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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이런 개헌 방식은 헌법과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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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청와대가 이틀째 개헌안 쪼개기 발표를 이어갔다. 헌법이란 국가의 통치조직과 작용의 기본 원리와 국민 기본권을 규정하는 근본 규범이다. 그 가치와 철학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전체적 맥락에서 살펴야지 어느 한두 가지 규정만 놓고 왈가왈부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국민의 의견을 듣고 평가를 받고자 한다면 한 번에 개헌안 전체를 공개하고 설명하는 게 타당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와대가 전체 공개 없이 변경된 내용 일부만, 그것도 찔끔찔끔 발표하는 것은 TV 중간광고처럼 홍보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쇼’로밖에는 비치지 않는다.

헌법 전문·토지공개념 신중하게 접근해야 #시간 걸려도 국민 통합과 여야 합의가 우선

이런 절차적 문제 외에 내용 면에서도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헌법 전문에 보수진영이 자랑스러워하는 산업화 역사는 빼고 ‘부마 민주항쟁’ ‘5·18 광주 민주화운동’ ‘6·10 민주항쟁’ 등 진보진영이 강조하는 역사만 집어넣어 이념 갈등과 국론 분열을 부추길 소지가 있는 게 사실이다. 많은 헌법학자가 고개를 젓고 있는 이유다.

‘토지공개념’을 헌법에 명시하는 것 역시 논란의 여지가 있다. 환경과 국토의 균형적 개발 차원에서 개인의 재산권을 어느 정도 제한할 수 있다는 데는 원론적으로 찬성할 수 있다. 하지만 토지공개념은 자칫 토지·주택 거래 허가제와 부동산 이득의 사회주의적 환수 개념으로까지 확장될 수 있는 만큼 신중하게 접근하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공청회 등 충분한 논의를 거쳐 국민적 합의를 이뤄야 하는 문제인데 이처럼 기습적으로 헌법에 포함시켜야 할 이유를 아무래도 찾지 못하겠다. 이미 헌법 122조가 국민의 재산권에 대해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제한과 의무를 과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말이다.

이 밖에 지방분권을 강화하고 기본권을 강화하는 것도 청와대 개헌안의 핵심 중 하나인데 이를 반대할 이유는 없다. 다만 그것이 제대로 실현되려면 제왕적이라 일컬어지는 대통령 권력을 실질적으로 축소하는 장치들이 마련돼야 한다. 그렇지 못하다면 모두 구두선(口頭禪)에 불과한 것이다. 지방자치단체를 지방정부로 부르고 ‘국민’을 ‘사람’으로 바꾼다고 해서 절로 지방분권과 기본권이 강화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청와대 개헌안은 대통령 4년 중임제만 규정하고 있을 뿐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력을 분산하려는 의지를 담고 있지 못하다. 그러면서 중임제로만 바꾼다면 제왕적 대통령의 임기만 8년으로 늘리는 결과밖에 얻지 못할 것이다.

개헌의 무게를 헤아린다면 청와대 수석회의가 아니라 적어도 모든 국무위원이 국무회의 석상에서 치열하게 논의하는 게 헌법정신에 맞다. 대통령이 해외 출장지에서 개헌안의 국무회의 상정, 국회 송부 등 3차례나 전자결재를 하는 것도 헌법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이런 설익은 개헌안을 서둘러 던져 놓고 국회더러 표결이나 하라는 것은 오만이며 실제로 개헌 의지가 없다는 속내를 드러내는 것이나 다름없다. 거듭 강조하지만 개헌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여야 합의 아래 국민을 통합하는 방식으로 진행돼야지 어느 한 진영이 정치적 목적을 위해 미리 정해진 프로그램에 따라 마구 밀어붙일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