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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여권 정국구도 흔들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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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6·29선언은 정치적으로 여권에 의도했던 단기적인 승리를 가져다주었음에도 불구하고 4·26총선을 거치면서 1년이 지난 오늘날 지극히 도전적인 정치상황을 만들어놨다.
여당은 소수당으로 전락했고 4당체제의 정국은 전도를 가늠하기 어렵게 얽혀있다.
이런 상황은 정부·여당이 총선에서 패배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원인은 6·29가 감추고 있는 정략적 구도에 있었다고 할수도 있다.
6·29선언을 순전히 정략적으로 해석한다면 6월시위사태로 벼랑에 몰린 여권이 직선제개헌을 하지 않을수 없는 상황에서 김대중씨를 사면·복권으로 풀어놓고 야당의 분열을 틈타 4파전으로 대통령선거를 치른다는 구상이었다고 보는 시각도 없지않다.
이런 시각에서는 구속자석방, 비리·모순의 척결, 언론자유, 각부문의 자율과 지방자치제등 민주화8개항은 집권에 따른 정치발전의 약속인 동시에 야당이 취할수 있는 공세의 포인트를 선공하는 역공세이자 또한 4파전을 유리하게 전개하기위한「전술적 포장」이라는 것이다.
이 구도뒤에는 일단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한다면 그 이후 국회의원 총선에서도 확실한 안정체제를 확보할수 있을것이라는 계산이 감춰져 있었을 것이다.
그러한 안정은 또한 보수적 기존집권세력의 체제를 보강하는 것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여권은 그와같은 안정체체 위에서 정치적 개혁을 주도해 나갈 작정이었다.
여권의 그와같은 전술은 대통령선거에서 보기좋게 적중했다. 여측 의도대로 야당은 분열했고 1노3김의 4파전 구도에서 여당은 36.6%의 소수득표로 승리했다.
이런 상황은 국회의원선거에서도 거의 재현될뻔 했다.
그러나 소수파 정부에 불과한 여권이 야당분열상태를 지나치게 안이하게 낙관한데다 여권내부의 미묘한 세력갈등, 지도력의 부재 때문에 총선에서 패배하고 그들이 전혀 예상하지도 않았던 여소야대의 4당체제를 맞게됐다.
그것은 어떻게 보면 당초의 6·29선언이 전술적으로 이용했던 절대 화합하지 못하는 야당의 생리와 지역감정에 오히려 역습을 당한 꼴이 됐다고 할수도 있다.
여권은 6·29로 인해 짧은 승리를 맛보았으나 전도불명의 혼란스런 상황으로 빠져들었고 패배와 분열속에 허덕이던 야당은 뜻밖의 전기를 모색할 기회를 포착하게 됐다.
4·19이후 경험했던 것과 비슷한, 우리 헌정사에 드문 과도적 정치상황이 연출된것이다.
이와같이 여권이 안정체제를 구축하지 못한 불안스런 과도적 상황으로 인해 몇가지 문제들이 나타나고 있다.
국회에서 야당이 다수의석을 차지함으로써 통치력이 크게 약화된 여권은 적절히 통제되지 않는 정치발전상황에 대해 소극적이되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제5공화국의 비리척결문제, 시국사범문제, 지방자치의 전면실시문제등이 그렇고 정부의 운용방식, 민정당의 당내민주화조치에서 과거의 권워주의통치형태에서 크게 뛰어넘는 기색이없다.
시국사범문제는 그동안 몇차례 대규모석방과 사면조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여야간의 현안이 되고 있다. 구속자의 개념, 석방 대상에 대해 야당·재야인권단체의 요구와 현저한 해석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여권이 생각하는 정치범의 범위는 지극히 제한적이며 실정법적 테두리안에서만 고려한다는 종래의 입장안에서 맴돌고 있다고 야권과 재야는 지적하고 있다.
우리 정당정치의 기본골조를 전면적으로 바꾸게 될지도 모르는 지방자치제 실시에 있어서도 여권은 소극적이라는 감을 주고있다. 금년 상반기실시공약이 올림픽이후로 넘어가 내년 상반기까지는 실시하도록 되어있지만 여권은 시·군등 소규모 지방자치만 염두에 두고 있는듯 하다.
야당측이 주장하는 특별시장·직할시장·도지사등 주요 지방자치단체장을 직선하는 지방자치제의 전면실시까지는 갈 생각이 없는것 같다. 이미 흔들리고 있는 집권층의 권한을 더이상 축소시키거나 야당측에 확실한 정치적 지지기반을 제공하게될 광역자치제는 여권으로서는 너무도 부담이 가는것이다.
6·29선언은 비리·모순의 과감한 시정을 약속했다. 그것은 제5공화국의 권력형비리를 시정한다는 뉘앙스를 담고 있었고 그후 선거공약으로 구체화하면서 더욱 그런 의미를 강하게 담았다.
국회에 특위를 구성하기로 했지만 현재까지 여권이 거기에 반드시 적극적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새마을비리를 문제삼아 전경환씨를 구속하고 염보현전서울시장도 구속됐지만 그 배경에는 여권내부의「갈등」과 선거에 대비해 공격쟁점을 없앤다는 측면도 없지않았다. 선거이후 권력형 부정척결의 구체적 모습이 거의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게 그런 해석을 반증해주고 있다. 따라서 현정권이 제5공화국과의「단절」을 주장하다가「선택적 승계」로 되돌아선 것도 어쩔수 없는 본질적 한계라고 볼수 있다.
6·29이후 가장 뚜렷한 변화중의 하나는 급진세력의 부상과 이에 대응하는 보수세력의 재결속 모습이다.
최근에 나타난 6·10남북학생회담을 둘러싼 통일논의가 가장 상징적인 예다. 일부는 북한측과 거의 흡사한 주장까지도 서슴지 않는 판이다.
민족과 통일을 앞세워 이념의 무장해제를 노리고 있다. 그러나 이런 소리를 정치권은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
정치권이 급진적 운동권의 소리를 수용하지 못함에따라 이들은 정치권밖에 방치되고 그들은 권외세력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이는 현체제에 대해 도전적이거나 부정적인 경향을 띠고 있으며 이에대해 보수강경세력들도 강경한 조치들을 요구하고 나서고 있다.
결국 6·29가 제시했던 정치적 과제들은 현실적인 정치의 요인과 각세력의 이해관계앞에서 적절한 방향을 못잡은채 부심하고 있는 셈이다.
지나치리만큼 개방된 보도의 홍수, 지도층의 스타일상의 변화와 같은 외양상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아직 본질적 변화나 발상의 전환에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있는 감이 없지않다.
그것은 군과 관료, 기업인및 권력지향적 세력등으로 폭좁게 형성되어 있는 기존의 여권체제가 본질적인 변화에 더디게 반응하거나 반사적인 거부감을 보이는 탓도 크다.
최근 여권 심부에서 강경목소리가 크게 들리는 것도 그런 연유때문인것 같다. <김영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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