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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in&Out레저] 꼭꼭 숨어라, 매화 꽃잎 보일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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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면

<순천> 글=성시윤 기자 <copipi@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전남 내륙을 가로질러 여수까지 이어지는 17번 국도. 최대 시속 80㎞인 이 큰길 옆에 계월리가 있다. 하지만 알고 찾아오는 사람이 아니라면 우연히 발걸음을 하기도 쉽지 않다. 마을이 산에 둘러싸여 있어 국도변에서는 좀체 매화를 엿볼 수 없는 까닭이다.

계월리는 앞뒤로 바랑산(620m).문유산(688m).병풍산(499.8m)을 껴안고 있다. 산촌이다 보니 계월리는 인근 광양이나 해남보다 매화가 보름가량 늦게 핀다. 산세가 매향을 가두어 놓은 덕인지 동네 입구에서부터 매화 향기가 진동한다. 길가나 산기슭의 매화는 거의 만개했지만 산허리의 매화나무는 다음 주말 정도에나 절정기를 맞을 듯하다.

마을 길은 비좁기 짝이 없다. 마주 오는 차를 맞닥뜨리면 누구 차가 됐든 후진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길 옆으로 바랑산에서 발원한 맑은 물이 좁은 개울을 이루며 소리없이 섬진강으로 흘러간다. 외동.중촌.이문 등 계월리를 이루는 마을의 들머리는 평범하고 소박하다. 계월리는 어찌 이리 조용히 지내왔을까.

동네에서 매화 풍광 좋기로 소문난, 외동 마을 김선일(41)씨의 과수원을 찾아 마을 이력을 물어보았다. 과수원에는 하얀 꽃이 핀 매화 가지 밑으로 자운영의 푸른 잎이 드넓게 깔려 있다. 4월 중순께 매화가 지고 매실이 맺기 시작할 때쯤이면 자운영이 보랏빛 꽃을 피울 것이다.

계월리에서 매화를 심은 것은 지금으로부터 40여 년 전. 일제 때 일본으로 건너간 이 동네 주민 고(故) 이택종씨가 매화나무 등 과수 묘목을 가지고 1960년대 중반에 영구 귀국하면서다. 다른 과수는 결실이 안 좋았지만 유달리 매실만 작황이 좋았더란다. 그래서 매화나무가 더욱 널리 퍼지게 됐다는 것이다.

이곳 매실은 2년 전까지 브랜드가 없었다. 서울 가락동시장 등지에서 생과실 형태로 팔려나갈 뿐이었다. 그렇다 보니 떠들썩하게 축제를 열어 매실을 홍보할 필요도 없었다. 여태껏 연 축제라 하면 타지 나간 주민들을 불러들여 지난 주말 돼지 두 마리 잡고 잔치 벌인 게 전부다.

그러던 중 지난해 연초 선일씨 댁 등 여덟 농가가 모여 영농 법인을 만들었다. 이곳 매실에 '계월 향매실'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발효 과즙 완제품도 내놓았다. 홈페이지(www.sumaesil.co.kr)를 만들어 온라인 판매도 시작했다. 그랬더니 소출은 그대로인데도 수입이 늘어나더란다. 그 덕에 법인 참여 농가가 한해 만에 서른 가까이 늘어났다.

앞으로도 계월리는 현재의 평온함을 유지할까. 방문객을 배려한다며 매화 군락 사이에 삭막한 시멘트 길을 내는 어리석음을 피할 수 있을까. 독자들께 계월리를 '조심스럽게' 소개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 여행정보

■ 찾아가는 길=수도권 기준으로 가장 빠른 길은 호남고속도로 전주 나들목→남원 방향 17번 국도→구례 방향 19번 국도→ 망룡삼거리 지나 '계월·상동' 이정표. 고속도로 나들목 중 계월리에서 가장 가까운 것은 호남고속도로 서순천 나들목. 서순천 나들목 쪽에서 갈 경우 전주 방향 17번 국도→송치 터널 지나 '이문·외동·상장·군장 마을' 이정표 보고 계월리 진입. 기타 문의 월등면사무소 061-749-3611.

■ 매화 산책=외동 마을과 이문 마을 깊숙한 곳에 차를 몇 대 세울 만한 공터가 있다. 여기에 주차하고 걸어서 마을을 돌아볼 것을 권한다.

■ 주변 명소=전주 나들목에서 계월리 가는 도중에 전주 죽림온천, 남원 광한루, 구례 지리산온천 등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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