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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정완의 영화로 보는 경제]일자리는 없고, 통장은 바닥...그런데 '청년 실업 제로'?

중앙일보

입력

‘청년 실업’을 소재로 한 영화 ‘리틀 포레스트’가 의미 있는 흥행 성적을 거두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리플 포레스트’는 개봉 4주차인 지난 22일 140만 관객을 돌파했다.

실업률 통계로 본 '리틀 포레스트' #주인공 혜원, 일 안 해도 실업자 제외 #친구 재하는 '무급 가족 종사자' 분류 #통계만 보면 '청년 실업 제로' 마을 #체감 실업률과 공식 기준, 격차 심해

아름다운 시골 풍경, 신선하고 친환경적인 제철 음식 재료, 깔끔하고 먹음직스런 요리 장면 등은 일상에 지친 관객들에게 잔잔한 위로를 전한다는 평가다.

이 영화는 경제기자의 관점에서도 흥미로운 점이 많다. 주인공 ‘혜원(김태리)’은 교사 임용시험에 실패하고 고향에 내려왔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한 장면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한 장면

시골에는 혜원을 위한 일자리는 없다. 고모의 농사일을 잠시 거드는 정도다. 통장의 잔고는 바닥이 났다. 혜원의 대졸 학력은 시골 생활에서 별 쓸모가 없다.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달 청년 실업률(15~29세 기준)은 9.8%였다. 지난해 6월(10.4%) 이후 7개월 만에 가장 높다. 인원으로는 42만 명이다.

그런데 혜원 같은 청년들은 여기에서 제외된다. 그럼 뭘까? 답은 ‘비경제활동 인구’다.

취업자도, 실업자도 아닌 사람들을 말한다. 혜원은 그중에서도 ‘쉬었음’에 속한다. 20대 청년들 가운데 이런 사람들(‘쉬었음’)은 30만 명에 달했다.

정부가 공식 인정하는 ‘실업자’가 되려면 조건이 상당히 까다롭다. 통계청은 3가지 조건을 제시한다. ①일을 하지 않았고 ②일이 주어지면 일을 할 수 있고 ③지난 4주간 적극적인 구직활동을 한 사람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3번의 ‘적극적인 구직활동’이다. 이게 없으면 아무리 사정이 딱해도 실업자로 인정받지 못한다. 청년들이 피부로 느끼는 체감 실업률과 공식 통계 사이에 격차가 클 수밖에 없는 이유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한 장면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한 장면

혜원의 친구들은 어떨까? 우선 ‘재하(류준열)’부터 살펴보자. 과수원과 비닐하우스 등에서 아버지의 농사일을 돕고 있다. 학력은 대졸이다. 졸업 후 ‘화이트칼라(사무직)’로 직장에 다니다가 상사의 횡포에 때려치우고 고향에 내려왔다.

실업자일까? 당연히 아니다. 통계상으로는 ‘비임금 근로자’다. 영화 속에선 과수원 등이 자기 것이 아니라고 했다. 그렇다면 ‘무급 가족 종사자’로 분류된다. 지난달 이런 사람들은 전국에서 95만7000명에 달했다.

혜원도 잠시 ‘무급 가족 종사자’로 분류됐을 가능성이 있다. 고모의 논에서 모내기, 벼 세우기 등을 거들었기 때문이다.

통계청은 “수입을 목적으로 1주 동안 1시간 이상 일했다면 모두 취업자”라고 정의한다. 다만 단순히 친척이라서 대가 없이 도와준 것인지, 수입을 목적으로 일한 것인지에 대해선 논란의 소지가 있다.

‘은숙(진기주)’은 직장(지역농협)을 다니고 있다. 금융업에 종사하는 임금근로자다. 지난달 금융ㆍ보험업 종사자는 전국적으로 83만9000명으로 집계됐다. 언뜻 보기에 은숙은 셋 중에서 가장 번듯한 취업자인 것 같은데, 영화 속에선 오히려 갈등과 고민이 가장 많아 보인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한 장면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한 장면

결국 혜원-재하-은숙은 모두 청년 실업자에 속하지 않는다. 다른 청년이 없다면 이 마을은 ‘청년 실업률 제로’를 달성한 셈이 된다. 통계와 현실은 이렇게 다르다.

영화 속 혜원의 경제 사정을 조금 더 들여다보자. 생활비는 최대한 절약하면서 살고 있다. 텃밭에서 채소도 키우고, 친척과 친구들의 도움도 받는다.

그런데도 돈이 들어가는 부분은 적지 않을 것이다. 통신비가 대표적이다. 혜원은 전화와 데이터 통신이 모두 가능한 스마트폰을 쓰고 있다.

양념ㆍ식용유 같은 요리 재료와 비누 등 생활용품도 사고, 전기ㆍ가스 요금도 내야 한다.

모아둔 돈도 많지 않을 텐데 적잖은 부담이었을 것이다. 친구 은숙의 말이 인상적이다. 돈이 필요하면 자신(지역농협)에게 말하고, 고금리 대부업체는 쳐다보지도 말라는 대목이다.

만일 혜원이 정말로 돈이 급해서 지역농협을 찾았다면 돈을 빌릴 수 있었을까? 답하기 쉽지 않은 문제다.

금융회사가 돈을 빌려줄 때는 고객이 제대로 갚을 능력이 있는지 따져본다. 이때 기준이 되는 것은 신용정보회사들이 제공하는 개인 신용정보다.

혜원의 신용등급으로는 제도권 금융회사에서 돈을 빌리기가 쉽지 않다. 정기적인 소득도 없고, 예금 잔고도 없다. 과거 금융 거래 이력으로 신용도를 판단하기도 어렵다.

사회 초년생이나 전업주부 등이 흔히 겪는 어려움이다. 이런 사람 중엔 고금리 대부업체를 찾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연체라도 하게 되면 ‘고금리의 덫’에 빠질 수 있다. 만일 대부업체가 합법이 아닌 불법 업체라면 더욱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

‘마케팅’의 관점에서 주목되는 영화 속 장면도 있다. 비바람에도 떨어지지 않는 사과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한 장면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한 장면

과거 일본에서 태풍으로 큰 피해를 본 과수원이 남은 사과만 모아서 ‘떨어지지 않는 사과’‘합격 사과’란 이름을 붙였다. 입시를 앞둔 수험생들에게 인기를 끌면서 대성공을 거뒀다.

그 후 이 사과는 ‘역발상 마케팅’의 대표적인 사례가 됐다. 절망의 순간에도 좌절하지 않고 발상을 전환하면 새로운 길이 열린다는 것을 보여준다.

주정완 기자 jw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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