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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패럴림픽 첫 금 뒤엔 지게차 모는 베트남 아내 있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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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겨울패럴림픽 첫 금메달을 딴 신의현 선수가 평창 바이애슬론센터에서 가족과 웃고 있다. 신 선수를 중심으로 시계방향으로 부인 김희선씨, 딸 은겸양, 모친 이회갑씨, 부친 신만균씨, 아들 병철군. [연합뉴스]

겨울패럴림픽 첫 금메달을 딴 신의현 선수가 평창 바이애슬론센터에서 가족과 웃고 있다. 신 선수를 중심으로 시계방향으로 부인 김희선씨, 딸 은겸양, 모친 이회갑씨, 부친 신만균씨, 아들 병철군. [연합뉴스]

“의현씨가 좋아하는 김치찌개를 해주고 싶어요.”

노르딕스키 신의현 부인 김희선씨 #19살에 공주 밤 농가로 결혼 이민 #남편 위해 한식·중식 조리사 자격증

2018 평창 겨울패럴림픽 최고 스타를 꼽는다면 단연 신의현(38·창성건설)이다. 11일 크로스컨트리 15㎞에서 동메달을 딴 데 이어, 17일에는 7.5㎞에서 한국 겨울패럴림픽 사상 첫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2006년 교통사고로 두 다리를 절단했지만, 스포츠를 통해 다시 일어선 그의 이야기는 국민에게 큰 감동을 줬다. 신의현 못지않게 그의 부인인 김희선(31)씨도 큰 관심을 모았다. 시부모를 모시면서 남편을 뒷바라지한 ‘내조의 여왕’도 남편만큼이나 큰 박수를 받았다.

김희선씨는 눈(雪)을 볼 수 없는 나라, 베트남 출신이다. 원래 이름은 마이 킴 히엔이다. 시어머니(이회갑)가 작명소에서 한국 이름을 지어줬다. 새로 받은 이름에 ‘킴’과 ‘히’의 어감을 살려 넣었다. 김씨는 19살이던 2006년 신의현과 결혼해 한국으로 건너왔다. 신의현은 대학 졸업 전날 자동차를 몰고 가다 맞은편에서 오던 트럭과 충돌하는 사고를 당해, 두 무릎 아랫부분을 절단한 뒤 방황하고 있었다. 방에만 틀어박힌 아들을 보다 못한 어머니 이씨가 국제결혼을 권유했다. 김씨는 “처음에는 결혼에 대한 생각이 전혀 없었다가, 남편의 인상이 좋아서 결혼을 결심했다. 처음에는 ‘고맙습니다’ ‘안녕하세요’ 정도의 한국말밖에 못 했다”고 말했다.

처음엔 부부 생활이 원만하지 않았다. 장애를 비관한 신의현이 술을 먹고 집에 오는 일이 다반사였고, 부부싸움도 잦았다. 김씨는 “한국말을 잘 못 하니까 의사소통도 잘 안 되었다. 속상해서 혼자 눈물 흘리는 날도 많았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그냥 주저앉지는 않았다. 충남 공주시 정안면에서 밤 농사를 짓는 시부모를 도우면서, 남편과 딸 은겸(11), 아들 병철(9)을 돌봤다. 가을이 되면 밤을 주웠고, 수확한 밤을 창고에 실어나르려고 지게차 운전면허까지 땄다. 사고 전엔 신의현이 했던 일이다. 시어머니 이씨는 “며느리가 우리 집 복덩이다. 머리가 좋아 뭘 배워도 척척 해낸다”고 자랑했다.

신의현은 2009년 휠체어농구를 시작했다. 김희선씨는 “남편이 운동을 시작한다고 해서 놀랐다. 하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하자 얼굴이 밝아졌다”고 전했다. 2013년에는 훈련으로 지친 남편에게 맛있는 음식을 해주려고 한식과 중식 조리사 자격증을 땄다. 김씨는 “남편이 힘을 많이 써 고기 종류를 많이 해줬다. 대회 중에는 식단 조절을 해준다. 집에선 평소 칼칼한 음식을 잘 먹는다”고 했다. 신의현은 17일 금메달을 딴 뒤 “아내가 해주는 김치찌개를 먹고 싶다”고 말했다.

2015년 신의현이 노르딕스키를 시작하면서 집안 분위기는 더 좋아졌다. 안정된 직장(창성건설 실업팀)에 들어가면서 경제적 여유도 생겼다. 아이들도 ‘국가대표 아빠’를 자랑스러워했다. 패럴림픽 내내 남편을 응원한 김희선씨는 “의현씨가 무뚝뚝해 보여도 속은 따뜻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패럴림픽 전에 무조건 다치지만 말고 무사히 마무리하길 바랐는데 메달까지 따 너무 기쁘다”며 웃었다. 신의현은 “집을 자주 비워 아내에게 미안하다. 정말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김씨 휴대전화에 저장된 남편의 이름은 ‘자기야’다.

평창·강릉=김효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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