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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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그룹 방식의 지배구조 개편은 모범답안이 될 것인가.

현대차그룹이 지주사 체제 대신 지배회사를 두는 방식으로 지배구조를 바꾸고, 이런 변화를 공정거래위원회가 긍정적으로 평가하자 다른 기업들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공정위는 그간 대기업에 "3월 말까지 '셀프 개혁' 안을 내놓으라"고 주문했지만, 삼성·한화·효성 등은 아직 개편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1석 5조 현대차 방식에 다른 기업들 주목

현대차 방식을 다른 기업들이 눈여겨보는 건,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는 데 비해 경영 융통성과 효율이 높아서다. 현대차는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차→모비스'로 대표되는 순환출자 고리를 끊기 위해 기아차가 가진 모비스 지분을 오너인 정몽구·정의선 부자가 사들이기로 했다. 비용 조달 방법으로는 정의선 부회장이 23.2% 지분을 보유한 현대글로비스에 현대모비스의 알짜 사업부문을 떼 주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 현대글로비스의 주가는 오를 수밖에 없다. 이 주식을 팔아 기아차가 가진 현대모비스 지분을 매입하겠다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현대모비스를 지배회사로, 현대차·기아차를 수직계열화한 이 같은 방식의 장점으로 ▶공정위가 요구하는 순환출자 고리를 끊었고 ▶내부거래 규제 대상에서 제외되며(지주사 체제에서는 오너 일가가 20% 이상 지분을 보유한 회사에는 일감을 줄 수 없다)▶(지주사 체제에서는 불가능한) 계열사 합동 인수·합병(M&A) 참여 ▶(은산분리 규정 적용도 받지 않아) 금융계열사를 둘 수 있다는 점 ▶정의선 부회장의 지배력이 강화되면서 1조원대 세금 납부를 통해 비난을 피해간 점 등을 꼽는다. 현대차 지배구조 개편안이 나온 이후 재계에서 '신의 한 수'라는 평가가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지주사 체제가 책임 있고 투명한 지배구조라고 강조해왔던 공정위가 "시장의 요구를 받아들인 변화여서 긍정적"이라고 평가한 것도 다른 기업들이 눈여겨보는 대목이다.

현대차 이후 가장 주목받는 기업은 삼성이다. 삼성은 현재 삼성물산을 중심으로 7개의 순환출자 고리를 갖고 있다. 이 고리를 해소해야 하고, 보험업법 개정안 처리 여부에 따라 금융계열사(삼성생명·화재)가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도 처분해야 한다. 주목할 점은 삼성전자가 지난해 4월 자사주를 전량 소각하면서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지배구조가 오히려 더 취약해지고 방어에 수십조원 비용 들여야 한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삼성전자 서초사옥. [중앙포토]

삼성전자 서초사옥. [중앙포토]

이재용 부회장, 삼성물산 지분 늘릴 가능성 

시장에서는 "삼성이 지주사로 가지 않는 한 현대차 방식을 도입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백광제 교보증권 연구원은 3일 "삼성전기와 삼성SDI, 삼성화재가 삼성물산 지분을 전량 처분해 그룹 내 순환출자를 해소할 것"이라며 "최대주주가 삼성물산 지분을 매입해 시장 충격을 최소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삼성물산 최대주주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17.08%의 지분을 확보한 이재용 부회장이다. 김준섭 KB증권 연구원은 "삼성물산은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일부 또는 전부를 인수해 금산분리를 해결하는 동시에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을 높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부회장 등 오너 일가 지분율이 높은 삼성물산을, 현대차그룹의 모비스처럼 지배회사로 둘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삼성 관계자는 "수많은 시나리오 중의 하나로 검토될 가능성은 있지만, 현재 확실히 정해진 건 '순환출자 고리를 모두 끊는다' 이외에는 없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현대차 같은 방식을 도입하려면) 여러 계열사의 지분이 동시에 이동해야 하는데 이는 모두 각 계열사의 이사회 의결 사안이고 확정 전에 외부에 발표하는 것은 공시 위반"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예전 같으면 그룹 전체의 그림을 그리는 미래전략실이 고민하고 결정하면 각 계열사가 따르겠지만, 지금은 이를 주도하기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또한 현대차 방식의 지배구조 개편안에 대해 "삼성이 하면 비난받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화는 김승연 회장 세 아들에 일감 몰아주기 해소 시급 

공정위가 주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한화그룹은 일감 몰아주기 해소가 시급하다. 그룹 내 전산서비스 업체인 한화에스엔씨(S&C)는 과거 김동관 한화큐셀 전무, 김동원 한화생명 상무, 김동선 전 한화건설 팀장 등 김승연 회장의 세 아들이 100% 지분을 보유해 일감 몰아주기 의혹을 받아 왔다. 공정위가 문제 삼자 한화는 지난해 말 한화S&C를 에이치솔루션(옛 한화S&C의 존속법인)과 한화S&C 사업부문(신설법인)으로 물적분할한 뒤 한화S&C 지분을 사모펀드인 스틱인베스트먼트에 지분 44.6%를 매각했다. 오너 일가의 지분율을 낮춘 것이다. 그러나 공정위는 지난 2월 대기업 소유지배구조 개선 자구 노력 모범사례를 발표하면서 한화S&C만 쏙 뺐다. 당시 공정위는 “한화S&C의 물적 분할과 지분구조 변화가 사익 편취 규제에서 비켜 가려는 것인지, 구조 개선인지 논란이 있어 모범 사례에 맞지 않는다”고 입장을 밝혔다.
업계에서는 내달 발표할 한화S&C의 일감 몰아주기 해소 방안은 결국 오너 일가의 지배력을 줄이는 방식이 유력할 것으로 전망한다. 즉 에이치솔루션이 보유 중인 한화S&C의 지분을 추가 매각해 현재 55.4%인 오너가의 지분을 대폭 줄일 것으로 예상된다. 한화 관계자는 "한화 관계자는 "일감 몰아주기 논란이 사라지는 방향으로 지배구조를 바꾸기 위한 작업을 진행 중인 건 맞지만,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서울 장교동 한화빌딩 본사. [중앙포토]

서울 장교동 한화빌딩 본사. [중앙포토]

재계 순위 30위권 내 그룹사들도 지배구조 개혁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대주주 경영 개입 해소와 투명성 강화를 요구받아 온 효성은 오는 6월 1일 지주회사와 4개의 사업회사로 인적 분할할 계획이다. 그간 효성은 단일 회사임에도 섬유, 중공업, 금융 등 사업특성이 다른 7개의 사업 부문을 보유했다. 여러 사업이 혼재되면서 경영 투명성을 개선하라는 지적을 받았다.

박태희 기자 adonis55@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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