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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신의 땀이 싫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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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장혜수 기자 중앙일보 콘텐트제작에디터
장혜수 스포츠부 차장

장혜수 스포츠부 차장

날이 많이 풀렸다. 기온도 꽤 올랐다. 그래서일까. 피트니스센터(헬스클럽)에 땀 냄새가 진동한다. 겨울에는 웬만큼 뛰어도 땀 한 방울 나지 않았다. 확실히 봄은 봄이다. 벌써 여름까지는 두 달여밖에 남지 않았다. 겨우내 허리에 붙은 뱃살을 떼어내려는 사람. 노출되는 팔다리를 탄탄하게 만들려는 사람. 피트니스센터가 붐빈다.

트레드밀(러닝머신)이 만원이다. 눈치를 보면서 스트레칭을 한다. 때마침 한 대가 빈다. 잽싸게 달려가 올라탔다. 스타트 버튼을 누르는 순간 미간이 일그러진다. 버튼이 흥건하게 젖어 있다. 손잡이에도, 모니터 패널에도 액체방울이 맺혀 있다. 나는 이 액체의 정체를 안다. 조금 전까지 힘차게 트레드밀 위를 달렸던 남자의 땀이다. 그는 어느새 벤치 프레스에서 바벨을 들고 있다. 땀범벅 상의를 등받이에 밀착했다. 푹 젖은 손. 영역 표시를 하는 강아지처럼 여기저기 땀을 묻히고 다닌다.

지난해 여름 캐나다 밴쿠버 출장 때다. 아침 일찍 호텔 피트니스센터를 찾았다. 60대로 보이는 남성 두 명이 운동 중이었다. 나는 빈 에르고미터(헬스 자전거)에 올라타 힘차게 페달을 밟았다. 얼마 안 돼 이마에 땀방울이 맺힌다. 땀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상의가 서서히 젖는다. 손으로는 연신 이마의 땀을 닦았다. 20㎞. 에르고미터에서 내려왔다. 근력 운동기구 쪽으로 가는데 한 남성이 날 부른다. 그는 종이타월을 몇 장 뽑아 손 소독약을 적신다. 조금 전 내가 내려온 에르고미터 쪽으로 갔다. 손잡이와 땀방울이 튄 모니터를 싹싹 닦는다. 그러면서 한마디 한다. “운동을 한 뒤에는 다음 사람을 위해 꼭 닦으라”고. 문명 세계에 온 야만인이 된 기분이다. 부끄러웠다.

비슷한 상황을 스위스 제네바 출장 때도 겪었다. 캐나다 때의 경험이 도움이 됐다. 바른 생활이 몸에 뱄을 것 같은 독일 아저씨로부터 잔소리를 듣지 않았다. 그 아저씨도 나도 사용한 운동기구를 말끔하게 닦았다.

프랑스의 의사 겸 건강전문가 프레데리크 살드만의 책 『손을 씻자: 건강을 지키기 위한 새로운 법칙』에 나오는 얘기다. 미국 메릴랜드대의 2007년 조사 결과 화장실을 사용하고 나서 주변에 사람이 없으면 46%가 손을 씻지 않고, 손을 씻지 않은 사람과 악수를 나눈 15명 중 11명의 입에서 그 사람 대변에 있는 균이 발견된다고 한다. 또 영국의 한 선술집 땅콩 그릇을 조사했더니 14종의 소변 성분과 유해 세균이 검출됐다고 한다. 종업원도 손님도 손을 씻지 않은 채 땅콩을 집어먹으려고 그릇에 손을 넣었기 때문이라 한다. 자료를 찾아보니 요소 성분을 빼면 소변과 땀은 대동소이하다. 나는 당신의 땀이 싫다. 당신도 내 땀이 싫지 않은가.

장혜수 스포츠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