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70주기 4·3사건, 이제 국민 통합의 출발점 돼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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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문재인 대통령은 어제 “아직도 4·3의 진실을 외면하는 사람들이 있다. 낡은 이념의 틀에 생각을 가두는 것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제주 4·3사건 희생자 70주년 추념식에서다. 대통령은 또 “국가권력이 가한 폭력의 진상을 제대로 밝혀 희생된 분들의 억울함을 풀고 명예를 회복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70년 세월이 흘렀지만 4·3을 둘러싼 갈등이 현재진행형이란 점에서 의미 있는 다짐이다.

한국 현대사의 가장 큰 비극 가운데 하나인 제주 4·3은 군경에 의한 대량 양민 학살이란 뼈아픈 과오를 남긴 사건이다. 대규모 진압 과정에서 당시 제주 인구의 10%가량인 3만 명이 희생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그래서 진보 진영은 국가권력의 무자비한 토벌에 주목해 ‘항쟁’이나 ‘학살’로 부르고 있다. 하지만 보수 진영에선 성격 규정 자체가 다르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방해하기 위한 좌익분자들의 폭동’에 무게 중심이 있다. 일부 극우단체들은 국가기념일 지정에 대해 ‘남로당의 무장봉기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으로 오해될 소지가 있다’며 적극적으로 반대한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어제 ‘남로당 좌익 폭동에 희생된 제주 양민들의 넋을 기리는 행사’라고 주장했다.

4·3 추념식엔 2006년 노무현 대통령이 참석했지만 이후 두 번의 보수 정권에선 현직 대통령이 방문하지 않았다. 분열과 불신의 상징적인 장면이다. 70주년을 맞은 4·3이 더 이상 진보와 보수 간 이념 대결의 대상에 머물러선 안 된다. 이젠 치유와 화해를 통해 국민 통합의 출발점이 돼야 한다. 서로 손을 내밀고 보듬어 안아야 한다. 정부 차원의 진상 규명에 이어 공식 사과문까지 발표된 과거사를 놓고 언제까지나 이념의 틀에 갇혀 삿대질만 계속하는 건 통합 시대에 역행하는 퇴행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