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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시위 더 격화… '채용 후 2년간 해고 가능' 고용법 합헌 결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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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최초고용계약(CPE)에 반대하는 학생들이 30일(현지시간) 파리 리옹역에서 철로를 점거한 채 시위를 하고 있다. [파리 AP=연합뉴스]

프랑스 헌법재판소는 학생과 노동계의 잇따른 대규모 시위를 촉발시킨 새 고용관계법이 합헌이라는 결정을 지난달 30일 내렸다.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전 대통령을 포함한 10명의 위원으로 이뤄진 헌법재판소는 사회당 등 야권이 제기한 위헌 소송을 각하해 우파 정부의 손을 들어줬다. 이에 따라 새 법의 핵심인 최초고용계약(CPE)을 둘러싼 정부와 학생.노동계의 대립이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헌재의 판결 뒤 학생.노동계.야권은 '시위를 부르는 결정'이라고 비난하며 강력히 반발했다. CPE는 고용주가 26세 미만 사원을 채용한 이후 처음 2년 동안은 사유 설명 없이도 해고할 수 있도록 해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이려 한 조치다.

◆ 학생.노동계.야권 강력 반발=최대 학생조직인 UNEF의 브뤼노 쥘리아르 회장은 프랑스 2TV와의 회견에서 헌재 결정을 비난한 뒤 법률 반포권이 있는 자크 시라크 대통령에게 CPE 조항을 삭제할 것을 요구했다. 그는 "CPE를 먼저 철회해야만 협상에 임할 수 있다"며 이면협상 가능성을 배제했다. 거대 노조인 CFE와 CGS는 헌재 결정 발표 직후 성명을 내고 "이번 결정은 시위를 부르는 조치"라고 비판하고 "CPE 조항을 삭제한 새 법안을 의회에 제출하라"고 대통령에게 요구했다. 또 다른 노조인 CGT의 베르나르 티보 위원장은 "법을 철회하지 않으면 심각한 결과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제1 야당인 사회당의 프랑수아 올랑드 총서기는 시라크 대통령에게 "법을 의회로 돌려보내라"고 촉구했다.

◆ 학생들, 철도.도로 봉쇄 시위=헌재 판결에 앞서 대학생과 고교생들은 파리와 지방 주요 도시의 기차역과 간선도로를 일시 봉쇄하며 격렬한 CPE 반대 시위를 벌였다. 이날 오후 2000여 명의 학생이 파리 시내 리옹역에 진입해 철로를 막아 열차 운행이 한때 중단됐다. 남부 도시 마르세유에서는 학생 300여 명이 생샤를 기차역에 진입해 아침 한때 열차 통행이 중단됐다. 서부도시 낭트와 렌에서도 이날 아침 시위로 도심과 외곽 순환도로에서 극심한 정체가 빚어졌다. 또 렌 인근의 철로가 한때 봉쇄돼 열차 수십 편의 운행이 지체됐다. 학생과 노동계는 오는 4일에도 전국적으로 대규모 파업과 시위를 벌일 예정이다.

◆ 향후 가능 시나리오=일단 헌재의 합헌 판결로 시라크 대통령이 9일 이내에 새 법을 서명.공포할 수 있게 됐다. 학생들과 노동계의 반발을 감안해 1968년 5월 시위 사태 해결책과 비슷한 고위급 협상 제의가 나올 가능성도 있다. 또 시라크 대통령이 직권으로 법안을 의회로 돌려보내 재심의를 요구하는 방식으로 합의를 모색할 수도 있다. 이 경우 CPE를 주도한 도미니크 드 빌팽 총리의 퇴진 가능성이 커진다. 시라크 대통령의 지원을 받는 드 빌팽 총리는 일단 CPE를 시행하고 차후에 보완 방안을 논의하자고 버텨왔다.

파리=박경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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