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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만 달러 육박한 국민소득 … 가계·기업 몫 줄고 정부만 두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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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수치로 본 한국 경제는 순항 중이다. 지난해 한국 경제는 저성장의 덫에서 벗어나 3년 만에 3%대 성장률 고지를 밟았다. 1인당 국민소득은 3만 달러 문턱 앞에 섰다.

한국은행, 2017년 국민계정 발표 #지난해 1인당 GNI 2만9745달러 #GNI엔 정부·기업소득도 포함 #가계소득은 1874만원에 그쳐 #‘세수 풍년’에 정부 몫 많아져

한국은행이 28일 발표한 ‘2017년 국민계정(잠정)’에 따르면 지난해 경제성장률은 3.1%를 기록했다. 명목 국내총생산(GDP)은 1730조4000억원으로 전년보다 5.4% 늘었다. 수출 호조와 설비 투자 급증의 영향이다. 지난해 설비투자는 전년 대비 14.6% 늘면서 2010년(22%) 이후 7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전년보다 7.5% 증가한 2만9745달러(약 3364만원)을 기록하며 3만 달러에 바짝 다가섰다. 3%대 경제성장률을 기록한 데다 달러 대비 원화가치가 연평균 2.6% 상승하며 달러화 기준 국민소득이 많이 늘어났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1인당 GNI는 국민이 국내외에서 벌어들인 총소득을 인구로 나눈 통계다. 한 나라 국민의 생활 수준을 파악하는 지표로 사용된다. 3만 달러는 일반적으로 선진국 진입 기준으로 인식돼왔다. 한국은 2006년 국민소득 2만 달러를 돌파했지만 12년째 3만 달러 고지를 밟지 못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2016년 기준 한국의 국민총소득은 45위를 차지했다.

정규일 한은 경제통계국장은 “올해 전망대로 3% 성장을 달성하고 원화가치 급락이 없다면 1인당 GNI 3만 달러 진입이 확실시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통계는 언제나 착시를 수반한다. 한국 경제가 선진국의 문 앞까지 다가섰지만 국민소득 3만 달러는 먼 나라 이야기처럼 들린다. 체감할 수 없다는 말이다. 1인당 국민총소득(원화 기준)을 4인 가족 기준으로 단순 계산하면 가구당 연간 소득은 1억3456만원을 넘는다. 실제와 거리가 멀다.

이런 차이가 생기는 이유가 있다. 국내총생산(GDP)은 가계와 기업·정부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한국은행이 발표하는 ‘국민소득’ 통계에는 기업과 정부 몫이 포함돼 있다. 개인 소득이 부풀려질 수 있다.

가계의 실제 주머니 사정을 살펴보려면 1인당 가계총처분가능소득(PGDI)을 따지는 게 낫다. PGDI는 정부와 기업이 가져간 소득을 빼고 세금과 이자 같은 필수 지출을 뺀 나머지다. 가계가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소득이다. 지난해 PGDI는 1874만원이었다. 전년(1801만원)보다 4.1% 늘었다.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실제 느낄 수 있는 증가율은 더 낮을 수 있다.

빡빡해진 가계의 상황은 전체 국민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에서도 드러났다. 나라 밖으로 나간 근로자 송금액과 해외 원조, 국제기구 분담금 등을 뺀 국민총처분가능소득(GNDI·1722조5000억원)에서 가계 소득 비중은 지난해 56.0%였다. 전년(56.3%)보다 줄었다. 기업 소득이 차지하는 비중도 2016년 20.6%에서 20.2%로 감소했다.

가계의 지갑이 얇아진 것은 임금 급여와 사회부담금 등을 포함한 피용자(피고용자)보수 증가율이 낮아진 것에서도 엿볼 수 있다. 지난해 피용자보수는 전년보다 4.4% 늘어난 데 그쳤다. 전년도의 증가율 5.2%보다 줄었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임금증가율 등이 낮아진 탓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게다가 지난해 기업의 영업잉여는 26.1%로 전년(25.7%)보다 증가했지만 수출로 늘어난 이익이 일자리 창출이나 임금 인상 등 분배로는 이어지지 않는 모습이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경제 성장과 기업의 이익이 가계로 옮겨가는 ‘낙수 효과’가 나타나지 않으면서 가계 등이 성장을 체감할 수 없다”고 말했다.

살림살이가 더 나아진 곳은 정부다. 전체 소득 중 정부가 차지하는 비중은 23.8%로 전년(23.1%)보다 늘어났다. 증가 폭은 8.2%나 됐다. 지난해 ‘세수 풍년’의 영향이다. 정부는 지난해 본 예산 대비 14조3000억원의 세금을 더 걷었다.

한국은행은 “세수가 좋아지고 부담금 등이 늘어난 데다 국민연금 수익 등 재산소득이 늘면서 정부 비중이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든든해진 정부의 곳간은 총저축률도 끌어올렸다. 지난해 총저축률(가처분소득 대비 저축 비율)은 36.3%로 전년보다 0.2%포인트 상승했다. 1998년(38.0%) 이후 19년 만에 최고치다. 지난해 정부 총저축률은 8.4%로 전년(7.9%)보다 증가했다. 반면 가계(7.9%)와 기업(20.0%)을 합한 민간 저축률은 전년보다 0.3%포인트 하락한 27.9%를 기록했다. 저금리와 가계 빚 부담으로 가계의 벌이가 줄었지만 정부 곳간만 두둑해졌다는 이야기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기업이 일자리 창출이나 투자 등에 활용해야 할 돈을 정부가 세금으로 걷어가면서 자원의 효율성을 해칠 수 있다”며 “정부가 세금을 통해 효과적인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면 경기에 대한 체감도는 더 낮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국민소득이 늘고 가계나 기업이 이를 체감하기 위해서는 경제의 지속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 경쟁력 떨어지는 산업을 정리하고 조정해 경제 전반의 생산성을 높여야 하는 것이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경제의 기본체력(펀더멘털)을 강화하는 한편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산업을 찾고 육성하는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현옥 기자 hyuno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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