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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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자카르타시내 호텔들이 밀집한 한복판의 이 공사현장에 들어서면 우선 눈에 띄는 것이 우리근로자들 복장을 한채 부동자세로 있는 현지인 경비원들이다. 자세히 보면 경비뿐만아니라 공사현장에서 중장비를 움직이고 하다못해 망치를 든 기능공들도 까만 피부의 인도네시아인들뿐이다.
사정은 다른 해외건설현장도 비슷해 리비아의 공사현장을 찾으면 이제는 한국기능공들보다 태국·방글라데시등 제3국근로자들이 더 많다. 막사도 우리근로자들것보다 더 길게 늘어서있고 식사도 그들끼리 따로 조리해 먹는다.
70년대후반과 비교해서 모습이 크게 바뀐 해외건설현장은 수주격감과 함께 우리 근로자들의 감소현상에서도 그 변화를 읽을수 있다.
해외현장에 서면『해외에서 남는다면 우리근로자들의 손끝에서 남는 것밖에 없다』던 말이 옛이야기가 된셈이다.
실제 83년만해도 16만5천명에 달하던 해외건설근로자들은 현재는 불과 4만1천명을 헤아릴뿐이다.
해외현장의 건설인력이 이처럼 줄게된 원인을 한마디로 집어서 설명하기는 힘들다. 해외건설을 보는 국내의 시각이 변하듯 현장여건이나 근로자등 모든것이 함께 달라지고 있다.
기능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우리근로자들이 해외에서 받는 평균임금은 시간당 1달러40센트∼1달러50센트수준인데 제3국 근로자들은 70센트로 고용할수 있다.
게다가 그만한 돈이면 정규대학을 나오고 영어도 제대로 구사하는 방글라데시인을 얼마든지 골라 쓸수있다.
『창의성없이 지시한 일만 그대로해 생산성은 떨어진다』는 현장감독들의 불만도 튀어나오지만 건설업체들로는 이들 제3국인들이 워낙 싼 임금이라 저울추는 제3국인 고용으로 기울게 된다.
몇년전만 해도 정부에선 해외건설업체들에 일정한도(30∼40%) 이상 외국근로자들을 고용할수 없도록「실링제」를 엄격걱히 적용해왔었다. 그러던 것이 어느사이엔가 슬그머니 제한이 풀려버렸다. 당시만해도 건설부는 해외건설악화로 외국근로자고용을 늘리자는 반면, 노동부는 국내고용악화를 이유로 이를 반대해 정부부처끼리 줄다리기를 벌였었다.
달라지는 쪽은 근로자들도 마찬가지다.
국내업체들이 해외건설기능공을 모집할때 70년대말처럼 지원자가 떼지어 몰리고 중동행비행기를 먼저 타기 위해 뒷돈을 건네던 모습은 사라졌다.
리비아의 브레가지역일대는 현재 동아건설의 대수로공사 관매설작업이 한창 진행중이다. 중장비가 동원된다지만 섭씨40도를 오르내리는 더위속에 직경4m의 관을 지하에 묻고 지반을 다지자면 하루종일 모래먼지를 뒤집어쓰기 십상이다. 햇볕과 먼지를 가린다고 선글라스에 수건을 둘렀으나 더위에 한시간남짓도 버티기 힘들다.
해외건설 근로자들에게는 쉬는 날이라고해서 특별한 소일거리가 있는 것이 아니다. 기자가 휴일 (리비아는 회교국으로 금요일이 휴일) 근로자숙소를 찾았을 때 카세트에서 흘러나온 노래는 주현미의 히트곡『비내리는 영동교』. 외출은 회사측에서 가급적 억재하고 있지만 리비아는 금주국에다 백화점조차 모두 국영으로 생필품마저 달려『마땅히 갈 곳도 없다』는게 근로자들의 얘기다.
임금문제만해도 해외건설업체들은 중동경기가 퇴조를 보인 80년이후 해외건설기능공들의 임금을 한푼도 올리지 않았다. 그러나 국내건설 기능공의 임금은 작년에 양대선거를 치르면서 크게 뛰어 이제 차이라고는 한달에 불과 10만원남짓.
그만큼 해외취업 현장의 인기도 떨어졌다고 볼수밖에 없다.
유가하락이후 건설시장의 자국화현상도 변해가는 해외건설현장의 모습증 하나다.
쌍룡건설의 자카르타 호텔공사현장에는 전체인원6백53명중 한국인은 62명. 그것도 현장관리직들이 대부분이고 기능직은 17명만이 공사감독을 맡고 있다.
현장책임자는『공사를 해외에 발주한 것만도 할 수 없어한 일인데 1억7천만인구에 실업이 심각한 인도네시아입장에선 외국근로자들의 등장을 반가워할리는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가정부월급이 우리돈으로 2만원이 안되는 헐값이다. 분명히 임금이 싸지만 그것 하나만이 제3국근로자들의 고용이 늘어나는 이유는 아니라는 설명이다. 【트리폴리=장성효톡파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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